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박병규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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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른의 책상에서 한움큼 집어온 책속에 두꺼운 부피를 자랑한 책이 "사랑하고 노래하며 투쟁하다"란 제목이 붙은 네루다의 전기이다.

  칠레의 작가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된 이미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읽게되었는데,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던 탓에 외교관이 된다는 것이 간디아버지가 정직하고 소박한 분이란 이유로 수상직을 맡았던 만큼이나 소박해보인다.

  외교관이었던 탓만은 아닐진대, 세계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지성과 예술가들과의 교유가 이루어지고, 또 민중에 대한 사랑과 삶을 발견하고는 그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던 다작의 시인, 노벨상 수상자, 성애를 느끼고 숱한 여성들과의 하룻밤의 사랑도 불같이 나누었던 모습하며, 공산당으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감성이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싶은 좀처럼 상상이 안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작품을 읽고 싶어도 못 읽는 2008년의 대한민국,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 꽉 닫혀버린 우리들, 고단한 사람들

  옮긴이의 말 한도막으로 끝을 맺자.(다시금 책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 그에게 감사하면서...)

…… 네루다의 회고는 공정하지도 않고 포괄적이지도 않다. 서문에서 네루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네루다의 기록은 “듬성듬성”하다. ……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노래했고, 암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시를 구술했다. 죽기 바로 전날 네루다를 찾아간 변호사 피게로아의 증언에 따르면, 네루다는 책 한권 들 힘조차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서 오메로 아르세가 병실 한 구석에서 정서해 준 초고의 교정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네루다를 끊임없이 노래하게 만든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대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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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정지아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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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등산을 하였다. 거의 2년만에,  허리가 부실한 관계로 치료를 받느라 의사의 권유대로 심한 운동을 자제하고 평지만 걷기를 거의 이년여 -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이 점점 나아져서 얼만큼 견딜수 있는지 내기하는 심정으로 계룡산 자연성능을 탔더랬다. 2년만에 가보는 너럭바위의 따뜻한 볕도 여전하였고 경천지의 반짝이는 물결도 설레임을 다시 안겨주었다.

  문제는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시간을 죽였던것, 남매탑에 내려오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저녁 예불소리 끝난지도 이미 오래, 익숙한 길이라서 심정을 달래면서 더듬더듬 내려왔다. 손가락으로 수많은 바윗돌을 만져가면서 허리를 보호하느라 더욱 어둠속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익숙하게 다져진 길의 감촉을 발로 느끼면서, 산에서의 겸허를 다시 일깨운 시간이었고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본 반딧불 한마리의 반짝임에 탄성이 일었었다.

지내놓고 보면 '산에 무사히 다녀왔다. 내려오니 8시 였고 평소 내가 다니던 시간의 두배쯤 걸렸다.'라고 압축할 수 있는 작은 경험 속에서 점으로 찍힐 반딧불과의 짧은 만남은 경탄으로 선명하게 남는다. 정지아의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인불들도 거의 다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산에 다녀왔다 '처럼 평범한 한 구절로나 남을는지 모르는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반딧불같은 반짝임 혹은 따스함, 넉넉함, 편안함 그런 것들이 깔려있다. 특히 노년의 나이에 반추하는 삶의 기억들을 다 깎이고 닳아 없어져 남은 둥글둥글한 표면에 희미하게 남은 흔적들을 무심히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작가는 '나이드니 발밑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남은 물론이거니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던 나의 실수, 나의 못남조차 애처롭다.'(245쪽  작가의 말)고 밝히는데 애처로움으로 인하여 넉넉함과 너그러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지된 정물의 풍경을 통해, 또는 그러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 풍경이 만들어진 과거의 시간대를 거슬러 올라간다.'(238쪽 해설) 는 그의 소설은 그래서 향기롭다. 우리네 삶의 뒤끝에서 돌아보면 비슷한 풍경들로 남을 것 아닌가? 현재의 삶속에서 설혹 날카롭게 부딪히게 되는 것들조차 십수년후에 남을 한점 흔적을 생각해보면서 한발짝 옆으로 비켜나본다면 유연함 혹은 온유함으로 삶을 채색하게 되지 않을는지...? 날마다 아프다와 먹는 것으로 하루를 꾸리는 노인들의 삶을 답답하게 지켜보는 입장에서 나를 객관화 시켜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져보았다.

