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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핀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 욜랭드 모로 외 출연 / 에스와이코마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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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위해 선택할 때 우리를 결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주로 스토리와 배우, 감독을 보고 선택한다고 생각했던 매우 평범한 관객이지만,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순간을 포착하고는 선택과정에 대해서 흥미를 품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머리가 아프고 생각하기 싫을 때 선택하는 영화들은 우선 배우를 고른다. 내 구미에 맞고 영화를 보고 싶은 현재 내가 보고 싶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 아마도 영화를 고르는 것 보다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사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맘에 드는 영화가 없는 예쁜 그림과 맘에 드는 그림으로 채워진 애니메이션을 본다.

  또 심심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때울 때 흥행한 영화, 남들이 봐서 재미있었다는 영화, 뻔한 내용이 아닐 것 같은 스토리의 영화를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상으로 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 나는 예술가가 나오는 영화나, 영화제의 수상작, 또는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매우 흔치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살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생각도 하기 싫고 머리 아픈 것도 정말 싫은데 이런 영화들을 생각과 마음을 열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유와 시간, 체력까지도 필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대부분의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8500원이라는 돈을 영화보기에 투자하는 데 드는 선택을 좌우하는 것들이 쉽게 영화흥행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오늘은 영상으로 된 자극이 필요한, 그리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드문 날이었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 세라핀을 선택했다. 상식이라는 것은 정말 네이버에 있는 상설기사수준인 나에게 이 불운의 화가의 이야기는 생소했고, 그래서 더 영화에 푹 빠져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은 검은 밤 물가에서 더듬는 손에서 성당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성가를 부르는 저 못생긴 중년아줌마로 화면이 바뀌는데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이 뚱뚱한 여자는 뭐지?  하지만 이 여배우의 홀린 저 모습은 이 배우와 영화가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 줄 정도로 강렬했다.

 

 

 

   세라핀은 자연을 사랑한다. 나무에 올라가서 바람을 자연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세라핀은 하늘의 계시로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이 진지하고 광기에 휩싸인 표정을 보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세라핀은 더이상 남의 집 빨래와 청소를 나는 가정부가 아니다. 그녀는 어느 예술가보다 더 큰 예술혼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이며,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이다.

 

 

 그런 그녀의 예술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아트 딜러 '우데'를 만난다. 그는 그녀의 예술적 천재성을 알아보고, 정원 밖 의자에 그녀를 앉히고는 그림에 정진하여 위대한 예술가가 되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인인 우데독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상피르를 떠나야 한다. 눈 덮힌 우데의 집에서 텅빈 의자가 우데의 부재를 보여 준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상피르로 돌아 온 우데는 조그만 나무판에 습작을 하던 세라핀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림에 정진하여 예술가가 되어있음을 알고 기쁨에 휩싸인다. 상피르의 사람들에게도 그녀의 예술성이 알려지고 우데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전시회를 준비하는 세라핀. 늙고 힘이 없는 몸이 될때까지도 남의 집 빨래와 가정일을 하면서 힘들게 그림을 그리던 세라핀에게도 이제 따뜻한 봄날이 온 것일까?

 

 그녀의 방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성공은 그녀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고, 아마도 자신을 지탱해 온 예술에 대한 광기가 갈 곳을 잃은 채 그녀의 정신을 휩싸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상피르의 세라핀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이다. 정신병원 앞에 있는 큰 나래로 다가가 앉는 세라핀의 모습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예술적 영감과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 내내 생각한 것은 '역시 이 아줌마(욜랭드 모로) 정말 연기 잘 하는데!' 였다. 욜랭드 여사는 광기와 순수를 오가며 뚱뚱하고 비루한 몸을 통해서 세라핀이라는 예술가를 생생하게 연기하였다. 정말 멋진 연기는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몰입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연기였다.(외모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이 땅의 배우들이 보면 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

 

