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1 - 군사 역사편
스티븐 앰브로스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연구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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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1,2를 보면서 대체역사의 즐거운 상상보다는 좀 답답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한 가지 사건을 들여다보는 방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역사의 수많은 동인들 가운데 한가지 틀이 바뀐다고 해서 역사 전체가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이를 테면, 1870년대의 엠스 전보 사건에서 나폴레옹3세가 좀더 차분하게 온건한 반응을 하였더라면 비스마르크는 내부의 문제로 물러나 앉았을 것이고 양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도 않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평범한 사람으로 역사속에 묻혀 지나가게 될 것 -별로 흥미없는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나 기억하는, 그리고 조지 오웰의 공상소설 속에서나 지나친 상상으로 스쳐지나가는 사건이 되었을까? 정말로??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결정적인 한 사건조차 그것을 이루고 있는 요인들은 너무 많고 다양하며 그중 하나가 소멸된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너무나 결정론적인 생각일 수는 있겠지만, 이 책에서 밝히는 것처럼 정반대의 길을 달릴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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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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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룡의 징비록은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고관을 지냈으며 임란 전 기간동안 왕을 모신 측근으로서 전쟁을 바라보는 넓은 눈과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어낸 한숨은 얼마였으며, 우리가 당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이름없는 민초들의 눈물겨운 항쟁은 얼마나 치열했던가? 하지만 그들의 수고에 대하여 아무도 칭찬하지 않고 난이 끝난 뒤에도 심한 군역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나 경계의 대상으로 죽음까지도 갔던 것을 생각하면 애국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는지, 회의를 하게 되면서도 내가 그런 상황을 만난다면 어떻게 행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되는 책이다. 내용가운데 감동적이었던 부분들을 인용해보자면, 

신각은  김명원의 부장이었다. 그런데 한강싸움에서 패하자 김명원을 따라가지 않고 이양원을 따라 양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 온 함경우도 병사 이흔과 함께 서울로 들어가 민가를 약탈하던 적을 격퇴시켰다. 이야말로 왜적이 우리 나라에 침략한 후 처음으로 승리한 싸움이었으므로 백성들은 감격해 모두 나와 환호했다. 그럼에도 김명원은 임진강에서 올린 장계에 이렇게 썼다. ‘신각이 제 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는 등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우의정 유홍은 글을 읽은 대로 임금께 보고했다. 결국 조정에서는 신각을 처형하기 위해 선전관을 파견하였는데, 마침 그때 신각의 승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사람을 뒤쫓도록 했으나 이미 선전관의 손에 그가 죽은 후였다. (pp. 77-79) 

적군은 이미 대동강변에 출몰하기 시작했고 재신노직 등은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궁인들을 호위하며 성을 나섰다. 이 모습을 본 성 안의 아전과 백성들이 난동을 부렸다. 그들은 칼을 빼어 길을 막고 나서며 폭행했다. 신주는 깅에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재신을 지목하며 말했다. “너희들이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이 무렵 연광정에서 임금께로 향하던 나는 아녀자와 어린 아이까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성을 버리고 갈 거면 왜 우리를 성 안으로 들어오게 했소? 이야말로 우리를 속여 적의 손에 넘겨주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궁궐 문에 이르러 보니 소매를 걷어올리고 손에는 온갖 무기와 몽둥이를 든 난민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신하나 궁안의 사람들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망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p.92) 

승전보가 전해지자 임금께서 대단히 기뻐하시며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주위에서는 반대했다.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순신은 정헌대부(정2품 문무관 품계)로 승급시켰고, 이억기와 원균은 가선대부(종2품 문무관 품계)로 승급시켰다. (p.122)

뜰 안에 떨어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처음 본 왜적들은 신기한 듯이 모여들어 이리 굴려도 보고 밀어도 보는 등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포가 큰 소리를 내면서 폭발하면서 수많은 쇳조각을 흩뜨리자 그 자리에서 서른 명이 넘는 적이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들도 큰소리에 놀라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렸다. 이 때부터 적들은 한편으론 놀라고 또 한편으론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했다.(p.133) 