사족처럼 붙는 말, 전라도 방언 넘 좋다. 태백산맥이후 처음으로 설레임과 흥분 그리고 웃음을 잔뜩 안고 책장을 넘겼다. 조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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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연 - 광복 60주년 기념 중국 조선족 화가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엮음 / 컬처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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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도 없고 번역작품의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많이 늙었음을 느끼게 된다. 밤을 새워 가면서 책을 읽은 탓에 신체를 흐느적 거리게 만들고, 또 생각을 멈추게도 만든다. 하지만, 오랫만에 밤을 새워가면서 책을 읽는 흐뭇함을 맛보기도 하였다.

성장소설이면서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가 영어로 쓴 책이다. 아버지 바바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감성이 강하고 겁이 많은 주인공이 벌여야 했던 행위들을 크고 작게 우리가 늘 부딪치던 문제로 일상화했다.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풍요롭고 지적인 성취를 할 수 있었던 탓에 영어권의 소설을 쓸 수 있었고, 그런 이유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알려준다는 아이러니, 등장인물 중에 관광객으로 살았다고 비난하는 운전자의 모습과 주인공과의 화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딴딴한 단면을 생각해 보았다. 평온한 시절을 살아도 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정권의 변동으로 인해 삶이 형해화되어가는 세상을 살아야 했던 개인사는 골조만 남은 건물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또 신뢰와 사랑을 심어줌으로써 삶을 윤택하게 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부분을 보면 생명력을 가진 희망을 느끼게 된다.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고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내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죽음으로써 갈라진 이복형제의 애닯은 삶일지라도 따뜻하게 느껴지고, 또 후손과의 연결고리가 귀하게 느껴진다. 삶의 일상을 묶어놓는 단단한 매듭일지라도.... 언젠가는 풀어지겠지 하고 희망을 품으면서 책장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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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 - 전3권 - 서남 동양학자료총서 003,004,005 서남동양학자료총서
황현 지음, 임형택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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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의『음청사』와『속음청사』, 정교의 『대한계년사』가 손꼽히는 저술이다. 이들 모두 한국사료총서로서 『매천야록』과 더불어 정리, 공간된 바 있다. 양적으로만 따지면 『음청사』․『속음청사』와『대한계년사』는 『매천야록』에 비해서 큰 편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증언서로서의 의미와 자료적인 이용도에 있어서는 『매천야록』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기록 주체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 비장한 인간 자세에 관련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12쪽)
   그는 죽음을 결행하면서 유언에 쓰기를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몸을 바친 자가 한 명도 없다면 어찌 통석할 일이 아닌가! 나는 위로 하늘의 병이(秉彝 잡을 병, 떳떳할 이)의 아름다움과 아래로 평소 읽은 책의 의미를 저버릴 수 없다. 눈을 감고 영영 잠들면 참으로 쾌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충이란 도리는 군신의 관계를 맺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다. 이씨 왕조에 벼슬한 바 없었기에 이씨 왕조를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고 매천은 분명히 말한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해 당시 고루한 유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曺兢燮이 지은 「매천집중간서(梅泉集重刊序)」는 “지금 선생에 대해 논하는 자들이 ‘성리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혹은 ‘꼭 죽어야할 의리는 없다’한 것을 들어 말들을 한다.”고 소식의 일단은 전하고 있다. 그가 결행한 살신은 관념적인 충을 지키기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의지가 벌써 달랐다. 「절명시(絶命詩)」에서 이렇게 읊는다.
  鳥獸哀鳴海岳嚬 조수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이 세계는 망하고 말았구려!
  秋燈掩卷懷千古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難作人間識字人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되기 어렵기도 합니다.

