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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핀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 욜랭드 모로 외 출연 / 에스와이코마드 / 2009년 10월
평점 :
영화를 보기 위해 선택할 때 우리를 결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주로 스토리와 배우, 감독을 보고 선택한다고 생각했던 매우 평범한 관객이지만,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순간을 포착하고는 선택과정에 대해서 흥미를 품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머리가 아프고 생각하기 싫을 때 선택하는 영화들은 우선 배우를 고른다. 내 구미에 맞고 영화를 보고 싶은 현재 내가 보고 싶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 아마도 영화를 고르는 것 보다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사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맘에 드는 영화가 없는 예쁜 그림과 맘에 드는 그림으로 채워진 애니메이션을 본다.
또 심심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때울 때 흥행한 영화, 남들이 봐서 재미있었다는 영화, 뻔한 내용이 아닐 것 같은 스토리의 영화를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상으로 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나는 예술가가 나오는 영화나, 영화제의 수상작, 또는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매우 흔치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살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생각도 하기 싫고 머리 아픈 것도 정말 싫은데 이런 영화들을 생각과 마음을 열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유와 시간, 체력까지도 필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대부분의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8500원이라는 돈을 영화보기에 투자하는 데 드는 선택을 좌우하는 것들이 쉽게 영화흥행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오늘은 영상으로 된 자극이 필요한, 그리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드문 날이었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 세라핀을 선택했다. 상식이라는 것은 정말 네이버에 있는 상설기사수준인 나에게 이 불운의 화가의 이야기는 생소했고, 그래서 더 영화에 푹 빠져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은 검은 밤 물가에서 더듬는 손에서 성당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성가를 부르는 저 못생긴 중년아줌마로 화면이 바뀌는데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이 뚱뚱한 여자는 뭐지? 하지만 이 여배우의 홀린 저 모습은 이 배우와 영화가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 줄 정도로 강렬했다.
세라핀은 자연을 사랑한다. 나무에 올라가서 바람을 자연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세라핀은 하늘의 계시로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이 진지하고 광기에 휩싸인 표정을 보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세라핀은 더이상 남의 집 빨래와 청소를 나는 가정부가 아니다. 그녀는 어느 예술가보다 더 큰 예술혼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며,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이다.
그런 그녀의 예술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아트 딜러 '우데'를 만난다. 그는 그녀의 예술적 천재성을 알아보고, 정원 밖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는 그림에 정진하여 위대한 예술가가 되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인인 우데는 독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상피르를 떠나야 한다. 눈 덮힌 우데의 집에서 텅빈 의자가 우데의 부재를 보여 준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상피르로 돌아 온 우데는 조그만 나무판에 습작을 하던 세라핀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림에 정진하여 예술가가 되어있음을 알고 기쁨에 휩싸인다. 상피르의 사람들에게도 그녀의 예술성이 알려지고 우데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전시회를 준비하는 세라핀. 늙고 힘이 없는 몸이 될때까지도 남의 집 빨래와 가정일을 하면서 힘들게 그림을 그리던 세라핀에게도 이제 따뜻한 봄날이 온 것일까?
그녀의 방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성공은 그녀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고, 아마도 자신을 지탱해 온 예술에 대한 광기가 갈 곳을 잃은 채 그녀의 정신을 휩싸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상피르의 세라핀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이다. 정신병원 앞에 있는 큰 나래로 다가가 앉는 세라핀의 모습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예술적 영감과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 내내 생각한 것은 '역시 이 아줌마(욜랭드 모로) 정말 연기 잘 하는데!' 였다. 욜랭드 여사는 광기와 순수를 오가며 뚱뚱하고 비루한 몸을 통해서 세라핀이라는 예술가를 생생하게 연기하였다. 정말 멋진 연기는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몰입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연기였다.(외모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이 땅의 배우들이 보면 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
또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보여 줄 수 있는 소통이 뭔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전문적 지식은 잘 모르고 생소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영화 속에서의 관객에게 상상을 줄 여지와 멋진 화면을 부여하며,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매우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생각들을 엮어 내는 솜씨가 멋졌다. 영화 내내 들리는 자연의 소리와 화면들, 적절한 이야기의 흐름과 음악들이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솔직히 이 영화에 더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예술가의 삶을 경외하는 마음이 깊게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남의 집 바닥을 박박문지르고, 지저분하고 형편없는 옷차림을 한 뚱뚱하고 볼품없는 세라핀의 모습에서 현실 속에서 늘 넘어지고 타협해가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세라핀은 그림이라는 예술에서 삶의 가치를 얻고 빛나는 행복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드넓은 풀밭에서 혼자 예술혼에 깊이 빠져 있는 세라핀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