당시(명의 평양성 탈환) 고니시 유기나가의 부대원 가운데 요시노라는 사람의 종군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그날 밤 북풍이 심하게 불어 동상에 걸린 병사들은 화살도 잡을 수 없었으며, 아픈 다리를 나무토막처럼 끌면서 걸어갔다. 그러나 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멈추는 순간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p.150) 

4월 20일 서울이 수복되었다. 중국 병사들이 도성으로 들어오고 이제독은 소공주댁에 숙소를 정했다. 왜적들은 전날 이미 빠져 나간 후였다. 나도 중국 병사들과 함께 들어갔는데 성 안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남아있질 않았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조차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있어 얼굴빛이 귀신같았다. 날씨마저 더워서 성 안이 죽은 사람과 죽은 말 썩는 냄새로 가득했는데 코를 막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기가 힘들었다. 건물과 관청과 개인 집을 막론하고 모두 없어져 버렸고, 왜적들이 거처하던 숭례문에서 남산 밑에 이르는 지역만 조금 남아 있었다. 종묘와 세 대권, 종루 각사 관학 등 대로 북쪽에 자리잡은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재로 변해 있었다.(pp.172-173)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려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여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p.181)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공께서는 우리를 살려 주셨는데, 이제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수많은 백성들이 영구를 붙들고 울어 길이 막히고 행렬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나라에서는 의정부 우의정을 추증했다. 그러자 형개가 나서 말했다. “당연히 그를 기리는 사당을 지어 충혼을 달래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바닷가 백성들이 모여 사당을 짓고 민충사라 이름 붙인 후 때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장사치들과 어부들은 오가며 그곳에 들러 제사를 지냈다.(p.213)  

 

조선왕조가 겪어내야 했던 가장 큰 위기를 겪어내는 모습들과 민초들의 분노 그리고 온몸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절한 사랑 등등이 가슴을 저미도록 감동의 물결을 불러 일으켰다. 내 나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어찌 말로 다 이룰 수 있으랴. 싸움만 밥 먹듯 할 것이 아니라 가슴 속으로 일어나는 민족애를 가만가만 느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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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혁명
존 로빈스 지음, 안의정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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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은 약상이다"라는 책을 통해 음식이 우리들의 삶과 건강을 확보하는데 얼마나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를 확실히 알았다면,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을 통해 먹으면서 알게 모르게 저질러지는 죄악에 관한 충격을 받았다.

베스킨 로빈스의 후계자였으면서도 보장된 부와 풍요로움을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주인공에 대한 매력도 넘쳤지만, 음식과 치유(제1부), 우리의 음식,  우리의 동물 친구들(제2부), 우리의 음식, 우리의 세계(제3부),  유전공학(제4부)으로 이루어진 5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좀더 신중하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아이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자주 패스트 푸드에 의존하여 살아왔던지, 매식하는 간편함에 얼마나 많이 매혹당했던지, 어쩌면 그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집에서 만들면서도 그 재료를 선택함에 있어서 꼼꼼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고 보는대로 고른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외국의 것-대표적으로는 미국의 것-이라면 맹목적이다 싶을 만큼 무한정한 신뢰를 보낸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참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몸이 예전같지 않을 뿐더러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노력이 정말 필요해 진다. 좀더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강건한 심신을 키우도록 배려를 하는 식생활을 통해 지구를 건강하게 지키는 일까지 관심의 영역이 확장되어 well-being을 제대로 실천할 수도 있었을텐데, 조금씩 아픈 구석을 가지고 있는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이제서야 눈을 뜨고 제대로 바라보는 내 모습이 미안스럽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내가 좀더 고급스런 음식을 선택하고자 애쓰며 소비하는 동안 우리보다 못사는 어떤 나라의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움찔하게 만들기도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꾼다는 것은 바라보이는 사람들과의 삶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야 할 많은 사람들의 몫까지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내 먹이를 확보하는 부분이 소박하고 단순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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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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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살아가는 세상의 크기는 줄어들고 생각의 범위는 한없이 좁아지는 것 같다.  더구나 끈적거리는 더위속에 늘어져 있게 되면 조그마한 이 세상이나 세상살이에 대한 단 한줄기의 생각조차 훌훌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이런 때 역설적으로 펴들면 좋은 책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책의 제목으로만 보자면 어쩐지 인문학 그것도 역사에 관련한 책이려니 싶지만, 우주로부터 미세한 원자의 구성물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학의 역사가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우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은 원자를 해체하는 미세한 세계의 움직임과도 맞붙어 있는 느낌 - 완벽한 조화로 느껴진다.  이를테면,                                                                                     "원자들은 너무나 흔하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주가 반드시 작은 입자들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거나 우리 존재의 바탕이 되는 빛과 중력을 비롯한 물리적 성질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우주 자체가 존재해야 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우주는 아주 오랜 기간동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 동안에는 원자도 없었고, 원자들이 떠돌아 다닐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지구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미묘한 일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수십억의 수십억에 이르는 생물종 중에서 99.99퍼센트는 더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이미 알고 있듯이, 지구에서의 삶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고, 놀라운 정도로 하찮은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잘 하지만, 멸종시키는 일에도 능숙한 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존재의 이상한 특징이다.(p.13)"      

