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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심상치 않다. “몸으로 하는 공부”.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거다’ 쯤 되겠는데, 비슷한 버전으로는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 ‘공부는 머리로 한다’, ‘공부는 돈으로 한다’ 등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읽기와 글쓰기는 몸으로 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여긴다.”(5쪽, ‘서언’ 중)
공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지식인은 어떤 사람인지, 학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문화와 책, 글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단상들로 채워진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잡문’을 이것저것 끌어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주제가 모든 글을 하나로 꿴다. 서로 통한다. 그러니 핵심은 몸이고, 공부다.
“공부”는 그렇다 치고, “몸으로”라는 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두 가지만 꼽자면, 우선 ‘직접, 스스로, 끈기 있게’ 공부한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내 눈으로 읽어서 내 손으로 쓰는 것이 핵심이다.”(190쪽)라는 저자의 말도 그러한 의미가 아닐까.
두 번째는 ‘머리로’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몸으로’이다. 머리 즉, 생각만 하는 건 반쪽짜리 공부다. 몸만 쓰는 것(경험만 하는 것)도 반쪽짜리다. “몸으로 하는 공부”가 완전체다. 경험한 것을 이론으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은 실천해야 한다.
몸(경험)과 머리(이론)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굳이 공부의 순서를 따지자면 몸이 먼저다. 일상적인 삶, 생활, 현실, 물리적인 습관과 시간 등을 토대로 문화, 멘탈리티, 이론 따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현실, 사례, 예시를 공부하고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몸으로 하는 공부”의 목적은 ‘위기지학’이다. 위기지학은 ‘자신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학문’(다음 백과사전)이라는데, 자기 수양을 위하거나 자아실현, 인간 본질의 실현을 위한 공부쯤으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인간다움의 본질은 생각하는 것, 자유로운 것이다.(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저자도 “오히려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예 상태에서 살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125쪽)다고 표현하니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국가와 자본, 미디어, 지식인, 권위 등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과 관계 속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예 상태나 다름없다.(덧붙이자면, 저자는 비판적 사고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고민하라. 번뇌하라. 아무 생각 없음은 악이다. (…)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 (…)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130쪽)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공부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실천하자. 몸으로 공부하자.
따로 더 찾아보고 공부해야 할 내용도 더러 있었고(특히 ‘10장 한국 ‘문화’ 탐구 방법론’이란 글에서 여성해방의 역사에 관련된 부분), 동의하기 힘든 의견도 있었지만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책 전체의 주제에는 깊이 공감했다. 부록처럼 실린 ‘내가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장도 인상적이다. 스스로를 ‘누군가 뭘 열정적으로 하는 것도 비웃는 사람’(159쪽)이라면서도 저자 자신은 치열하게 공부한다. 구체적인 공부법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고,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말1) 이 책이 ‘품절’ 상태인데, 출간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 중고거래가가 지나치게 높다. 예전에 읽고 중고로 팔았는데, 다시 사려니 비싸다(팔 때는 좋았다지). 도서관도 멀지만, 너절한 책을 빌려 읽기가 싫다. 중고거래가가 높다는 건 수요가 있다는 의미일 텐데, 제본 질을 좀 높여서 출간했으면 좋겠다. 읽다 보니 종이가 책 본체에서 낱낱이 떨어질 것만 같다.
덧붙이는 말2) 책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저자가 어릴 때 박목월이 쓴 박정희 전기를 읽고 박정희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박정희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고, (…) 독서의 기억과 겹쳐짐으로써 배신감, 증오심까지 생겨났다.’(51쪽)고 한다. 너무 증오한 나머지 연좌제가 불법이고 ‘애비와 자식은 무관하지만’(같은 쪽), ‘뻔뻔스럽게 설치고 다니는 그의 큰딸에 대해서는 정말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같은 쪽)라고. 2005년에 쓴 책인데, 지금 저자는 ‘그의 큰딸’에 대해서 때려죽이고 싶은 정도보다 더 심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