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죽이기
강준만 / 개마고원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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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여론을 주도할 만한 지식인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식욕을 사랑하며 사물에 대한 객관성과 합리적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또한 충청권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있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접촉이나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신화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갖고 있으며 또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편에 속한다. 또한 절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정계복귀는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상황의 변화도 현실 속에서 이미 수용된 상황에서 나는 이책을 펼치게 되었다.

저자의 다작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호의에서 세권의 책을 읽어보았다. 대중문화에 대한 글과 지식인에 대한 글 그리고 이책인데 공통적인 논지는 언론이 차지하는 자리에 대한 비판의 늘 날카로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언론의 대중성과 상업주의 공익성의 추구, 그리고 언론과 지식인의 관계 등을 한 매체와 연결지어 확산시켜가는 관심과 영역의 확장성이 다작의 부정적 측면을 커버해 주었다. 그리고 지향해야할 점이 단순하고, 명쾌하게 직설적으로 쓰여져서 좋다. 계속 군더더기말처럼 동일한 주제의 반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성을 요구하고 있기에 지루한 느낌이 적었다.

본서로 들어가서, 김대중이란 인물을 통해 언론과 지식인이 나가야 할 방향을 밝혔다는 닫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내 사고와 선택의 기저를 들여다보니 저자가 4부에서 인용한 지식인 그룹가운데 낯익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건 내가 사회가 지향해야할 점에 대해 무심하게 살면서 아예 지식인들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늘 그렇잖아'라는 냉소주의로 일관했음을 반영하고 있었다. 비판자로서의 내 몫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살았다는 자아비판도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지역감정에 대한 논제를 일상성 속에서 말할 때에도 역시 양비론적 태도를 많이 보인듯하고 스스로 진보적 사고를 한다고 여기면서도 기실 지식인의 낭만적 지도자론을 들을 때마다 속이 후련한 반론을 한번도 못해본 것 같다.

정치적 혐오증이 팽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궁극적 행태는 정치'라는 말이 생각난다. 일관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따뜻한 배려를 하며 겸손과 온유를 행하는 인간이고자 원한다면 잠자는 이성과 무지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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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이현혜 지음 / 일조각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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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원 수업중에 날마다 좋은 책을 한권씩 선정하여 대강이라도 읽고 발표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선택한 책의 하나가 이현혜교수의 <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이었다. 의문의 꼬리를 쫓아 개별논문들을 하나의 주제로 연결하여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복원하였고 역사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저자는 청동기 자료를 활용하던중 청동기를 제작, 소유할 수 있는 경제기반에 주목하게 되어 생산력 변화요인을 찾고, 정치 사회적 발전관계를 밝히고자 정치집단간 각종관계가 성립, 유지되는 이면에서 물자교역이 중요메카니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교역에 관심을 쏟았다고 머리말에서밝혔다.

제목을 호기심을 끌만했다. 고대사부분에서 생산과 교역을 단행본으로 묶어 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 그리고 그동안 축적된 학문적인 바탕을 따진다하더라도 하나의 시론적 도전에 지나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을 갖고서 보았다.

목차를 살펴보면서 기 발표논문을 모아놓은 느낌보다는 목차를 정하고 계획된 틀안에서 짜놓은듯한 조직성과 통일성이 보였다. 전반적인 이해로부터 관심을 집중시켜 세부적인 곳으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방법을 활용한 느낌이 들었다. 고고학적 자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을 터인데 사료의 부족을 어떤 방법으로 메꾸어가며 고고학 논문과 차별화될까 또 상상력을 통한 고리연결은 어떻게 전개될까 생각하였다.

제1편은 농업생산력과 기술변화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경제생활과 역사발전의 상호관계를 밝히고자 농업기술에 대한 설명을 지나칠 만큼 상세하게 하고 있다. 진전이 거의 없는 것 같은 농업사회에서도 인간생활의 변화된 모습을 생생하게 유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를 끌었다. 특히 인상적인 해석은 16쪽의 황해도 송림 석탄리 유적과 경기 여주 흔암리 유적출토 유물을 통해 기경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목제였기 때문일 것으로 보며 기경구가 목제였다면 휴경기간이 그만큼 단축되었다는 증거로 본 점과 깬돌도끼를 주목하면서 동남아 원주민들의 민족지자료를 근거로 화전경작에서 사용된 구지구로 추정한 점이다. 초기작업이라서 설명시에 조선시대(31쪽)나 유럽의 연구성과(32쪽)를 들고 있고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많이 제시한 점(pp.58-62)도 눈에 띄었다.