   우주로부터 지구로 그리고 그속에서 살았거나 살고있는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지구를 살아있도록 존재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껏 우리가 누려왔던 놀랄만한 행운 이상의 인간의 노력이 필요함(하나 뿐인 지구, 하나의 실험)을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고 그리고 과학적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하는 책 바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주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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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시인 김수영을 생각하며...


1.
시인 김수영(金洙暎 , 1921.11.27~1968.6.16)은 밤새 술을 마시고 깨어나는 아침, 뱃속으로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그 느낌을 사랑했던 시인이었다. 그는 공복상태에서 오는 정신의 맑음, 답답했던 머릿속을 헤집고, 맑은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한 두 방울 씩 떨어져 퍼지는 코피의 핏물처럼 비록 피를 흘린다한들 그 순간의 상쾌함, 정신의 맑음을 흠모한 시인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시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연예인이나 영화배우 혹은 가수를 좋아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 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책을 구입하는 선택이 자본주의적 상품의 유통경로 중 가장 이성적인 판단에 기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의 깊고 넓은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 김수영은 우리 문학의 거대한 산맥이자 동시에 우리 문단의 대표 스타이기도 하다. 그의 사유의 소산들이 여러 시인들에게 계승된 탓도 있을 것이고, 많은 문학 청년들의 가슴에 그가 시인의 한 전형처럼 여겨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런닝셔츠 차림에 선병질의 얼굴, 신경질적으로 치켜뜬 눈의 시인을 담은 사진은 우리 집에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이렇듯 '문학적인 스타'라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이면엔 많은 오해의 소지도 있다. 무턱대고 난해한 시인으로, 혹은 신랄한 풍자의 시인으로, 지식인적인 풍모만을 지닌 시인으로, 때로 소시민적인 시인으로만 평가되는 것들은 분명 옳지만 일견 오해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은 그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느끼는 것인데, 나 자신이 고교시절부터 입이 닳도록 극구 흠모하던 그에 대해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있어 실제 그를 발견한 것이 나 자신인지 아니면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주입된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시인 "김수영"이 "신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진짜 시인 김수영을 발견하는데 도리어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며, 그가 1960년대의 위대한 시인, 그 당시만의 해석에 붙들리는 우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시인은 "친구여, 이제 바로 보마"라고 말했던 시인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들 당대의 시선으로 이제 시인을 바로 보자"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에 대한 이전의 수많은 논문과 연구, 평론들이 그를 조명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그에 대하여 잘 알 수 없다는 말은 게으름의 소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우리의 김수영이, 나에겐 나의 김수영이 필요한 것이다. 이 글의 출발점은 이 부분이 아니고선 안 될 것이다.(이 독후감은 편의상 "김수영 전집"에 대한 것이지만, 김수영이란 한 인물을 내 나름대로 입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던 그의 시집, 그에 대한 좋은 책들에 대한 종합적인 독후감이다. 시집을 제외한 도서명은 말미에서 소개하겠다.)

