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들의 공개수업을 핑계로 월차를 냈다.

유치원도 아니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무려 중학생의 수업을 공개로 진행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나처럼 생각하는 부모가 한둘은 아니었는지 참석율이 저조한 관계로 흐지부지 해지는 바람에

졸지에 하루의 휴가가 생겼다.


하여,

몇년을 미뤄온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수면 내시경도 하고, 유방암 검사도 하고(이건,, 할때마다 고통.... 온 우주의 힘을 끌어모으는 작업을 해야해서),

아무려나 하고 나니 속 시원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매콤한 것이 땡겨서 비빔국수 한그릇을 먹으며 남편에게 사진 한장을 전송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당신 제정신이야? 위 내시경 하고, 바로 매운 음식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아니니?"



그래요. 나는,

상식이 없는 여자입니다.

책을 읽으면 무엇하나요. 상식이 없는데요.;;;

그러나,

내 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갑자기 생겨버린 하루의 휴가.


길가의 장미가 유난히 빨갛다.



최근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 당췌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차근차근 착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매운것도 먹었겠다,

카페인 수혈이 필요해서 커피숍을 찾았는데,

병원 근처는 낯선 곳이라 어디로 가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가고 싶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도 싫고,

밖에서 기웃기웃 거리다 들어가게된 커피숍은 3명의 젊은 남자 직원들이 지나친 싱그러움을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나갈까?

너무 부담스럽다.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원두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하고, 계속 방실방실 거리면서 웃는다.

아 부담스럽다.


겨우 커피 주문이 끝났는데,

이번에는 또 베이커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아니,

나는 빵 안좋아한다고요.


그러나 나는 어느새 빵을 주문하고 말았다.




어째 점점더 I가 되어가는 듯.


그냥 아무도 지나친 친절을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ㅠㅠ 부담스럽다구요.


마시고, 먹고, 읽다가 집에 돌아왔다.


별거 없는 휴일이었다.


덧. 건강검진 결과 뇌혈관지수는 내 나이보다 무려 4살이나 어리게 나온데다가 체질량 지수 역시 과체중이 아닌 정상이 나왔다. 에헤라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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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체중이 아닌 정상이라니, 대단하십니다! 저도 다음주에 건강검진 있는데 말입니다....(깊은 한숨)

결국 빵을 주문하셨다 하셔서 웃었습니다. 저는 소주 마시러 가야겠어요!

관찰자 2025-06-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놀랍지 않아요?? 과체중이 아니라니.... 체질량지수가 관대해진듯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혈관지수도 쌩쌩한 김에 술이나 더 마시러 가야겠습니다. 다락방님도, 일단은 퇴사 라이프를 건강하게 잘 즐기십시요~!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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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종이책으로 사서 읽었는데, 들고 다니면서 읽지는 못했다;; 편지라는 형식으로 특별한 줄거리와 플롯 없이도 여러 사람과 여러 방향성의 견해를 자유롭게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딱히 어느 누구의 입장에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뭐랄까 일정부분 조금씩 반감이 생긴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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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0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엇 저도 이거 사놨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관찰자 2025-06-05 10:43   좋아요 0 | URL
넵. 저는 이걸 먼저 읽느라 아직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아직 다 못 읽었어요. 뭐랄까 저는. 이제 왜 문제작이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알만한 이야기였는데다가 모든 인물이 좀 작위적이랄까. 억지스러웠달까. 형식의 문제 같기도 하고 좀.. 그랬습니다.
 
