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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3.0 - 김광수 소장이 풀어쓰는 새시대 경제학
김광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1. 빈곤, 그 불편한 진실과 해법
- 빈곤에 대한 이해
: 빈곤은 경제 성장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현상으로, 분배와는 별개의 문제다. 빈곤문제는 경제 시스템에 내재된 본원적 경제 현상이고, 분배문제는 제도적 문제다. 따라서 분배개선을 위한 노력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차선책이지,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과정에는 주식투자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듯, 필연적으로 빈곤현상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 상대적 빈곤의 급증
: 빈곤에는 생물학적 절대 빈곤과 경제적 상대 빈곤이 있다. 경제적 상대 빈곤은 평균적 생활을 기준으로 한 계층 간의 소득격차를 드러낸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최근 가구의 30%에 이르는 477만 가구가 차상위 소득 이하의 잠재적 빈곤계층에 해당한다는 통계가 있다.
➡ 90년대 후반 IMF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특히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은 우리 사회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양산, 실업문제 등을 유발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달려온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은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허니문푸어, 88만원 세대 등 ‘빈곤’을 빼놓고는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여전히 대기업과 상위층 중심의 제도들을 쏟아냈고, 건설붐의 환타지에 머물면서, 국민들의 질적 생활 개선에는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정책들을 추진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라기 보다는 의지적으로 안한 것이다.)
저자 역시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표현하고 있다. 선진국의 길을 달려온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듯이, 빈곤문제는 필연적 현상이지만, 인적 자본에 대해 그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현저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빈곤이 경제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면, 양적 경제 성장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고,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성장 속에서 안정된 노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 여러 빈곤층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빈곤현상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거나 일시적, 시혜적 지원에 머무는 등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시도는 미미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들이 놓여있는 사회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제 빈곤문제는 보다 활발한 사회적 논의 및 정부의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정책들을 통해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노동을 다시 생각한다, 머슴 경제의 구조화
- 경제위기 극복을 내세운 대량 해고의 면모
: 문제는 미국식 고용 유연성을 말로만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기본적인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만 따왔다는 사실이다. 미국 기업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한 것은 단기적 이익 극대화를 위해 언제든지 근로자를 손쉽게 해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능력있는 사람들이 쉽게 일자리를 얻어 임금 소득을 향상시킬 기회를 얻게끔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근로자를 기업의 이익을 위한 단기소모품으로 인식하고 비용절감의 수단으로만 봤다. (제조업의 경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불과한데도……)
- 비정규직 문제
: 노노(勞勞) 간의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과 복지 등의 극심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정규직 사원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규직 입장에서는 언젠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된다. 반면 비정규직은 인격적 모욕감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근로자라고 해도 신분과 이해관계가 확연히 다른 두 근로자 집단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 자영업자의 급증
: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서비스업의 일자리는 대부분 생계형이었다. 지식기반형이나 고부가가치형 전문 서비스업의 취업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조그만 가게를 차리는 식의 자영업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생계형 서비스업종도 과잉돼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정부의 서비스 산업 정책의 결과로 생각하며 자랑거리고 삼았으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 어제까지 은행에 다니던 가장이 오늘은 잘리거나 눈칫밥을 먹다 사표를 내고, 내일은 편의점이나 고깃집, 치킨집을 여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오랜 시간 나름의 고등교육을 받고 화이트칼라로 지내다가 한순간에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일개 회사원에서 ‘대박집 사장님’소리를 듣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면 나름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보도들을 보면, 이미 자영업자들은 포화된 상태고, 이들 중 다수가 부채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부 화이트칼라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그 전부터 생계를 위해 가장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자영업이다 보니, 여기에 누적돼 있는 서민들이 상당수다. 이들 다수는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고 별다른 기술은 없는데다가 가장 역할을 하다보니, 현재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서민층의 몰락과 그에 따른 신빈곤층의 양산을 부추기고 가난의 대물림까지 낳고 있다.