2.
시인은 산문을 쓰는 것을 꺼리고 때로는 불편하게 여긴다. 그러나 많은 시인들이 자신들의 시론을 산문의 형태로 남긴다. 그것은 시인이 시를 통해 산출하게 된 과정을 산문이란 형식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흔히들 김수영의 시론은 <詩여, 침을 뱉어라 - 힘으로서의 詩의 存在>와 <反詩論>에서 그의 시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고들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시여, 침을 뱉어라>는 실천적인 관점에서의 시론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론이라고는 하지만 김수영이 詩가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詩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엘리오트의 말처럼 시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사전 편찬자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시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재간은 나에게도 없지만 내 나름의 좋은 시인을 구분해내는 법이 하나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산문 잘 쓰는 시인"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시라는 장르가 지닌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진정성"이란 측면에서, 혹은 동양적인 미덕인 "언행일치"란 측면에서 시인의 일상과 시의 진정성이 결합되는 부분, 그의 사유가 시라는 정신적 산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노출되지 못한 사유의 잔재들이 표현되는 것이 산문이란 측면에서 그러하다. 시인의 산문이 중요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이다. 즉, "시"는 언어의 험난한 절애(絶崖)에 세워진 탑으로, 시인의 사유(산문)의 정점에 세워진 금자탑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산문을 잘 쓰는 시인 중 한 명은 바로 김수영이다.

3.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구절은 종종 인용된다. 김수영의 시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우리는 가끔 저널이나 평론가들의 산문에서 한두 구절씩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이 시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와 같은 대목도 그런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우리는 이 시를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솔직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그는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자신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모습이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나 참여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가 이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소위 '힘있는 자들의 위세'가 생각외로 그리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란 사실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기껏해야 '땅 주인'이나 '구청 직원' 또는 '동회 직원' 나부랑이에 불과하다. 김지하의 <오적>에 등장하는 그런 거물들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가 언급하고 있는 권력자들을 보며 솔직히 키득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바닥에 납죽 엎드린 시늉을 하며 우리들의 비위를 살살 건드린다. 아니 소위 '지식인'이라는 비루한 인간들의 비위를 확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그런 똥물에 빠져 고상한 척, 있는 척 하는 지식인들의 쓸개를 꺼내 씹어준다. 김수영이 "풍자냐, 자살이냐"를 말할 때엔 적어도 이 정도 배포와 익살은 가지고 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기껏해야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여 '이발장이'나 '야경꾼'들과 같이 가지지 못한 자, 힘 없는 자에게는 단돈 일 원 때문에 흥분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다 '붙잡혀 간' 소설가를 보면서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똥물(자기비하)을 뒤집어 씌우면서 그보다 더큰 불의에 대항하지 못하고, '설렁탕집'에서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이들의 똥침을 찌른다. 얼얼하게 아팠을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의 최대 히트작인 <풀>의 세계로 나아간다. 바로 서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자기 모멸과 반성을 거쳐야 한다. 스스로 더러운 땅에 들어가 온몸을 오물을 적시며 그는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들에게 비판의 세례를 준다.