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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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입해둔 카페목록을 살펴보다가 ‘추리소설 동호회‘를 발견했다. 뭐, 이런 동호회에 가입을 했냐 옛날의 나여. 별 생각없이 게시물을 훑어보다가 ‘매스커레이드 게임‘을 추천하는 글을 몇개 보았다. 이 작가, 너무 다작을 하는 것 아니냐. 성실성은 인정! 내용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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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2025-06-0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파 추리소설들이 취하는 흔한 형식대로,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에 비해 가해자에게 정해지는 법의 형량이 너무 적다.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싶다. 복수를 하고 나면 그것이 진정한 위안이 될 수 있는가.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로 이어지는 뻔한 내용인데. 왜 나는 손을 못 놓고 끝까지 읽어냈는가..>.< 그나저나 매스커레이드는 ‘가면무도회‘라는 뜻이라고....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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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소설 중 가장 강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의 목가>. 이완 맥그리거 감독,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인간 개인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인간을 둘러싼 더 큰 배경을 교차시켜 엮어내는 힘이 가히 대가의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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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2025-05-0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둘째 녀석의 작은 일탈이 있어, 과연 부모의 교육과 영향력은 자식에게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니 나는 이 <미국의 목가>를 철저히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으로 인해 고통받는 ‘스위드‘에 이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끙.

관찰자 2025-05-02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책꽂이에 있는 책을 재독하고 있는데, 필립 로스의 책이 이렇게 많은 줄 내 미쳐 몰랐네. 심지어 <미국의 목가>는 읽지도 않은 새것으로 그대로 꽂혀 있었다. 흠...... 어쩔꺼야.... 어쨌든. 이제 읽었으니 되었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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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에브리맨>


최근 노화와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시아버지는 76세에 접어들었지만 매일 새벽 5시반에 기상하여,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산을 오른다. 두시간쯤 되는 시간을 산에서 보내고,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다시 집을 나선다.

일명 '콜라텍'으로 불리는(내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콜라텍이 아니라 어르신들을 위한 전용 카바레 같은 곳) 무도회장에 가서 춤을 추신다. 실제로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버님 말씀에 따르면 매점 비슷한 곳에서 음식과 술을 팔기도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기 보다는 주로 또래의 여성들과 함께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공간이라고 하셨다. 자율에 맡긴 춤이 아니라 정해진 스텝이 있고, 파트너와 함께 해야 하기때문에 때론 레슨을 받기도 한다고 하셨다.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서울 청량리 같은 곳으로 원정을 가시거나 거꾸로 천안같은 곳으로 나가는 일도 있다고 하셨다. 주로 역 근처에는 이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음식점이 많기 때문에 근처에서 국밥을 드시거나 짜장면 등을 드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다.


다시 저녁에는 여자친구 분 댁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시고는 9시쯤 일찍 잠자리에 드신다.


골프를 즐겨 하시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어번은 골프 약속도 잡으신다. 


배우자의 죽음 뒤, 은퇴 이후의 삶을 저토록 홀로 잘 즐길 수 있다면 비교적 훌륭한 노년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아버님이 최근 부쩍 전화를 자주하셔서는 "다리에 힘이없다" "왜인지 입맛이 없다"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져서 산에 가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물론 병원에서는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일련의 노화의 과정인 것이다.


늘 쌩쌩하기만 했던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부쩍 짜증이 많아지셨다. 그리고 자꾸 왜그런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반복하신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니요. 그냥 늙어가는 과정이에요 아버님.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은 한 남자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시종일관 병에 걸리는 것에 대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버리는 것에 대해 걱정하던 그는 정작 한번뿐인 자기의 삶 속에서는 진지하지 못하다.

아니, 이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너무나 자신의 현재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약속을 지키고, 의무를 다한 삶이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로부터 도망쳤고, 도망칠 수 있었다.


훗날 버려진(확실히 버려진 것이다) 두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두 아들은 결연히 용서하지 않는다. 물론 이 에피소드가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멈춰섰다.

일방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자식에게 가한 폭력을 성인이 된 자식이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가? 본인은 본인의 삶을 후련하게 잘 살고 나서 청하는 화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늙어가는 것에 대해,

육체가 노화되는 것에 대해,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두려움을 전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어차피 죽음은 다가오는 것이기에

현재의 삶을 더 단단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혹, 그렇지 않은 삶을 산 채 죽음을 맞이 한다면 할 수 없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오래전에 한번 읽고,

마흔이 넘어 다시 읽는 <에브리맨>은 뭔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이기심과 무책임함으로 버려진 이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몇 줄의 언급 만으로 지나간 그들의 그간의 인생이 불쌍했다.


본인이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부릴 수 있는 그들의 이기심에 진저리가 났다.


죽음은,

다가오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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