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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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에 대한 학적인 관심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치열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정리를 해보는 것이 나의 의무인 듯한 강박관념을 느끼게 된다. 오래 전에 읽고 책 정리를 한 후에도 이런 생각에서부터 놓여나지를 못하고 있다. 더구나 3권을 읽으면서 속도를 줄이고 한 장씩 천천히 "한겨레21"과 "진실 광장에 서다" 등을 함께 읽었더니, 'Here & Now'의 의미가 확실해지고 내가 살아가는 현재에 대한 관심이 치열해졌다.

  1권이나 2권은 저만치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가졌던 내용인지라 ,소위 객관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문체에서도 느끼게 되었던 데 반해, 3권은 현재 진행되는 역사를 다루기때문에 격렬하고 감정이 많이 묻어나 있었다. 그래서 더 울컥하는 마음도 들고.....

  1권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군 할아버지' 한분의 조상에서 오늘날의 한국인이 모두 퍼져 나왔다는 것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부계 혈통주의가 결합된 아주 난폭한 주장"(p.63)이란 단호한 표현이었다. 학생들과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해보던 중이라서 눈길이 더 쏠렸다. "똥과 된장"만큼 다른 수구와 보수의 차이를 말하는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를 읽으면서 황현이나 이건창을 소개한 내용은 감동의 물결을 솟구치게 했고, 보수가 제대로 서야 우리 나라가 산다는 저자의 견해에 대해서도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2권은 '역사를 통해서 남의 눈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 경험을 쌓아가는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저자가 1권과 연결하여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내용있는 글을 쓰려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 있는 책으로 인종주의와 박정희, 그리고 김산의 아리랑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치한 사회에서 한 인물에 대한 평가야 다양할 수 있겠지만, 박정희로 인해 빚어진 우리 현대사의 질곡들을 상세히 토론하고 정리해보는 기회는 반드시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김일성에 대한 바른 평가도 아울러 필요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 운동가로서 민족해방을 위해 일생을 소모한 아리랑의 김산을 보면서 또한 가슴 속으로 눈물이 차이는 걸 느꼈다. 시대도 다르고 세태도 다른데 비슷한 감동을 가져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진실과 민족애에 대한 열정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생각이 든다.

  3권은 '해마다 전환기였고, 달마다 위기였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도 만만치 않았다는, 상당히 왔는데, 앞을 보면 더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민주화가 된 건지 마구 헷갈리기만 한다'는 머리말로부터 시작되어 '초심을 간직하고 길을 내려'는 각오와 '자꾸 다니다 보면 가시밭에도 길이 나기 마련이란 희망만큼은 놓아버리지 않고 간직하려'는 희망이 보인다. 주사파와 김영환에 대한 생각, 지금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수주의자들의 손에 달려있다 주장, 그리고 김남식 선생에 대한 소개와 애정이 묻어져 내 삶의 언저리들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현재 내가 살고 있고 또 살아갈 날들에 대해 개인적인 접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환원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대한민국사를 다 읽어내면서 든 생각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나의 생각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행동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확보하도록 내 노력이 참으로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홍구 교수에게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이 책을 만들어낸 한겨레 신문사에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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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푸른역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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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어울리는 한복의 빛깔같은 책의 표지들은 근래에 쏟아진 황진의 표지들이 모두 붉은 색을 띤 것과 같은 속성을 가지면서도 차별화되는 것 같다. 한동안 유행처럼 여러사람의 손을 오가던 책들을 1년도 넘게 딴짓하듯 만지작거리지도 않다가 펼친 이유는, 분주하게 지나가는 2005 가을을 보내는 나름의 의식이랄 수 있겠다. 도서관에서 잡히는대로 황진을 여러 권 빼들고 왔다. 작가군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과 스토리를 즐기어볼 요량이다. 아주 오래전 읽었던 안수길의 소설 황진이도 기억너머로 떠오를까? 그 첫권이 김탁환의 "나, 황진이"이다.