또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보여 줄 수 있는 소통이 뭔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전문적 지식은 잘 모르고 생소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영화 속에서의 관객에게 상상을 줄 여지와 멋진 화면을 부여하며,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매우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생각들을 엮어 내는 솜씨가 멋졌다. 영화 내내 들리는 자연의 소리와 화면들, 적절한 이야기의 흐름과 음악들이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솔직히 이 영화에 더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예술가의 삶을 경외하는 마음이 깊게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남의 집 바닥을 박박문지르고, 지저분하고 형편없는 옷차림을 한 뚱뚱하고 볼품없는 세라핀의 모습에서 현실 속에서 늘 넘어지고 타협해가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세라핀은 그림이라는 예술에서 삶의 가치를 얻고 빛나는 행복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드넓은 풀밭에서 혼자 예술혼에 깊이 빠져 있는 세라핀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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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리사 촐로덴코 감독, 마크 러팔로 외 출연 / 플래니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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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레즈비언 커플, 그리고 가족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 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아네트 베닝이 연기하는 매우 심술궂고 짜증나게 고집이 센 캐릭터와 줄리앤 무어의 감정적이고 연약해서 유혹에 약한 캐릭터의 레즈 커필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레즈하면 떠오르는 일반 캐릭터 보다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살아 있다. 오히려 이 커플의 두 아이들이 너무 착하다는 점에서 리얼리티가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10대 소년과 소녀의 작은 감성도 잘 담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소재와 잘 그려진 캐릭터가 만나 한 편의 좋은 영화가 되었다.

물론 이는 관객인 우리들이 레즈 커플에 대해 가지는 호기심을 잘 충족시키면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영화에서 레즈 커플은 특별하지 않다. 중년의 부부가 가지는 같은 위기,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가 가진 비슷한 갈등.

심지어 아네트 베닝을 남자배우로 캐스팅하기 까지 한다면 영화자체도 특별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평범한 가족에게 특별한 것은 정자 도너인 진짜 남자가 이 가족에 끼어들기를 원하면서 부터다. 어쩌면 이 가족은 이 남자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줄리언 무어의 불륜 대상자이며 아들의 놀이 상대, 딸의 관심 상대가 되어 순식관에 가족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가족에게 비인기인 아버지 같은 존재인 아네트 베닝의 존재는 의외로 탄탄한 것이어서 오히려 가족을 튼튼하게 엮어 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가끔은 이 사실이 무척 싫기도 하다.

나의 부모가 너무 싫고 짜증나고 억지만 부리는 존재로 비춰지더라고

가족이라는 끈과 울타리는 벗어나 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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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에브리원
로저 미첼 감독, 다이앤 키튼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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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맥 라이언이나 줄리아 로버츠와 같이 보기만 해도 우리를 상크하게 해 줄 로맨틱한 여주인공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 레이첼 맥애덤스를 보라.

 

21세기형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날씨가 우울하거나 기분이 찜찜할 때 이 영화를 보아도 상큼하고 진지한 그녀를 보면 기분이 좋아 질 것이다.

 

우리의 새 주인공은 돈 많은 남자를 기다리지도 않고, 예쁜척하거나 사랑스럽기만 하지도 않는다.

 

너무나 사랑해 마지 않는 일이 있고,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장점과 약점도 알고 있는

 

현명하고 재치있는 여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의 멋진 여성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딸이 생기면 이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정말 멋지고 사랑스럽다는 건 이런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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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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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도 비는 내렸다. 케플라비크로 가는 도로에는 커다란 타이어 자국에 물이 고인 곳이 있어 차들이 피해 가고 있었다.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이 쏟아져 에를렌두르는 차창 밖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물보라가 차창을 뒤덮었고,

게다가 남동쪽에서 무지막지하게 불어오는 푹풍이 차창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와이퍼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차 유리의 비를 제거할 수 없기에 에를렌두르는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핸들을 꽉 잡고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앞 차의 브레이크 등만 간신히  쫓아갔다.

 

  그가 아는 바로는 평소 같으면 에바가 한여름의 태양처럼 이렇게 밝게 빛나거나, 목욕을 막 마친 모습을 하고 있다거나,

거피를 끊여 내오면서 항상 아버지를 돌봐온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에바는 그를 쳐다보았다.

에를렌두르는 딸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문구멍 앞으로 오지 않고, 강방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아마도 침대에 누웠거나 벽에 기대앉은 모양이었다.

에를렌두르는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 깊은 곳에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아주 차분해져 있었다.

 

에를렌두르가 문을 두드렸을 때 엘린은 집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차로 돌아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산드게르디까지 계속 더 갈까 망설였다. 차 비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일기예보라고는 일체 보지 않는 에를렌두르는 도대체

이 마법이 언제쯤에나 풀릴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담배연ㄱ를 내뿜으며 이게 노아의 홍수 축소판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죄를 가끔은 씻어줘야 하는 모양이다.

 

에를렌두르는 굴착기가 30년 묵은 상처를 파헤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버킷이 땅을 파고들 때마다 움찔거렸다.

