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화영인 군대를 간다는 사실에도 흔들림이 거의 없는 생활을 하였다. 자기 시간을 아껴 관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까이서 호흡하고 무엇보다 혼자 있기를 즐기면서 자기 삶의 방식을 잘 유지하는 대견함도 보였다.

  그러나 가기 싫어하는 그 마음이 어찌 화영에게라고 없을쏘냐? 올해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된다고 하는 2월 1일에 형이 들어갔던 의정부 306부대로 들어가는 화영인 군대 생활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는지?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과 감성들을 어떻게 갈무리 할는지 저으기 걱정이 된다마는, 어른이 되어가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서 잘 견디어 가겠지...." 그러길 바란다.

  위기관리 능력을 배우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자기 몸을 단련하고 그리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해내야 하는, 타인과의 관계맺음도 훨씬 많이 배워가겠지. 정말 하룻밤만 자면 이년이란 긴 세월을 떠나갈 아들을 바라보며 해줄것 별로 없는 엄마의 마음은 쓸쓸하다. 잘 견디어 내고, 어른이 되어 돌아올 날을 위해 난 기도하고 또 감사하면서 치열한 삶의 한 마당을 준비해 본다.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화영일 기억하여 주시고 언제 어디서나 인도하시며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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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 전21권 세트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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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삶과 시대를 추억해 본다면 "토지"는 정말 큰 책이다. 어떤 독자는 열 번 씩 읽었다고 했는데, 나도 그쯤은 읽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겨우 세 번 째 들어보고 있다. 토지를 TV극으로 다룬 것만도 세 번 째이니 독자인 나로서는 그것 이상 읽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선 반성이 된다. 우습지만 지리산 밑 토지마을을 다녀본 것도 세 번이나 된다. 원래 조 참판 댁이 있었다고 했던가? 사실은 숨어버리고 소설 속의 최참판 댁과 마을 길을 헤집고 다녀봤다.

   주인공인 댕기머리시절의 서희의 삶과 결단, 그리고 중년이 되어서 아이를 사랑하고 집안을 경영하는 모습은 너무 완벽하다. 절에서 길러졌고 서희네 머슴으로 살며 서희를 업어주고 함께 했던 길상이도 멋지다. 남자답게 굵은 선으로 말을 아끼면서 그러나 행동은 치열한 그의 모습이 큰아들인 환국에게서 더욱 부드럽게 빛이 난다. 유인실과 오가다, 그리고 조찬하와 임명희 - 정말 멋진 인물군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완벽하게 인물군을 묘사하거나 닮아갈 수 없을 지라도 우리 속에 들어있는 부분적 요소들을 터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외의 많은 인물군들, 송관수와 아들 영광, 한복이와 영호, 숙이와 몽치, 해도사와 소지감, 홍이와 그의 울타리, 영팔 노인과 이평노인, 두만과 영만 등등 어떻게 한 마디로 다 말할 수 있으랴?

  나의 첫 번째 독서의 기억 속에서는 이용과 월선의 사랑의 사랑이 빛났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고운 정이 너무 아름다왔고 또 민족사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이 진솔하였으므로  읽어가는 중간중간 눈물과 한숨 그리고 가슴앓이로 밤을 지샜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리고 두번째 읽었을 때에는 서희의 할머니와 환이를 만나 집을 떠나야 했던 서희의 생모(화전을 부쳐주겠어요 라는 말로만 기억난다) 그리고 서희와 용정에 있었던 공노인 부부의 기나긴 부드러운 사랑 등 중심 인물들이 관심속에 떠돌았었다. 이제는 지나간 사랑보다는 커나가는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민족의 해방을 절실히 느끼면서 행동하고 고민하는 몫이 안타깝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였다. 일제치하 35년의 질곡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한평생을 마감할 만한 긴시간에 걸쳐 2, 3세대의 삶의 이야기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역사 속에서 굴절당하지 않고 산다손치더라도 언제 올지 모르는 독립을 꿈꾸며 자신의 삶을 힘겹게 영위해 나가는 모습은 사건이 없이도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진짜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는 느낌이 난다.