이 시의 배경 중 다소 특별한 것은 그의 포로수용소 경험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아는 이들은 아는 이야기지만 그는 의용군이었다. 반공시대를 살아오면서 생존을 위해 강제로 의용군에 끌려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의식까지는 아니어도 단지 강제에 의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차피 그 속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으므로... 다소 무례한 추측을 해본다면 그가 북의 체제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의용군에 끌려갔다가 도망쳤는데 다시 인민군에게 붙들려 파묻어두었던 군복과 총기를 다시 파서 보여주고서야 총살을 면했단 이야기도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던 중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지만 그는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병원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에는 그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이때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느낀 모멸감은 상당한 것으로 후일 영어를 할 줄 알았음에도 번역일을 맡아서(이 무렵 그가 번역해낸 양서들이 상당수 되며, 그는 외국잡지들을 통해 외국의 문화계소식에도 정통했던 편이다) 생활에 보탬이 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실생활에서 영어를 통해 할 수 있는 밥벌이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포로수용소에 잡혀 있는 동안 그의 아내는 수원의 어떤 서양화가와 살림을 차려 살고 있었다. 시인이 포로의 몸에서 풀려나와 다시 사회로 복귀한 뒤에도 한동안 아내를 만나러가지 못하고 망설인 데에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이런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해방 정국에서 목숨을 잃은 시인 배인철의 연인이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김수영은 현대판 처용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시에 등장하는 아내의 모습이 그닥 긍정적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시인은 말로 산다. 좀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언어로 살아간다. 태초에 말씀이 있어서 가장 즐거웠던 이들은 어쩌면 시인들이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말>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어떤 시는 해석 이전에 먼저 말을 걸어온다. 마음으로 쓰인 시라 그럴 수도 있고, 비슷한 심리적 정황 속에 스스로 놓여 본 경험이 또한 그런 경험을 가능케 한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말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때로 시인은 지장보살의 현연이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기능이 시인의 기능과 일정하게 맞아 떨어지는 탓이 크다. 지장보살은 불덕으로만 보자면 득도하여 부처가 되고도 남는 이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지장보살은 염라지옥의 가장 하층의 저주받은 중생들이 모두 구원받을 때까지 스스로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의 염을 세운 이가 아닌가. 물론 시인들이 모두 불립문자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나 스스로 그리하지 않은 존재들인지는 묻지 말자. 비유일 뿐이니까. 시는 동시대의 공기와 접하여 가장 먼저 산화되는 사유의 접점이므로 시인들은 늘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며 더불어 정신의 피로와 슬픔을 호소한다.  

같이 말을 풀어내는 존재들이지만 산문을 주요한 표현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가와 시인의 가장 큰 차이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의 차이에 있다.(유치하게 시의 우월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말하지 않음으로 가장 많은 말을 한다. 시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들에 의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몇 마디 말로 인해 드러내진 부분 이외에 말이 가리고 있는 부분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가 사물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혹은 보다 멀리 보기 위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양손을 모아 시야를 좁혀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인은 언어의 양손을 들어 우리의 눈을 보다 자세히,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다. 깊이, 자세히의 포즈를 통해 넓이를 확보해낸다.

그런 시인이 "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무뿌리가 좀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겨울에 말이다. 모든 생명이 죽은 듯 엎드려 있는 얼어붙은 땅을 향해 뿌리가 깊이 가라앉았다. "이 가슴의 동계(動悸)", 동계라는 것은 숨이 차오는 것을 말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리고,숨이 차오는 현상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모든 생리적, 본능적 현상들 - 기침, 한기 - 도 내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에게 속해있는 혹은 뗄 수 없는 관계들조차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질서가 죽음의 질서에 종속되어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두번째 연에서 시인의 그런 마음은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익살스러울만치 모든 거리가 단축되고
익살스러울만치 모든 질문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고해야 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거리가 단축된다는 것은 심리적인 거리를 말할 수도 있고, 원근감의 상실을 말할 수도 있고, 세상의 사물들이 실제로 존재해야 하는 공간을 이탈한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질문이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문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의문이 사라지는 순간은 해탈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의문과 질문은 다른 것이다. 의문은 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을 입밖에 내어 질문으로 전환시킬 수 없는 순간. 그것은 폭력의 순간이거나 강압의 순간이다. 묻고자 하나 물을 수 없다. 게다가 시인은 고립되어 있다. 세상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말은 곧 깨달음이지만 세상은 나의 깨달음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셋째 연에 가면 그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 침묵의 결과, 마음 속 동계의 결과들은 그러나 추상적이지 않다. 시인은 세상의 불의나 억압에 대해 진실을 고하고 싶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매우 구체적이라 그는 조무래기처럼 느껴진다. 스스로의 삶은 허접하다. 말하지 못하는 말 때문에 "아내를 다루기 어려워지고" 자식도, 친구도 점점 그를 업수이 여긴다. 그럼에도 그는 말하지 못한다. 공연한 타박이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고, 너 혼자 그래봐야 세상이 변하니 하는 그런 일리있는 포기의 답변을 들을까 두렵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