흙더미가 점점 쌓여갈수록 구덩이는 점점 깊어지면서 그 속의 어둠도 짙어져 갔다. 에를렌두르는 조금 거리를 두고 서서 버킷이 그 상처를 더 깊게, 깊게 파헤치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그 장면이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꿈속에서 이미 다 본 것처럼, 순간적으로 그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마치 꿈속에서 펼쳐지는 일 같았다. 동료들이 거기 둘러서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있고, 지방의회 사람들이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나와 삽에 기대어 서 있고, 목사는 커다란 검정색 코트를 입은 채 서 있었고, 무덤 속으로 쏟아지는 빗물은 굴착기의 버킷안으로 마치 구덩이가 흘리는 피인 양 쏟아져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사라져 버렸다. 덩그라니 외진 마음 속으로.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본능적으로 문질렀다. 그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는 그런 일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지. 너는 강한 사람이라 그런 일을 봐도 잘 견텨낼 수 있을 것 같겠지. 그런 일은 너랑은 아무 상관없는 듯 갑옷을 입고 멀리서 지켜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하지만 거리를 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철판이나 갑옷도 다 소용없어, 아무도 그렇게 강하지 못해. 죄책감이 악령처럼 따라다니면서 마음속에 톼리를 틀고 들어앉으면 절대 마음 편히 못 살아. 그 구역질나는 일들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까진. 그런 게 바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거든. 이번 일도 꼭 그래. 그런 것들이 고삐 풀린 유령처럼 네 속을 휘젓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상처만 입히게 될 거야."

 

그는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그리고 누구도 워치 않았지만 태어난 아이들,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아이슬란드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생각했다.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겁니다. 수집가가 뭔들 안 하겠습니까?" 우표수집가는 발행연도를 봅니다. 책 수집가는 출판연도를 보고, 천문학자들은 온 우주를 눈앞에 보고도 수수께기 간은 부분만 봅니다. 나 역시 끊임없이 내 현미경 헤계만 들여보는 거고."

 

"소장님은 그 비밀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군요. 오랜된 가족의 비밀. 비극과 슬픔, 그리고 죽음 이 모든 것이 컴퓨터에 체계적으로 들어 있는 겁니다. 가족사와 개인사들이. 소장님이나 제 얘기도. 비밀을 모두 가지고 있다가 원할 때마다 꺼내볼수 도 있는 거고요. 한마디로 전 국민을 들여다 보는 유리병 도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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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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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권과 2권을 3일에 나누어서 꼼꼼히 읽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다시 한번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그럴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우선 읽고 난 후의 생각들을 정리해 두고, 다시 읽고 싶을 때까지

 완성된 감상문은 미뤄두어야 할 것 같다.

 

 

 

1. 하루끼의 소설은 감각적이다.

  

  하루끼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수트를 입고 와인을 마시면서 재즈를 듣고 있는 거나, 패셔너블한 옷을 입고 멋진 음악을 들으며 에스프레스를 마시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하루끼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삶이 소설처럼 감각적일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인의 대부분이 이러한 감각적 경험과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고, 멋지고 쿨한 사람이란 이러한 감각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는 강박관념 속에 놓여 있다. 여기에 일본인 뿐만아니라 우리들도 이러한 감각적 삶에 대한 선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종교와도 같다. 스타벅스를 손에 들고, 페셔너블한 아이템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루끼의 소설을 읽으면 먼저 난 그의 브랜드를 느낀다. '아! 난 하루끼를 읽고 있구나!'는 그 자체로써 소설계의 브랜드이며, 그리고 비록 주인공들은 이런 현대인의 관념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캐릭터이더라도 하루끼가 묘사하는 스타일과 형식은 감각적으로 읽혀진다. (아마도 하루끼라는 작가는 독자들이 이러한 감각적인 형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작가 스스로 감각적인 형식을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감각적인 형식의 글쓰기는 훔치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며 소설 속에서 만들어 낸 세계와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늘 그에게 놀라고 만다. 가끔 그 감각적 형식 때문에 문학적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때도 있지만!

 

2. 하루끼는 엉뚱한 사람이다.

 

  하루끼의 에세이들을 통해서 상상하게 된 하루끼는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동시에 읽으면서 그는 매우 엉뚱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하루끼 소설을 연구하는 모임이랄지, 그를 사랑하는 애독자모임이랄지,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지만 또 하루끼를 열렬히 사랑했던 필자도 한 달내내 하루끼의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해 상상해 보았지만, 항상 상상하지 못하는 범주에서 늘 독자들을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내는 솜씨를 보고 있자면, 그는 정말 엉뚱한 천재인 것만 같다.

  

3. 하루끼의 소설은 오마주로 가득하다.

