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나무에게
더불어숲(신영복 홈페이지 이름) 지음 / 이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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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다시 펼쳐 보는 책입니다. 이유는 신영복 교장선생님의 '더불어 숲 학교' 2학기 개강강의를 들으려고 이 책 저책 펼쳐보다가, 새천년을 맞으면서 기념으로 내가  제본한 책(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책이 되겠지요)에 대한 애정때문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함께 다른 신영복님의 글도 모아서 '나무가 나무에게' 란 두툼한 책(A4크기에 단면 인쇄)을 만들었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을 걸면, 서로의 생각들이 열리고 함께 어우러지면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어 봅니다.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라는 동시도 떠오릅니다. 나무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입니다. 나무를 심는다든지 가꾸는 일과는 많이 동떨어진 삶을 사는 오늘날의 아이들에게는 종이를 아껴 쓰는 것으로부터 나무사랑에 대한 운동의 확산도 벌릴수 있음을(좋은생각 2005.09 이순원의 글)알면서 나무가 나무에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나'란 자아가  타자를 통해서 존재함을 느낍니다.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을 많이 일으키는 가을입니다. 엽서의 그림들이 나를 막 충동질하는 스물 다섯곳의 아름다운 장소와 그곳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고 남긴 사람들의 흔적을 찾은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글쓴이들을 통해 우리가 숲이 되자는 이야기는 작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루어지는데, 나는 비조불통(飛鳥不通)의 원시림을 만난듯 청량함을 느낍니다. 작지만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사람의 흔적을 남기려 해도 우리 냄새까지 다 자신의 품 속으로 환원시키는 숲의 넉넉함이 느껴집니다. 내가 걸었던 흔적은 발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숲은 길을 감추듯 내어놓고 나의 방문을 기다리며 환영의 뜻을 전해줄 것 같습니다. 그곳은 얼음골이든 반구정이든 소광리의 솔숲이든 지리산 한자락에서 남명을 생각하는 자리이든 하일리의 저녁놀을 바라보는 자리이든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에게 "나무가 나무에게"는 그런 책입니다. 내가 쓴 글 하나 섞이지 않았으나 다 내가 쓴 것 같고 내가 찾아본 듯한 느낌과 또 독자이면서 저자인듯한 착각이 조용히 어우러지는 마치 언제나 그대로 있어주면서 내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인제의 '더불어 숲'처럼 말입니다. '나' 나무가 '당신'나무에게 말합니다. "곁에 가만히 있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나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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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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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 여름 방학동안은 현대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우선 현대사 련 책들을 구입하였다.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 십수권과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3권 등이 그것인데, 워낙 짧은 방학을 지리산으로 한라산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차분히 펼쳐놓고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무슨 방학 계획과 실천성이 이 양이람...'  스스로에게 자책하면서,그래도 현대사 한권은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분량이 적은 책을 고른게 대한민국사 1권이다.

   사실 역사를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객관성과 논리성을 근거로 들면서 현재의 역사나 진행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성큼 다가서길 꺼리는 경향이 짙은 게 사실이다. 70년대에 내가 받았던 수업과 강의가 그러했고 또 어느 정도 저만큼 떨어진 과거 에 묻혀 있어야 만 역사인듯 인식하고 있었던 내 편견도 작용한 때문이리라.

  말로만 듣고 한번도 꼼꼼히 읽거나 주의깊게 바라보지 못하였던 한홍구의 글을 읽으면서 쉽게 지나가버리거나 당연시하는 많은 것들을 꼬집고 비판하는 부분들에 짜릿한 전율감을 느꼈다. 흔히들 우리 역사 그것도 근현대사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속앓이 하듯 답답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 사실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볼 때는 어떨까 하고 의문부호를 찍어보니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담 그건 누구의 몫?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 역사에 대해, 현재 진행되는 역사에 대해 무관심하게 보고 책임감을 갖지 않는데서 오는....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의 뒷세대들에게 전해질 것이고 우린 그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겠다 싶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사를 가르칠 때에도 역사적 사실만을 전할 것이 아니라 이런 가치의 문제나 인식의 방법들에 대해 소개하고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역사는 사장된 화석과 같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현재와는 무관한 듯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교육의 방법적 한계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았다. 쉬운 시도는 아니겠고 매우 주의를 요하는 방법적 모색이겠지만, 꼭 필요한 방법임에 틀림없는, 확실히 가르쳐야 할 몫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읽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정말, 자랑스런 한국, 그리고 사랑스러운 대한민국사를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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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1 - 수로왕에서 월광태자까지
김태식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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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자로서 가야사에 대해 변변히 공부한 것도 없이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외듯 가르친 데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학도는 없을 것이나 워낙 영성한 사료와 참고 문헌들조차 연대 편년이나 사실의 축적에 있어서 많은 이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잊혀진 역사를 복원한다는 사실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토로할 수 밖에 없다.