제2편은 다양한 방법적 시도를 하고 있는데, 세형동검의 문화기반을 기원전4-3세기의 대동강유역과 충남.전라지역으로 보고 근거를 제시하며 청동기유물의 동향을 살핌에 중요 주거지유적 출토유물일람표를 활용하여 그지역의 토착사회가 적극적으로 청동기를 필요로하고 이를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모으고 설명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인상적인 부분은 교역을 증명하는 문헌사료를 제시(93쪽)하여 교역품이나 경로등을 발견할 수 없는 사실의 간극을 메꾸는 방법으로 훌륭하게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 연구를 통한 청동기 성분분석표의 활용이라든지 앞으로의 과학적 연구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실증을 통한 실상접근으로 한국고대사회의 본질적인 이해에 한걸음 더 접근하길 기대한다.

중요 유물로 상당히 비중있게 다룬 보습자료의 경우는 이경의 실시와 전개과정에서 고구려 및 신라의 경우 근거가 빈약한 느낌이 들었다. 현재 알려진 것이 6세기의 것이라면 저자가 다루는 시대에 비중있게 다룰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개개의 유물이나 유적의 성격을 밝히던 기존의 연구에서 진일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구체화시키려는 저자의 노력이 연결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국가형성의 요인을 밝힘에 있어서도 교역의 구체적인 사실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자세가 진지하였으나 객관성의 치밀함을 얻기란 현재의 자료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가지로 어려운 한국고대사의 선진 연구로서의 자리매김에 좋은 점수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연구에 관심을 갖고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 개인적인 작업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 같고 한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읽고 관심을 가짐으로써 다음 연구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진일보된 형태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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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동안 할 일들을 적어놓아 보니까 너무 많아서 어떻게 다하고 넘기나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다들 진행되었거나 완료된 결과로 남고 이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갈 일들이 남아있게 되었다. 아버님의 8순도 지나갔고, 아들의 배낭여행도 무리없이 완결되었고, 학교배정도 원하는 대로 잘 되었고 7주간의 사이버 연수도 마쳤고, 만점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역시 두개는 틀렸고, 경주답사도 했고 그 밖의 소소한 일정도 마무리 되었다.

  새로 시작되는 일들 역시 내 행위가 적극 개입되건 아니건 시간이 지나가면 방학동안 겪었던 숱한 일들처럼 종결될 것이다. 늘 최선을 다하려는 다짐으로 처음처럼 신선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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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늘 집의 일상사에 매여서(?) 방학하면 그날로 방콕 - 전업주부의 임무를 완수하려는 의무감으로 불탔는데...., 이번엔 여름방학에 이어서 겨울방학에도 경주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였다.

지난번의 남산답사에 이어 이번에는 신라 왕경의 중심지역 중 일부와 대왕암까지의 노선을 그려보면서 일단은 분황사로부터 시작했답니다. 분황사 당간지주의 거북이와 눈을 맞추며 놀다가 황룡사터로 가서 초석들을 다 눌러주고, 세 금당의 설명을 나름대로 해석해보고, 복원도를 그려보면서 신라인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애를 써보았죠. 멀리 건너다뵈는 미탄사 3층탑까지 논길을 건너 다녀오고 그리고 분황사 경내로 들어가 사방으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일제시대 복원해놓은 모전탑을 유심히 바라다 보았죠. 나오는 길에 어떤분이_나중에 경주유적홍보도우미 뭐 비슷한 일을 하는 분이라고- 호석인 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난 암사자가 아니겠냐고 하고 그분은 물개와 비슷한데 꼬리가 있는 것만 다르다고 하고, 짧은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낭산과 황복사3층탑 그밖에 가고 싶었던 곳들에 대한 늦은 오후의 일정을 그려보았습니다. 일단은 버스로 장항리까지 가서 도보로 탑을 보러 가기로 작정, 버스는 30분쯤 탔나요? 걷기를 거의 한시간(3km), 땀이 삐질삐질 나고 화장실도 없어서 수풀 속에서 잠깐 실례도 하고, 해는 서산으로 기우는데, 얼마나 가야할지 모르는채로 투덕투덕 걸어야 하는 상황을 조금은 불안해 하면서....그러다가 개울 저편으로 바라다보이는 탑을 찾았을 때의 감격이란, 가시에 긁히고 옷엔 도깨비바늘이랑 기타의 것들이 더덕더덕 붙고 그래도 기어올라 이리저리 살펴보며 석양의 빛에 이각도 저각도로 바라보는 맛이란,
돌아올때는 아쉬운 소릴 해서라도 차를 얻어타야겠다 하고 한대 시도했더니만, 그냥가는 거 있죠? 다른 차가 멈춰줘서 얻어타고 눈깜빡 할 사이에 버스 정류장까지 왔답니다. 또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릴 양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데 또 어떤 차가 서줘서 난 감사를 반복하면서 감은사탑, 문무왕릉, 이견대를 둘러보며 만파식적에서 나왔을듯한 대나무 바람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했답니다. 낯선 사람과 감포까지 동행해서 저녁까지 먹고 한마디 인사로 헤어진 후, 항구와 등대를 구경하고 갈매기가 앉아서 오리처럼 쉬고 있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7시 30분, 포항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욕심으로야 골굴사와 기림사까지 가고 싶었지만, 버릴줄아는 지혜가 꼭 필요한 것이겠죠. 앞으로 서너번은 더 내려올 작정이기도 하니까요. 좀 찝찝하긴 하였지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포항까지 택시를 대절했어야 했는지도 몰라요. 차는 대개 8시가 지나면 종착역을 출발하는 막차가 되는 것 같아요. 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교통환경이라고 설명해야 맞겠죠. 내가 탄 차에는 네명인가가 있었거든요.