 

  아마도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가 무엇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독자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클래식, 헐리우드 영화, 미국 소설, 재즈, 일본 근대 소설, 역사, 패션, 자동차, 총 등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러한 애정어린 소재들은 보다 특별한 의미로 소설에서 중요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이야기 속에 이러한 소재들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끼워넣어 지기도 하고 이야기의 진행에 중요한 기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오마주의 형태로써 이야기 전체를 기반으로 하기도 하고, 상황을 이끌어 나가기도 하는 등 소재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감각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야나체크의 음악과 조지오웰의 1984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설 속에서 소재나 배경이상의 존재이다. 때로는 이러한 오마주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소설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여, 그의 소설을 문화의 보고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오마주는 이야기를 넘어 설 만큼 커서, 문화적 오마주에 의해 증폭되거나 오마주에 대한 이해없이 읽혀질때 이야기가 반토막짜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또한 하루끼의 오마주는 그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소재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그를 사랑하는 독자는 그를 좋아하기에 재즈를 듣거나, 위대한 유산을 읽고, 그처럼 느끼기를 생각하기를 고대한다. )

 

 

4. 하루끼의 소설은 일본적이다.

 

 

  우리가 욘사마의 성공, 동방신기, 보아의 오리콘 진입에 감격해 하는 사이의 우리의 소설, 만화책,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의 시나리오들까지 일본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마치 리틀 피플의 힘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생각의 구석 구석까지 긴팔을 늘어뜨리며 소리없이 깊숙히 우리의 문화 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사실 문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통합해 가는 과정이라지만 일본문화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문화를 장악해 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문화가 다른 문화와의 통합이나 융합을 할 때 발생하는 두려움,이질감이나 반성, 고민이 없이 일본문화가 우리 문화 속에 들어와 있기에 발생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도 돌아보라!  만화책, 애니메이션, 소설, 영화, 일드 등 다양한 문화 속에서 얼마나 쉽게 일본을 느낄 수 있는지)

 적어도 무엇이 다르고 이질적이고 일본적인지 이해하지 못한 체 문화가 통합되어 버린다는 것이 어찌 두렵지 않은가?  이를 통해서 우리가 누리는 문화의 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지, 연예인들의 일본 진출을 통해 우리의 한류만을 추켜세우는 것도, 일본 문화의 저력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 것을 지키자는 것도 아니다.

 

 하루끼의 소설을 읽고 일본적이라고 논하는 것은 참 바보같은 짓이다. 왜냐하면 하루끼는 일본인이니, 그의 소설은 당연히 일본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하루끼라는 브랜드가 그를 더 특별하게 해서 그런 걸까?(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더 많은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그의 소설이 일본을 담고 있다는 것, 우리와 다르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미국 문학에 대한 애정은 일본인들의 특별한 미일감정에서, 그의 주인공들의 근면성은 일본민족의 특별한 장인정신에서, 환상적인 이야기들와 수수께끼들은 일본문학의 장르소설들에서, 일본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때 그의 소설이 좀 더 분명하게 보였고, 이는 일본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그랬다. 이제는 더 가까이 다가온 일본 문화을 알기 위해서 그들을 공부하고 이해해 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문화는 통합이 아니라 예속되어가고 말것만 같다.

 

 

5. 하루끼의 페르소나들은 그를 닮았다.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떠한 외모와 성품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이는 어떠한 자기계발서보다도 더 큰 모멘트로 작용한다. 언제나 하루끼의 소설을 읽으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어쩌면 주인공들이 그를 닮았기에, 꼭 형제나 자매처럼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육체에 민감하거나 육체를 단련하는 데 성실하며, 감수성이 예민하며 매우 감각적으로 생각하고 대화한다. 또한 그들의 삶이나 생활은 패션처럼 쿨하고 대범하다. 또한 그들의 향수와 수수께끼들은 그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며 우리를 끌어들인다.

 

  수수께끼같은 이야기들, 환상적인 배경들, 닮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주인공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끼의 멋들어진 이야기 솜씨가 그의 소설을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에 나는 그를 가진 일본문학계를 질투하고,(사실 하루끼 뿐이랴! 일본문학의 매력적인 작가들은 넘쳐나고, 그들의 책들을 끊임없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인쇄되고 있으니 어찌 질투나지 않으리!) 하루끼라는 브랜드를 경외하는 만큼 두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들도 더 많이 읽어서 우리만의 하루끼를 발굴해 주리라 상상해본다. 아니면 하루끼로 공기번데기를 만들어 우리나라에도 다른 하루끼를 만들어 내는 상상이라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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