  김탁환의 소설은 지겹도록 해석과 문자가 많은 특징이 있다. 진저리를 치면서도 내가 그의 소설들을 꾸준히 읽어내는 이유는 아마도 지적 전통 속에서 탐색되는 일련의 중후한 유희(?) - 이런 표현이 어울리기나 하는 건지, 원... - 를 맛보기 때문일 게다. 참신성이라면 좀 뭣하지만, 소설을 읽어 가면서도 공부하는 듯한 느낌이 나고 또 당대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이 작가를 통해 오늘의 다른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는 걸 느끼게 된다. 이는 부조화를 느끼면서도 동질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율배반성을 맛보게 하고 또 작가의 새로운 시도들이 일단은 긍정성을 확보하게 만든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황진이의 이야기이기보다 황진이를 통해 서경덕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파격적일 수 있겠지만, 황진이를 16세기 지성의  언저리에 자연스럽게 얹혀놓고 '지와 사랑과 감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맛을 보게 하였다. 조선 중기 - 사림들의 중앙정계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짐에 따라 이를 견제하는 훈구세력과 빚어지는 갈등구조는 사화(士禍)로 나타난다. 소설 속에서도 대표적인 인물로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정암선생을 언뜻 언뜻 비치고 있다. 서경덕은 역사적으로도 16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임엔 틀림없으나 정계진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주변적이다. 아마도 많은 지인과 친구들이 화를 당하고 자신들이 이상적이라고 믿었던 순수 성리학의 세계가 현실속에서 왜곡되는 모습에 벼슬길에 들어선다는 자체를 거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16세기의 성리학자들은 화담처럼 도교나 성리학 외의 다른 학문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깊었다. 그것은 현실을 도피하거나 또는 이겨내려는 지식인의 몸부림가운데 하나일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 그런 삶을 등가적으로 황진이는 관찰하고 수용하는 넓은 폭과 깊이를 보이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출생을 수용하고 지음(知音)을 통해 사대부와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고 또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면서 나아가 학적 전통이 쌓이는 화담에서의 삶이 수용되는 황진은 화담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진은 대장부같은 구석이 있다고 표현되고 있지만 화담은 여성성이 섬세하게 숨쉬고 있는 것 아닌지....?

  황진은 송도삼절의 하나로 여성성을 대표하는 아름답고 선녀같고 천상의 소리를 아는 기생이기 보다는, 스승인 화담의 뜻과 기색을 살필줄 아는 의연한 제자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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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밀린 일거리를 들고 들어간 연휴이긴 하였지만, 새로운 풍속도가 담긴 결혼식을 기쁜 빛으로 구경하고 돌아와 집에서 빈둥거리는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보낸 시월은 또다른 맛이 있다.

  보통 돌아다니길 좋아하는데다 틈만 나면 산행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편인지라 연휴를 집에서 보낸 기억은 아스라하다. 어머니의 입원으로 인해서 자중자애하는 모습을 갖다보니 집에서 방콕한 시간들이었다. 몸이 요구하는대로 편안하게 쉬고 잠깐 잠깐 눈을 부치고 또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릴랙스한 움직임을 갖는것. 그리고 세상살이에 부딪치지않고 저만치서 멀리 떨어져 구경을 해보는 것,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세상의 한 가운데에만 있으려 들 것이 아니라 가끔은, 아주 가끔은 언저리 저편과 이편을 기웃거려 보는 것도 맛이 있다. 시월의 시작은 내게 여유로 다가왔다.

  조.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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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한자락을 걷어 올리는 낭만이 남아 있는 때가 구월과 시월이 아닐까 싶다. 의욕을 가지고 책을 읽고 밤을 새다시피 정리도 해보고 생각의 언저리를 넘나들고.... 그런 구월이 훌쩍 가버리는 것이 아깝다.

  시월은, 내게 시월은 어떤 빛깔과 소리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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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 합본 양장, 소설로 읽는 진화생물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이용숙 옮김, 최재천 감수 / 현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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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 이의 말마따나 '마야'라는 단어 속에서 나는 '꿀벌 마야의 모험'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 인도의 마야 등을 연상하면서, 철학자가 쓴 진화생물학 소설이란 점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더구나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는 매력을 느끼며 읽었던 기억이 있고, 집에 있는 "소피의 세계"를 아들은 교과서를 외듯이 반복적으로 읽으며 입대하기 전까지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였었다.

  '과학과 문학의 만남'이란 서로 다른 영역끼리 화해하고 손을 잡고 열린 세계를 확장해 보려는 노력은 어떤 분야에서 이루어지든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소설로 살펴보는 진화생물학은 재미와 긴장감을 많이 제공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인식하는 방법의 확장성을 소설이 열어보인다는 점에서는 과학적이 아니라도 상상하고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에서 좋았다. 이를테면 고든이란 도마뱀과 프랑크 사이의 밤에 이루어지는 평등한 대화는 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나를 만나는 것처럼 상징성을 갖고, 안나의 죽음이 소멸의 과정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의 열림이며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의 시간성을 넘어 영원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생각도 매력적이었으며, 아주 작은 문제들로 인하여 인생을 소비하고 서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일상성을 화해하고 사랑하면서 종족보존을 할 수 있는 프랑크와 베라의 경우도 무난한 해결방식으로 보였다.

  하지만, 소설의 양은 너무 많아 지루하고 감수자의 말마따나 영화화 한다면 길고 긴 대화의 장으로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서양식 카드란 나의 일상과 나의 문화 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소설의 곳곳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조미료같은 맛을 내는, 어쩌면 키 워드일수도 있는 부분들을 나는 건질 수가 없었다. 프랑스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한번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굴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지식의 한계에 부딪친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걸 나는 선호하지 않음으로 표현할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현재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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