  이번에 나는 송관수의 죽음으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평생 치열하게 독립을 위하여 살았으나 어느 곳에도 표나지 않았을 일을 하다가(이를 테면 독립유공자 표창자로 상신되기 어려운...) 이역만리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혼자 죽은 그의 생애가 서러웠고, 자식과 식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으면서도 아들 영광과 화해하지 못하고 죽은 그, 죽은 뒤 유서를 통하여 아들을 용서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가슴을 쥐어짜게 하였다. 부자간에 한발씩 물러서서 서로를 수용한 뒤에 여전히 살아 노년의 모습으로 해방을 맞이했더라면 하는 바램이 얼마나 컸던지......"  현실성을 따져본다면 소설 속의 모습이 훨씬 사실적인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데도 말이다. 마음으로나마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진주에 식구들을 모두 옮겨놓고 선택적으로 만주로 떠날 수 밖에 없어했던 홍이의 결단이 절실해 보이고. 사실 해방의 소식을 들은 서희와 양현, 모녀가 얼싸안고 기뻐하는 것으로 5부작의 대단원을 내렸을 때 얼마나 기운이 빠졌던지...." 그 뒤의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일평생 독립을 위해 살아왔던 숱한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잘라버리는 것이 과연 정직한 것일까 하는 회의도 들고, 이후의 그들의 삶은 또다른 고난과 패배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가슴이 쓰렸다. 오랫동안 기쁨으로 누리지 못했던 주어진 해방의 허전함을 나는 무엇으로도 메꾸기 어려웠다. 나는 소설과 역사 속을 오락가락 하면서 어떤 소망을 담고자 하는 것인지...."

  다시 또 읽게 된다면 역시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겠지. 숱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어떤 인물의 삶을 조망해보면서 내속으로 끌어들이게 될까? 그것은 너무 늙어버린 석이 엄마이거나 영호와 숙이일수도 혹은 몽치나 모화일수도 있지 않을까?

  한두 번의 독후감을 가지고 이 책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출판사의 16권을 읽어냈는데 나남에서 21권으로 다시 간행되었다고 해서 한부를 더 쓴줄 알았다. 똑같은 분량인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우리 시대의 좋은 소설을 자식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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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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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을 주면서 망설이게 되는 책의 하나이다. 대체로 문화유산답사 내지는 설명을 하는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지지도가 높은 책임에 틀림없는데, 격하고 거친 글들이 눈에 걸리고 직설적인 작가의 어투가 거슬릴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한 탓일까?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도 아니고 행보가 느린 편도 아니다. 거개가 나의 발로 밟아보고 더듬어보고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편안해 지는 마음으로 인하여 시간만 되면 가까운 곳으로부터 어디든지 돌아보고 더듬는 버릇이 있다. 그러니 나름대로의 식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벌써 삼년쯤 되었나? 영주 부석사와 부근을 조사하면서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함께 살펴보고 타이핑을 한 적이 있었다. 두 분의 글을 읽으면서 같은 문화재를 바라보고 적는 글이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놀랍기도 하고 선동적인 글보다는 차분하고 우아한 글에 매료되어 거친 글을 더이상 보지 말아야 되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였었다.

  의식적으로 꺼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가려면 우선 손에 들어보고 한번씩 뒤적여 본 뒤에 웹 검색을 하고, 지도를 찾고, 자료를 수집하게 되니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비중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동안 의식적이긴 하지만 교과서처럼 읽지않고 만화나 소설처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읽어냈다. 그랬더니만 이곳과 저곳이 섞여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내 눈도 네 눈도 아닌 이상한 기준이 서 버린 것이었다. 고정관념없이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때는 언제나 가능할 것인지.....? 하나를 보더라도 깊이있게 이쪽 저쪽에서 자유롭고 한가하게 바라보며 싫증이 날때가지 들여다보는 내 습관도 내 속에서 섞여버려 번번이 어리버리한 감정이 전해졌다.

  이번에는 군입대를 앞둔 아들과 추억만들기 여행을 하고자 경북지방을 찾았다.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아름다운 절집, 부석사를 찾아서 오랜 운전을 하고 숙박지가 백암온천이어서 그곳을 찾아 현동-봉화-영양-백암온천의 구비구비 돌아가는 산골짜기와 많이 쌓인 눈들의 잔치를 즐기고 다음날은 별 준비도 없이 옆동네 격인 안동을 찾았다. 청송, 진보방향으로 해서 안동을 찾아 임하댐을 보면서 다왔나 햇더니만 31km나 남았다는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그리고 도산서원 돌아보았는데 하루해가 다 지나버렸다. 오래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질려하면서 해진 어둔 밤에 청량산과 낙동강을 지나면서 숙소인 백암온천으로 다시 오게 되었고 반복적인 행로로 인하여 오히려 경북의 오지마을들이 낯익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다음날은 울진으로 해서 동해바다의 맑고 깊은 물결과 탁트인 풍광으로 인해 환호성을 지르며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동해를 옆에 끼고 불영계곡으로 해서 울진과 현동을 넘고 영주를 지나쳐 문경 상주 보은에 이르는 숱한 길들을 연이어 달려왔다. 정말 힘든 운전이었고 옆에 앉았던 아들도 운전자 못지않게 힘든 견딤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내 식의 시간운영을 포기하고 아들에게 맞춘 느슨한 여행이라서 볼거리에 대한 과감한 생략이 많았다. 결국 집에 돌아와 다시 펴든 책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 경북 북부 순례이다. 전에 없이 기록을 남기고 싶은 생각에 결국 책을 정리하면서 언제쯤 안동을 다시 보게 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고 있다. 눈으로 차곡차곡 깊게 보더라도 기록이 없으면 결국 다 잊혀지게 됨을 느끼면서 오랫동안 멈추었던 기록의 작업을 다시 치밀하게 해볼까 생각중이다. 어느 하나에 얽매이는 것이 싫어서 버렸건만 결국은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럴라치면 이 책을 다시 잡게 되는 것일까? 