포항에서 하루종일 기다렸다는 새결이와 찬얼이를 만나고, 보지 못했던 1년사이에 어쩜 그리도 이쁘게 자랐던지..." 새결인 활달하게 그리고 조리있게 말을 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찬얼인 여전히 선량하고 누나랑 잘 지내고 잘 웃고, 잘 먹고...." 엄마랑 아빠의 사랑과 절제를 받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예뻤습니다.

다음날은 경주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함께 둘러보는 중에 찬얼인 몇번 넘어지고, 그래도 다치지않고 잘 놀아주어서 고마왔답니다. 내게 방해가 될까봐 자꾸 마음을 쓰는 샘, 새결인 집에 가고싶다고 표현하고는 자기가 말을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차도없이 걸어다니며 힘들면 어떻게 하냐고 집에 가서도 걱정을 했다고 하네요.정말 이쁘죠? 바람이 몹시 차서 찬얼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저으기 걱정이 되어 더 있자고 못하겠더라구요. 장창골의 애기부처랑 고선사지 3층탑도 감동을 주었지만, 몹시도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했던 포항이 내 발길이 닿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 내겐 소중했답니다.

박물관을 나와서는 임해전과 안압지를 밟아보고 야경을 보았으면 하는 욕심을 품었죠. 그리고는 월성에 올라서 산성둘레를 밟고 다니며 반월형의 모습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관가자리였을 첨성대 주변이랑 대릉원쪽도 훑고 시림이라 불리워 손색이 없을 숱한 연륜으로 틀어진 나무들이 모인 계림을 스쳐지나 다시 월성으로 남천을 바라보며 고운모래가 반짝이던 여름의 남천을 그려보았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다짐지지 못하여 초석하나도 제대로 누워있지 못하지만 궁궐터를 밟아보는 심정은 근사하더군요. 백제의 도성지는 추측만 할뿐 확실한 것이 없는데 비하면 신라의 문화는 지속성으로 인해 복을 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 다음으로는 누에고치모양의 낮으막한 신령한 낭산 남쪽에서 시작하여 선덕여왕릉을 보고 문무왕능지탑과 황복사지 3층석탑을 찾아 보고는 농로길을 이용해서 진평왕릉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말로 하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안내하는 이정표도 제대로 없는 곳을 찾아다니기란 쉽진 않았답니다. 이 코스는 문화유산답사기의 한 장면을 기억하면서 잡은 코스입니다.ㅎㅎ 보문마을까지 걸어나오면서 여유있게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빡빡한 코스보다 좋았던 것은 생각의 여지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주의 명물 먹거리라는 콩나물 해장국도 먹었구요. 팔우정 로터리 부근에 먹자거리가 조성되어 있더군요. 대전집이 있길래 반갑게 들어가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늦은 점심을 먹은지 채 3시간도 안되었었는데 꾹꾹 눌러준 밥한공기랑 국한투가리를 말끔하게 먹었답니다. 또 먹고싶어라~~~ (물론 집에와서 시도를 해보았죠. 그 맛은 안나더군요. 해초가 없어서 김가루를 부셔넣어서 그 맛을 그리면서 먹었답니다.)

돌아오는 열차안에서는 세상모르고 자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창으로 코를 박고 어디쯤 지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역성을 표현하는 어떤 간판도 없네요. 아마도 기차길주변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안내방송을 통해 알아냈답니다.

얼마 안남은 방학이지만, 종묘와 중앙국립박물관에 둘러볼 생각입니다. 생각으로는 수원성도 돌고 또 강화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할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씩 반복하다 보니 세밀하게 알아지는 것들이 생기네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여행의 맛은 그 여정이 짧던 길던 일상을 떠난 독특한 묘미로 인해 충전을 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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