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정지아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전 등산을 하였다. 거의 2년만에,  허리가 부실한 관계로 치료를 받느라 의사의 권유대로 심한 운동을 자제하고 평지만 걷기를 거의 이년여 -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이 점점 나아져서 얼만큼 견딜수 있는지 내기하는 심정으로 계룡산 자연성능을 탔더랬다. 2년만에 가보는 너럭바위의 따뜻한 볕도 여전하였고 경천지의 반짝이는 물결도 설레임을 다시 안겨주었다.

  문제는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시간을 죽였던것, 남매탑에 내려오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저녁 예불소리 끝난지도 이미 오래, 익숙한 길이라서 심정을 달래면서 더듬더듬 내려왔다. 손가락으로 수많은 바윗돌을 만져가면서 허리를 보호하느라 더욱 어둠속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익숙하게 다져진 길의 감촉을 발로 느끼면서, 산에서의 겸허를 다시 일깨운 시간이었고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본 반딧불 한마리의 반짝임에 탄성이 일었었다.

지내놓고 보면 '산에 무사히 다녀왔다. 내려오니 8시 였고 평소 내가 다니던 시간의 두배쯤 걸렸다.'라고 압축할 수 있는 작은 경험 속에서 점으로 찍힐 반딧불과의 짧은 만남은 경탄으로 선명하게 남는다. 정지아의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인불들도 거의 다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산에 다녀왔다 '처럼 평범한 한 구절로나 남을는지 모르는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반딧불같은 반짝임 혹은 따스함, 넉넉함, 편안함 그런 것들이 깔려있다. 특히 노년의 나이에 반추하는 삶의 기억들을 다 깎이고 닳아 없어져 남은 둥글둥글한 표면에 희미하게 남은 흔적들을 무심히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작가는 '나이드니 발밑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남은 물론이거니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던 나의 실수, 나의 못남조차 애처롭다.'(245쪽  작가의 말)고 밝히는데 애처로움으로 인하여 넉넉함과 너그러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지된 정물의 풍경을 통해, 또는 그러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 풍경이 만들어진 과거의 시간대를 거슬러 올라간다.'(238쪽 해설) 는 그의 소설은 그래서 향기롭다. 우리네 삶의 뒤끝에서 돌아보면 비슷한 풍경들로 남을 것 아닌가? 현재의 삶속에서 설혹 날카롭게 부딪히게 되는 것들조차 십수년후에 남을 한점 흔적을 생각해보면서 한발짝 옆으로 비켜나본다면 유연함 혹은 온유함으로 삶을 채색하게 되지 않을는지...? 날마다 아프다와 먹는 것으로 하루를 꾸리는 노인들의 삶을 답답하게 지켜보는 입장에서 나를 객관화 시켜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져보았다.

사족처럼 붙는 말, 전라도 방언 넘 좋다. 태백산맥이후 처음으로 설레임과 흥분 그리고 웃음을 잔뜩 안고 책장을 넘겼다. 조오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