실제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위에서 살폈듯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적 모욕을 감수하며 생활하거나 해고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또한 청년들은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속적인 학업 및 장기적인 취업준비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전반 분위기 속에서 생계를 위해 파지를 줍는 사람들과 일용직 노동자들, 대리운전기사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 직업이 공무원이 됐다는 사실은 모두 우리사회의 슬픈 단면들이다.
인간에게 노동은 자신의 삶을 가꿔갈 수 있게 하고, 타자들과 소통을 가능케 하고, 사회적 기여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소수의 자본가들을 위한 편리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노동자들은 가치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회를 일방적으로 박탈당하며, 불안과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이런 전반의 상황은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의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저 자신들의 배를 불릴 수만 있다면, 노동자들의 삶은 그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식의 저열한 사고와 이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맞물리면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들의 설 자리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각자를 사회의 중요 구성원으로 인식하면서 노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3. 외환위기 이후 왜 진짜 개혁을 하지 못했나
- 양극화의 심화
: IMF 사태 이후, 제2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도 진정한 개혁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외환위기 이후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와 여기에서 파생된 계층간 분열 때문이다. IMF사태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 IMF사태 초반부터 상위계층은 불로소득으로 더 부유해졌고, 중하위 소득 계층은 더 가난해졌다. 기업 역시 중견 그룹과 중소기업은 쓰러졌고, 경쟁력 있는 알짜배기 기업들도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그나마 상위 몇몇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기업이 재편됐다. 이후에도 2001년 경기 부양 명목으로 ‘길거리 카드’를 남발하게 하거나 부동산 투기 광풍을 조장한 정부의 정책들은 신용불량자들을 양산하고 서민들이 열심히 일해서 은행 이자를 갚도록 하는 착취구조를 만들어내며 양극화를 고착화시켰다.
이제 은행 대출을 받아 투기한 사람들은 아파트 가격 하락은 곧 자신이 망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은행빚으로 아파트 투기 한 번 했다고 투기 대책에 결사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더 황당한 것은 투기하지도 않았고, 투기할 여력도 없는 중하위 계층이다. 이 계층은 오로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상대적으로 가난뱅이 무주택자가 된 것이다.
➡ IMF 구제 금융을 받던 때로부터 어느새 15년 정도가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때 비롯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물신주의가 팽배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사실, 정부의 잘못된 정책들은 하나씩 열거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다. 하지만, 이에 앞서 어떤 방식으로든 내 돈만 불리면 된다는 이기심과 돈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의 눈먼 욕망들이 결국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만든 근본 원인일 것이다. 4년 전,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부자가 되면 좋겠다는 욕망들로 온 사회가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경제대통령’이라는 그들의 슬로건에 낚여 들었던 것이다.
있는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있음’으로 인해 더욱 있게 되고, 없는 자는 자신의 ‘없음’으로 인해 더욱 없게 되면서, 양극화의 골은 깊어져 가고 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로또대박을 꿈꾸고, ‘빌딩 하나만 있으면 인생펴는 건데... ’식의 우스개를 술자리에서 함께 나누며 씁쓸해 한다.
자신의 가치를 키워가는 노동을 통해 소득을 점진적으로 창출해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모를 잘 만나서, 또는 금융의 원리와 허점을 파악해 불로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는 진정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최근 전망을 보면, 우리들의 눈먼 욕망으로 인해 이미 속앓이를 하고 있는 서민들이 상당수라 한다. (워킹푸어, 하우스 푸어를 떠올려 보자) 현재의 정부는 이미 집값이 하락하고 있고, 집을 구매한 대출자들의 원금 상환일자가 다가왔음에도 이를 잠시 미루는 방식으로의 미봉책들만 내놓고 있다. (하긴, 뉴타운과 4대강 살리기 등으로 21세기의 우리 국토마저 자신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공사판으로 만든 정부인데, 진정한 부동산 대책을 시행하려는 의지는 처음부터 없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제 그동안 평범하게 일하고 소박하게 가정을 꾸려 생활해 왔던 서민들이 곧 대출금상환과 집값하락 등으로 붕괴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전문가들의 노력도 필수적이나, 무엇보다 삶의 가치를 돈이나 집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데서 찾으려는 진지한 마음공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