  주리적인 이기이원론의 퇴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러운 기회였음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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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규칙성과 일상성을 띠고 이루어지는데 대한 가벼운 구토 같은 것들을 느끼면서 살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져야하는 내 몫, 그리고 버리지 못하고 아깝게 짊어진 것들을 꼭 짐져야 한다고 믿는데 대한 부담감때문일 수도 있고 또 일상사에 대한 나의 집착에서도 그러했을 것 같다.

  올해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내가 참 과감해졌구나 .'싶은 생각이 난다. 첫 시작을 차를 끌고 지리산 중산리로 들어가 별 장비도 없이 야간산행을 감행하고 멋진 일출을 선물받고 행복해 몸을 떨었던 기억, 틈만 나면 어디론가 휙휙 돌아다니면서 내 눈 속에 집어넣기를 즐겨했던 크고 작은 여행들, 아마도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이겠지, 내 주변의 작은 산하들을 아낌없이 바라보고 느끼고 호흡하길 원하면서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 말이다.

  나를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역시 괜찮은 일이다. 나는 다시 서 있다. 홀로!  외로움을 느낄 때도 없지 않았으나 외롭다는 고함을 지르지 않고 견딜 수 있었고,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 기대며 서운함을 품지않아 좋았다. 혼자서의 당당함, 아마도 올해 내가 걸어나가야 하는 가장 멋진 방법의 내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한 해로 살자, 당당하게, 그리고 굳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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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1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아자아자 화이팅! 저도 그 마음으로 산답니다^^
 
혼불 - 전10권 세트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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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주로 대하소설을 많이 읽는 셈이다. 최명희의 혼불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10권짜리의 대하소설이라서 읽기 시작하였다. 시대적 상황도 구한말 부터 식민지 시대의 우리 역사의 치열함이 속속 드러나는 시기이고, 인물의 구성도 가야산 줄기인지 지리산 줄기인지 매안리라는 행정명도 들어본 적이 있어 친근함이 우러났기 때문에 보기 시작하였으나, 추천의 글들이 왜그리 고혹적이었는지 내내 의심하고 지겹다는 표현을 정말 많이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 않고 열권을 다 읽어낸 까닭은 내가 못찾는 이 소설의 장점이 어딘가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유교적 색채가 가득한 반가의 집안을 그것도 청상의 과부가 시집와서 일으킨 이야기가 큰 줄거리이고 손부에까지 미치는 나머지 이야기는 양념과도 같은데 그 양념이 온통 모을수 있는 모든 양념을 버무려 놓음으로 해서 정말 해보고 싶은 작가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정말 모르겠다 싶게 만든다. 더군다나 강모의 경우 그리도 마음속에 아련한 강실이와의 사랑을 음욕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저지름과 도망으로 피해버리는 그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식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도 아닌 나약함과 자기 뿌리를 찾지 못하는 자의 비루함이 곳곳에 배여있어 지겨움을 넘어 소설속 캐릭터일망정 없어져버렸음 좋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마치 요즈음 아침 드라마 가운데 "금쪽같은 내새끼"인가 하는 것 하고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한 드라마에서 모든 문제를 다 다루고 소화해보려고 몇몇 캐릭터를 가지고 버걱거리는 모습이 처연하기까지 하다.

  유교와 불교 도교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크리스트교까지도 설명이 들어서고 도처에 긴장감없이 역사성이 회고조로 막 삽입되고, 왜 이런 글을 그리도 치열하게 쓰느라 애썼을까? 차라리 욕심을 덜내고 소설의 긴장감을 가지면서 매안 일대의 모든 사람들의 글을 쓰는라 얼기설기 엮이지 말고 여성에 촛점을 맞추든지 종가집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만 치열하게 그려보던지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반상의 구별이 엄연하게 그려지면서도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온(?)한 기운을 한편으로 북돋우면서 이야기가 흐지부지 왔다갔다 하니까 소설의 맛과 멋을 느끼기 힘들었다.

  작가는 이 책을 마치며 아무것도 결말을 못내었건만, 목숨을 다했다고 한다. 이런 작가의 글을 이렇게 써대는 내가 너무 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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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oky98 2006-06-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단순한 소설로 읽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문화의 상례,제례, 혼인등의 모습과 장 담그기, 단오절의 모습 등등의 민속문화적인 측면에서 읽어 주신다면 지루함은 전혀 못 느낄 텐데요.. 소설로만 보셨다니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