  한 역사학자의 노력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열정을 가지고 일평생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꼿꼿이 걸어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묻혀진 역사를 파헤치고 드러내 보일 수는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작업의 하나가 이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글의 전개가 추측과 이견제시가 가능한 추정으로 이루어 지고 있어 일반서로 읽으면서도 논리적 토대가 아주 튼튼한 느낌은 적어진다. 사진자료나 도판의 활용은 값지게 느껴졌고 고고학적인 성과들이 더욱 축적되고 체계화되면 가야사에 대하여 사국사로 끌어안는 작업도 허황되진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후기 가야연맹의 중심지였던 고령 지산동 고분을 답사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겨우 6가야 연맹이란 용어를 교과서에서 몰아내는 데만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었던 지를 알고 간 정도였지만,  가야의 실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멸망한 나라의 역사란 얼마나 초라하게 몰락되는 것인가. 승자 중심의 기술과 전승이 패자에 대해서는 말이 없음을 안타깝게 증거한다.

  비록 비중이 적게 기술되는 가야사이지만, 우리 역사를 바르게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면서 기회를 만들어가면서라도 가야사를 찾으려는 시도를 자주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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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이유명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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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옆 자리의 선생님이 권해서 바로 사본 책인데, 아주 오랫동안 읽었다. 그 이유는 "지루해서냐?"면 "전혀 아니올씨다"이다. 무척 재미있다. 구어체에 가가운 설명들이 중간중간 끼어있어 생략과 축약을 자유롭게 하고, 그로 인해 전체의 문맥에 탄력성을 불어넣어주며, 긴장감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오랫동안 눈을 붙들어 두는 책이다. 그렇다면 "내용이 난해한가?"  " Not at all" 역시 "전혀 아니올씨다"이다. 우리 몸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또 알아볼 수 있도록 전문적인 내용조차 쉽게 풀어써주어서 정말 책장 넘기기가 쉽다. 또한 장의 끝부분마다 생활과 실천의 영역에서 매우 도움이 될만한 참고들이 줄줄이 붙어 있다. 마치 좋은 선물을 받았는데 보너스로 맛있는 과자나 사탕이 잔뜩 들어있는 것 같은 책이다. 내 몸의 소중함을 알고 또 그것을 몸에게 고마와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내 몸의 상태가 최선을 다해 견디어내고 최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고 감사하며 사랑하라는 요지는 백번 옳다. 자기 몸의 성질을 쉽게 알아내고 또 그에 알맞는 먹거리를 통해 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꾸라는 말 역시 동감한다. 그럼 뭐냐? "책의 견해가 낯설거나 싫증나는 건가?" "Oh, No!!" 여성학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여성 스스로 사랑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인식해야만 삶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고 또 세상이 바뀐다. 이 지구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재능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의 생각과 가치가 바뀌어야만 이 세상이 제대로 바뀌게 될 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나는 생활 속에서 늘 내 옆자리에 펼쳐 놓으려고 한장 한장 천천히 읽고 웃고 낄낄 거리면서 넘겼다. 그러다가 바쁜 일 있으면 몇날 며칠을 그냥 끼고만 있기도 하였고, 언제 읽어도 또 어디를 펴 보아도 재미있게 긍정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책, 참 좋은 책이다. (이를테면 월경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길 소망한다거나 살풀이란 다이어트의 다른 이름, 그리고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란 확산적 개념, 그후의 30년 인생이 새로움으로 빛나는 또다른 인생을 시작할 공간이자 인류를 살린 훌륭한 동인이었다는 점 등등)