4연의 역설은 놀랍도록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하늘의 빛, 물의 빛, 우연의 빛인 말은 고로 우연히 나에게 스며든 말일 수도 있다. 천지 사물 속에 깃든 빛의 말은 감히 나같이 하찮은 존재에게 스밀 수 없는 말이므로 감히 나의 말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우연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말들은 -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 이다. 말은 나의 말이되, 나의 말이 아니다. 시인은 고립됐다. 그의 말은 신의 말을 모사하는 방언이 되었고, 방언은 지껄인다 한들 그것을 해석해줄 이 없으니 말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니 무어라 지껄여도 상관없는 만능의 말이다. 그의 말을 겨울의 말로 만들던지, 봄의 말로 만들던지 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다.

5.
시인의 삶 속에는 우리 현대사의 격렬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국전쟁을 겪었고, 다시 이승만 독재 시절을 거쳐 4.19혁명을 겪는다. 그가 4.19의 순간에 얼마나 가슴 뿌듯한 희열에 가득찼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증언들이 입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혁명은 곧 좌절된다. 그런 시기에 나온 시가 유명한 <그 방을 생각하며>였다. 이 시 역시 전문이 인용되기 보다는 첫행의 격렬함 탓인지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역시 첫 구절이 주는 강렬함이 드세다. 그 방에는 "싸우라", "일하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죄다 헛소리 혹은 헛소리 같이 공허한 것들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노래들 - 싸우라, 일하라 - 라는 구호들을 이전의 구호들처럼, 아니 이전의 노래들처럼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첫연의 구절을 두 번째 연에서 반복한다. 시인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은 녹슨 펜, 앙상하게 남은 뼈, 그리고 표독한 광기, 그리고 가벼운 실망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를 "역사일지도 모르는"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말은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정의이다. 역사를 묵직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체험의 연속, 낙망의 연속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역사의 정의는 무수하나 역사란 기본적으로 흘러간 과거를 말한다. 그에게는 이번이 처음의 실망도, 낙망도 아니다. 그런 탓에 펜은 녹슬어 버렸다. 그것을 한탄만 하고 있다면 이 시는 그저 그런 재미없는 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3연에 와서 1,2연에서 반복했던 구절을 교묘하게 비튼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그의 입속에는 의지의 잔재 대신에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다. 구취(口臭)! "bad breath" 그는 방, 낙서, 기대를 잃었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도 잃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이런 낙망한 순간이 있는가? 시인이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으니, 읽는 나도 그게 대관절 무슨 말인지 알아챌 수가 없다. 하기사 시를 쓴 본인 스스로도 모른다 하지 않던가?

이럴 때 제목은 이 시 전체를 암시해준다. 시 제목이 무엇이던가? "그 방을 생각하며"가 아닌가.
시인은 방, 낙서, 기대, 노래, 가벼움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현재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제목도 "그 방을 생각하며"라고 지었다. 그는 혁명을 꿈꾸었으나 방만 잃었다, 방만 잃은 것이 아니라 그와 관계되는 온갖 허접한 것들을 잃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나와 그 방을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허접이었다. 버림받은 것인지, 버려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시인의 가슴이 이유없이 풍성한 까닭은 그것이다.

시인은 이제부터 자유다. 까닭이 있는 것은 대항할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지 모르고도 기쁠 수 있다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이나 현상이 현재로서는 타개된 것을 의미한다. 이유없이 풍성하다는 것은 그를 옭죄던 현실의 무게로부터 그가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 시가 1960년에 쓰였으므로 이 시에 대해 역사적 현실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혁명은 안 되었으나 그는 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의 시 <푸른 하늘을>을 나는 유독 좋아하는 편이다. 알고 보면 시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시에 무슨 무기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가 사람을 죽일리 있나? 그런데 이상한 일은 왜 권력자들은 시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그들을 감시하거나 혹은 그들의 시에 갖가지 죄목을 붙여 감옥에 가두는 것일까? 그것은 시가 사람을 죽이지 않고, 대신에 사람들을 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시인 중에서 앞으로 100년 후에도 여전히 위정자들의 골치를 아프게 할 만한 시를 제조해낸 시인. 그가 김수영이다.

