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늘 집의 일상사에 매여서(?) 방학하면 그날로 방콕 - 전업주부의 임무를 완수하려는 의무감으로 불탔는데...., 이번엔 여름방학에 이어서 겨울방학에도 경주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였다.
지난번의 남산답사에 이어 이번에는 신라 왕경의 중심지역 중 일부와 대왕암까지의 노선을 그려보면서 일단은 분황사로부터 시작했답니다. 분황사 당간지주의 거북이와 눈을 맞추며 놀다가 황룡사터로 가서 초석들을 다 눌러주고, 세 금당의 설명을 나름대로 해석해보고, 복원도를 그려보면서 신라인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애를 써보았죠. 멀리 건너다뵈는 미탄사 3층탑까지 논길을 건너 다녀오고 그리고 분황사 경내로 들어가 사방으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일제시대 복원해놓은 모전탑을 유심히 바라다 보았죠. 나오는 길에 어떤분이_나중에 경주유적홍보도우미 뭐 비슷한 일을 하는 분이라고- 호석인 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난 암사자가 아니겠냐고 하고 그분은 물개와 비슷한데 꼬리가 있는 것만 다르다고 하고, 짧은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낭산과 황복사3층탑 그밖에 가고 싶었던 곳들에 대한 늦은 오후의 일정을 그려보았습니다. 일단은 버스로 장항리까지 가서 도보로 탑을 보러 가기로 작정, 버스는 30분쯤 탔나요? 걷기를 거의 한시간(3km), 땀이 삐질삐질 나고 화장실도 없어서 수풀 속에서 잠깐 실례도 하고, 해는 서산으로 기우는데, 얼마나 가야할지 모르는채로 투덕투덕 걸어야 하는 상황을 조금은 불안해 하면서....그러다가 개울 저편으로 바라다보이는 탑을 찾았을 때의 감격이란, 가시에 긁히고 옷엔 도깨비바늘이랑 기타의 것들이 더덕더덕 붙고 그래도 기어올라 이리저리 살펴보며 석양의 빛에 이각도 저각도로 바라보는 맛이란,
돌아올때는 아쉬운 소릴 해서라도 차를 얻어타야겠다 하고 한대 시도했더니만, 그냥가는 거 있죠? 다른 차가 멈춰줘서 얻어타고 눈깜빡 할 사이에 버스 정류장까지 왔답니다. 또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릴 양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데 또 어떤 차가 서줘서 난 감사를 반복하면서 감은사탑, 문무왕릉, 이견대를 둘러보며 만파식적에서 나왔을듯한 대나무 바람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했답니다. 낯선 사람과 감포까지 동행해서 저녁까지 먹고 한마디 인사로 헤어진 후, 항구와 등대를 구경하고 갈매기가 앉아서 오리처럼 쉬고 있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7시 30분, 포항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욕심으로야 골굴사와 기림사까지 가고 싶었지만, 버릴줄아는 지혜가 꼭 필요한 것이겠죠. 앞으로 서너번은 더 내려올 작정이기도 하니까요. 좀 찝찝하긴 하였지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포항까지 택시를 대절했어야 했는지도 몰라요. 차는 대개 8시가 지나면 종착역을 출발하는 막차가 되는 것 같아요. 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교통환경이라고 설명해야 맞겠죠. 내가 탄 차에는 네명인가가 있었거든요.
포항에서 하루종일 기다렸다는 새결이와 찬얼이를 만나고, 보지 못했던 1년사이에 어쩜 그리도 이쁘게 자랐던지..." 새결인 활달하게 그리고 조리있게 말을 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찬얼인 여전히 선량하고 누나랑 잘 지내고 잘 웃고, 잘 먹고...." 엄마랑 아빠의 사랑과 절제를 받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예뻤습니다.
다음날은 경주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함께 둘러보는 중에 찬얼인 몇번 넘어지고, 그래도 다치지않고 잘 놀아주어서 고마왔답니다. 내게 방해가 될까봐 자꾸 마음을 쓰는 샘, 새결인 집에 가고싶다고 표현하고는 자기가 말을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차도없이 걸어다니며 힘들면 어떻게 하냐고 집에 가서도 걱정을 했다고 하네요.정말 이쁘죠? 바람이 몹시 차서 찬얼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저으기 걱정이 되어 더 있자고 못하겠더라구요. 장창골의 애기부처랑 고선사지 3층탑도 감동을 주었지만, 몹시도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했던 포항이 내 발길이 닿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 내겐 소중했답니다.
박물관을 나와서는 임해전과 안압지를 밟아보고 야경을 보았으면 하는 욕심을 품었죠. 그리고는 월성에 올라서 산성둘레를 밟고 다니며 반월형의 모습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관가자리였을 첨성대 주변이랑 대릉원쪽도 훑고 시림이라 불리워 손색이 없을 숱한 연륜으로 틀어진 나무들이 모인 계림을 스쳐지나 다시 월성으로 남천을 바라보며 고운모래가 반짝이던 여름의 남천을 그려보았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다짐지지 못하여 초석하나도 제대로 누워있지 못하지만 궁궐터를 밟아보는 심정은 근사하더군요. 백제의 도성지는 추측만 할뿐 확실한 것이 없는데 비하면 신라의 문화는 지속성으로 인해 복을 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 다음으로는 누에고치모양의 낮으막한 신령한 낭산 남쪽에서 시작하여 선덕여왕릉을 보고 문무왕능지탑과 황복사지 3층석탑을 찾아 보고는 농로길을 이용해서 진평왕릉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말로 하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안내하는 이정표도 제대로 없는 곳을 찾아다니기란 쉽진 않았답니다. 이 코스는 문화유산답사기의 한 장면을 기억하면서 잡은 코스입니다.ㅎㅎ 보문마을까지 걸어나오면서 여유있게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빡빡한 코스보다 좋았던 것은 생각의 여지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주의 명물 먹거리라는 콩나물 해장국도 먹었구요. 팔우정 로터리 부근에 먹자거리가 조성되어 있더군요. 대전집이 있길래 반갑게 들어가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늦은 점심을 먹은지 채 3시간도 안되었었는데 꾹꾹 눌러준 밥한공기랑 국한투가리를 말끔하게 먹었답니다. 또 먹고싶어라~~~ (물론 집에와서 시도를 해보았죠. 그 맛은 안나더군요. 해초가 없어서 김가루를 부셔넣어서 그 맛을 그리면서 먹었답니다.)
돌아오는 열차안에서는 세상모르고 자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창으로 코를 박고 어디쯤 지나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역성을 표현하는 어떤 간판도 없네요. 아마도 기차길주변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안내방송을 통해 알아냈답니다.
얼마 안남은 방학이지만, 종묘와 중앙국립박물관에 둘러볼 생각입니다. 생각으로는 수원성도 돌고 또 강화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할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씩 반복하다 보니 세밀하게 알아지는 것들이 생기네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여행의 맛은 그 여정이 짧던 길던 일상을 떠난 독특한 묘미로 인해 충전을 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