요컨대 ‘글 아는 사람(識字人)’의 도리를 생각하며 고뇌한 것이다. 여기서 식자인이란 지식인과 동의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국이 멸망하는 앞에서 죽음을 결행한 그 방식은 근대적인 지식인으로서의 행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기실 매천은 근대 전환기의 시대를 살았음에도 근대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지 않았으며, 그는 죽음에 임해서까지 놓지 않았던 문필 또한 결코 근대적 양식을 접수해서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식자인’으로서의 자각은 ‘사(士)’의 자각과 통하는바 자신이 처한 시대에 상응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13-14쪽)
- 『매천야록』이 전통적인 ‘사’의 글쓰기 방식의 산물임에도 급변한 시대에서 낙후되지 않고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어디 있었을까? 일차적으로는 그 취재원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요는 그것이 타자의 경험을 두루 수렴하고 계몽적 성격의 신간 서적과 신문에서 지식 정보를 속속들이 채용함으로써 내용이 풍부해지고 가치 있는 기록이 된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문제점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측면을 언급해 두어야겠다. 먼저 타자의 경험에 의존한 데서 발생한 문제점을 보자. 하나는 그 자신이 교유한 인물들의 성향에 치우쳐진 점이다. 『매천야록』이 당파적 편견이 있다는 지적을 전부터 받아왔거니와 신분 계급적인 관점에서 따져볼 소지가 없지 않다. 또하나는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걸리기 쉬운 착오와 왜곡이다. 정보의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에 의존하다 보니 오류가 없을 수 없는데 우리가 『매천야록』을 읽을 때 이런 점들은 감안하고 고려해서 읽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다른 문제점으로 해외 기사는 대부분 단편적인 데 그치고, 국내 사건 소식도 소략하게 취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취재원-그 때 신문의 보도 방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본다. (20쪽)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정말 많은 분량이기도 하였고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이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대단한 책이라고 생각하였기에... 현재의 입장에서 근대의 언저리를 둘러보면서 써야 한다는 것의 한계성이 여실히 드러난 책을 읽기엔 버검움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해가 지나가기까지 다 읽어내지를 못하고 띠엄띠엄, 거북이의 걸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펴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았음도 또한 고백한다. 책장을 덮고보니, 위대한 영혼을 가진 위대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단점과 결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시절 시골 변두리에서 신문에 의지해서 남길수 있는 작품으로는 그릇이 너무 크기에...

  역사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행위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감사를 한다. 이런 어른이 있었다는 것에. 보수가 잘되어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한다. 정말 보수진영에 있는 분들이 한번씩 읽었음 좋겠다. 좋은 보수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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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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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全泰壹).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노동자.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을 ‘인간선언’이라고 부른다.
인간선언. 가난과 잘병과 무교육의 굴레 속에 묶인 버림받은 목숨들에게도, 저임금으로 혹사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먼지구덩이 속에서 햇빛 한번 못 보고 하루 열여섯 시간을 노동해아 하는 어린 여공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그는 죽었다.
그는 말하였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부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한 것이라고.
그는 고발하였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는 인간이면서도. 짐승이 아닌 인간이면서도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그리고 죽어가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고. 이들은 “모든 생활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당하고 오직 고삐에 매인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다”고.
그리하여 그는 맹세하였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 서 -)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친구들에게의 당부도, '어머니는 저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어머니 제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주십시오'라는 말도 내게는 벅찬 눈물로 받아들여졌다. 목숨을 다바쳐서 인간을 사랑한 그가 있었기에 우리의 70년대는 아프지만은 않았다고...

나보다 열두살이 많은 나이이니 헤아려보자면 육십이 넘었을 그임에도 그는 늘 언제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청년이다. 그가 그렇게도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근로기준법 준수는 이제 지켜지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현재가 아름다운 사회인지는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에 기대어 우리를 돌아보기로 하자. 

대통령 각하.…… (p.208-210)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의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 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으로서 종업원은 3만여명이 됩니다. 큰 맘모스 건물 4동에 분류되어 작업합니다. 한 공장에 평균 30명은 됩니다. 근로기준법에 해당이 되는 기업체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글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3만여 명이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ㅇ비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 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를 못합니다. 또한 3만여 명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70원 내지 16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5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서는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 못합니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서,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서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가 구두로서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는 실태조사도 왔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서는 아무리 강철 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여공들은 대부분 6년 전후의 경력자들로서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 명 직고 d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회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시에는 필름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이것도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속히 신체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시간~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1969년 11월경에 집필한 것인데 발송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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