6.
사적인 면모로 보았을 때 이토록 오만과 편견으로 그득한 시인 역시 드물 것이다. 보라! 그는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을 이유없이(?) 극도로 미워했고, 후배 시인이 술 한 잔을 청하고자 집을 찾았을 때 속이 빤히 보이는 모시저고리 윗 주머니에 누런 배춧잎이 몇 장을 꽂아두고도 돈 없다고 후배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을 야단치며 젊은 친구들이 공부를 해야지 맨날 술타령만 한다고 야단쳤던 인물이다. 그 야단맞은 후배 시인 중 하나가 바로 '고은'이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은 늘상 술에 절어 있었다. 자신은 살아 생전에 시나 평문을 써주고 받아오는 몇 푼의 원고료를 제외하고는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했으나 집안에서는 큰소릴치는 아버지요, 남편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죄인이었지만 언제나 이유없이 당당했던 그이기도 했다. 물론 잠든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면도 지녔던 시인이다.

19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민중문학'의 시대를 김수영이 살아서 겪었다면 그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역사의 가정은 없지만 가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는 무엇을 했을까? 그런 순간 존경할만한 스승, 선배란 것은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돌아갈만한 중요한 전통이란 측면에서 그의 존재는 컸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인 김수영은 분명히 절필하거나 민중문학론에 반기를 드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그가 자신이 소망했으나 당대에 자신은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런 문학적 토양들이 뿌리내리기 전에 세상을 달리했으므로 우리는 그의 그런 시론과 시들은 접할 수 없었다. 김수영이 민족문학론이나 민중문학론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분명 어떤 태도를 보여주었을 것이라고는 추측할 수 있으며, 그의 그런 태도는 때로 보수적으로 비췄을지 모르겠으나 믿고 기댈만한 든든한 보수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김수영에 대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누가있겠는가? 그러나 내 청소년기의 이 시에 대한 감상과 피끓는 느낌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친구들이 신동엽의 민중성을 말할 때도 나는 김수영의 저 솔직함을 보라고 외쳤었다. 그렇다고 신동엽 시인을 부인한 것은 아니나 나는 김수영 시인의 저 부끄러움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의 통찰은 신동엽의 농촌 정서와는 다른 풍모가 있었다. 그는 그래서 중도에 그렇게 가버린 것이겠지. "아름다운 상상"을 했다. 그것은 임화가 그렇게 죽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아서 그래서 임화가 스승이 되어 제자들을 기르고, 우리들은 즐겁게 임화에서 김수영 그리고 다른 또 누군가로 이어지는 선생들에게 배우고, 신동엽이 그렇게 죽지 않아서 여전히 꼬장꼬장한 늙은이로 후학들을 다그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우리 문학사에서 임화는 죽고, 김수영은 죽고, 신동엽은 죽고... 또 조태일이 죽고, 김남주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우린 아름다운 스승이 없는 시대에 나서 스스로를 가르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늘 쫓기고, 절박하며, 기갈에 들린 것. 그들이 펼쳐놓은 길을 따라가면 절대로 헤매지 않을, 딛고 올라설 스승이 없어서다. 그것이 늘 나를 아름답지 못한 고민들 속에서 헤매게 만든다.

(시인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시집을 읽는 것이다. 민음사에서는 시와 산문으로 구분된 김수영 전집이 있으므로 이 책을 읽는 것이  김수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좋은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시인 최하림 선생의 김수영 평전이 있다. 이전에 나왔다가 절판되었던 것을 수정증보하여 재출간한 좋은 평전의 본보기가 될 만한 책이니 이는 그의 삶과 사유의 뿌리를 더듬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세 번째로는 문학평론가 김명인 선생이 소명출판에서 펴낸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이란 비평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를 향한 모험가로서의 김수영의 시세계와 생애를 더듬어 본 좋은 책이다. 그외에도 그에 관한 좋은 책들은 많이 있으므로 찾아 읽는 노고를 사양치 않는다면 김수영은 우리에게 좋은 고민거리들을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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