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 전21권 세트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의 삶과 시대를 추억해 본다면 "토지"는 정말 큰 책이다. 어떤 독자는 열 번 씩 읽었다고 했는데, 나도 그쯤은 읽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겨우 세 번 째 들어보고 있다. 토지를 TV극으로 다룬 것만도 세 번 째이니 독자인 나로서는 그것 이상 읽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선 반성이 된다. 우습지만 지리산 밑 토지마을을 다녀본 것도 세 번이나 된다. 원래 조 참판 댁이 있었다고 했던가? 사실은 숨어버리고 소설 속의 최참판 댁과 마을 길을 헤집고 다녀봤다.

   주인공인 댕기머리시절의 서희의 삶과 결단, 그리고 중년이 되어서 아이를 사랑하고 집안을 경영하는 모습은 너무 완벽하다. 절에서 길러졌고 서희네 머슴으로 살며 서희를 업어주고 함께 했던 길상이도 멋지다. 남자답게 굵은 선으로 말을 아끼면서 그러나 행동은 치열한 그의 모습이 큰아들인 환국에게서 더욱 부드럽게 빛이 난다. 유인실과 오가다, 그리고 조찬하와 임명희 - 정말 멋진 인물군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완벽하게 인물군을 묘사하거나 닮아갈 수 없을 지라도 우리 속에 들어있는 부분적 요소들을 터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외의 많은 인물군들, 송관수와 아들 영광, 한복이와 영호, 숙이와 몽치, 해도사와 소지감, 홍이와 그의 울타리, 영팔 노인과 이평노인, 두만과 영만 등등 어떻게 한 마디로 다 말할 수 있으랴?

  나의 첫 번째 독서의 기억 속에서는 이용과 월선의 사랑의 사랑이 빛났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고운 정이 너무 아름다왔고 또 민족사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이 진솔하였으므로  읽어가는 중간중간 눈물과 한숨 그리고 가슴앓이로 밤을 지샜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리고 두번째 읽었을 때에는 서희의 할머니와 환이를 만나 집을 떠나야 했던 서희의 생모(화전을 부쳐주겠어요 라는 말로만 기억난다) 그리고 서희와 용정에 있었던 공노인 부부의 기나긴 부드러운 사랑 등 중심 인물들이 관심속에 떠돌았었다. 이제는 지나간 사랑보다는 커나가는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민족의 해방을 절실히 느끼면서 행동하고 고민하는 몫이 안타깝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였다. 일제치하 35년의 질곡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한평생을 마감할 만한 긴시간에 걸쳐 2, 3세대의 삶의 이야기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역사 속에서 굴절당하지 않고 산다손치더라도 언제 올지 모르는 독립을 꿈꾸며 자신의 삶을 힘겹게 영위해 나가는 모습은 사건이 없이도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진짜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는 느낌이 난다.

  이번에 나는 송관수의 죽음으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평생 치열하게 독립을 위하여 살았으나 어느 곳에도 표나지 않았을 일을 하다가(이를 테면 독립유공자 표창자로 상신되기 어려운...) 이역만리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혼자 죽은 그의 생애가 서러웠고, 자식과 식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으면서도 아들 영광과 화해하지 못하고 죽은 그, 죽은 뒤 유서를 통하여 아들을 용서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가슴을 쥐어짜게 하였다. 부자간에 한발씩 물러서서 서로를 수용한 뒤에 여전히 살아 노년의 모습으로 해방을 맞이했더라면 하는 바램이 얼마나 컸던지......"  현실성을 따져본다면 소설 속의 모습이 훨씬 사실적인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데도 말이다. 마음으로나마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진주에 식구들을 모두 옮겨놓고 선택적으로 만주로 떠날 수 밖에 없어했던 홍이의 결단이 절실해 보이고. 사실 해방의 소식을 들은 서희와 양현, 모녀가 얼싸안고 기뻐하는 것으로 5부작의 대단원을 내렸을 때 얼마나 기운이 빠졌던지...." 그 뒤의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생각해보면 일평생 독립을 위해 살아왔던 숱한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잘라버리는 것이 과연 정직한 것일까 하는 회의도 들고, 이후의 그들의 삶은 또다른 고난과 패배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가슴이 쓰렸다. 오랫동안 기쁨으로 누리지 못했던 주어진 해방의 허전함을 나는 무엇으로도 메꾸기 어려웠다. 나는 소설과 역사 속을 오락가락 하면서 어떤 소망을 담고자 하는 것인지...."

  다시 또 읽게 된다면 역시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겠지. 숱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어떤 인물의 삶을 조망해보면서 내속으로 끌어들이게 될까? 그것은 너무 늙어버린 석이 엄마이거나 영호와 숙이일수도 혹은 몽치나 모화일수도 있지 않을까?

  한두 번의 독후감을 가지고 이 책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출판사의 16권을 읽어냈는데 나남에서 21권으로 다시 간행되었다고 해서 한부를 더 쓴줄 알았다. 똑같은 분량인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우리 시대의 좋은 소설을 자식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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