  이 참에 동생과 언니에게 한 권씩 선물을 하려고 여러 권 살 생각이다. 빨간 팬티 열심히 챙겨입고 아이들에게 와이어있는 부레이지어 하지 말라고 권하고 내 가슴을 주무르는 운동도 시키고 집에 가면 몸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라고 열심히 부르짖고 있다. 아이들은 몸을 꼬면서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야단이다. 하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또 졸업 선물쯤으로 전해주면 큰 걸림돌 없이 자신을 훨씬 사랑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다. 이 책 많이 많이 팔고 인지세를 가지고 여성을 위한 멋진 기구나 기금이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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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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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도 그의 책은 스스로 한권도 구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을 읽었다. "연금술사" "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그리고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을.  간결한 문체와 영성을 찾아 헤매이는 간단한 줄거리들이 시편이나 혹은 예언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우연찮게 이 책을 선물받고 나온지 얼마안된다는데 하룻밤새 읽어냈다. 사실 읽을 책을 무진장 많이 쌓아놓고 있는 형편인데 이래도 되는가 모르겠다 하면서 말이다.

  자히르란 것을 삶의 충동 광기 혹은 열망 패션과 같은 것으로 찾아헤매어야 하는 것은 아닐진대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극복하고 이카타로의 회귀를 꿈꾸면서 왜 제목을 이렇게 붙여놓았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 작품보다 분량이 많고 작가의 항변을 많이 하고 싶어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적당한 예의도 호의은행구좌란 표현으로 온화하게 행동하는 이유가 되게 하고....

  우리가 사는 삶의 대부분은 자신의 절망이나 혹은 일상으로부터 받는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일쑤인데 그렇다고 모두 다 사막이나 혹은 스텝으로 자신의 자유와 영혼을 찾아 나서지는 못한다. 한번 여행할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담보하고 저당을 잡혀야 하는지, 사랑이란 명제는 이제 너무 식상해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고상한 에너지도 근원적인 힘도 아닌 것 같은 생각조차 드는데 작가는 여전히 사랑 외의 것으로는 구원을 찾지 못한다. 사랑의 행위나 방식이 일정한 것은 아닐 것이며 익숙하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여가면서 타자임을 인식치 못하고 혹은 타자를 자기화 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들어오는 것 아닐까? 만일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 - 권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모두 스텝으로 가서 본질적인 자기를 만나고 자유롭고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연금술사의 끝자락을 보면서도 사막에 가서 자아를 찾은 주인공이 다시 돌아와 사랑하는 이와 만나고 부대끼게 되면 또다시 사랑의 매너리즘과 만날 것 같은 예감을 받았었는데 이들 주인공들이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처럼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파리의 일상성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비슷한 후속작품이 다시 쓰여질 것 같다. 좀더 일상적인 잡다한 이야기들이 주저리 주저리 달려있는.....

인상적인 글 몇 토막;

에스테르 - 인간적이죠 하지만 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요. 지상에서 보낼 당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세요. 신께서 당신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요. 그리고 당신 또한 사람들을 용서하세요(97쪽)

미하일 -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사랑이란 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우리를 신께. 우리의 이웃에게 다가서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평화로운 일 분을 위해 한 시간씩이나 고뇌하면서 사랑하고 있습니다.(129-130쪽)

나(작가) - 모든 남자와 여자는 사랑이라는, 우주를 만든 최초의 질료인 그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 에너지는 조작될 수 없고, 우리를 부드럽게 이끌어가고, 우리가 삶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 에너지의 방향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려고 하면, 우리는 끝내 절망하고, 낙담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 에너지는 자유롭고 길들지 않는 야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상은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댓니, 우리가 그럴 거라고 상상하는 세상에 끼워 맞추려고 그 에너지를 소진해가며 고통스러운데도 말이다.(228쪽)

미하일 -  파괴하고자 하는 열정은 창조적인 열정의 한 형태(334쪽)

나(작가) - 자히르가 사라졌다. .... 자히그, 그것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온 모든 것 위에 고착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질문도 답변 없이 놓아두지 않고, 모든 공간을 점령해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353쪽) 

그리고 아코모다도르(포르투갈어로 조절하다의 명사형. 한계점에 도달하다의 의미를 사용 3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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