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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 합본 양장, 소설로 읽는 진화생물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이용숙 옮김, 최재천 감수 / 현암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옮긴 이의 말마따나 '마야'라는 단어 속에서 나는 '꿀벌 마야의 모험'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 인도의 마야 등을 연상하면서, 철학자가 쓴 진화생물학 소설이란 점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더구나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는 매력을 느끼며 읽었던 기억이 있고, 집에 있는 "소피의 세계"를 아들은 교과서를 외듯이 반복적으로 읽으며 입대하기 전까지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였었다.
'과학과 문학의 만남'이란 서로 다른 영역끼리 화해하고 손을 잡고 열린 세계를 확장해 보려는 노력은 어떤 분야에서 이루어지든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소설로 살펴보는 진화생물학은 재미와 긴장감을 많이 제공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인식하는 방법의 확장성을 소설이 열어보인다는 점에서는 과학적이 아니라도 상상하고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에서 좋았다. 이를테면 고든이란 도마뱀과 프랑크 사이의 밤에 이루어지는 평등한 대화는 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나를 만나는 것처럼 상징성을 갖고, 안나의 죽음이 소멸의 과정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의 열림이며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의 시간성을 넘어 영원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생각도 매력적이었으며, 아주 작은 문제들로 인하여 인생을 소비하고 서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일상성을 화해하고 사랑하면서 종족보존을 할 수 있는 프랑크와 베라의 경우도 무난한 해결방식으로 보였다.
하지만, 소설의 양은 너무 많아 지루하고 감수자의 말마따나 영화화 한다면 길고 긴 대화의 장으로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서양식 카드란 나의 일상과 나의 문화 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까닭에 소설의 곳곳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조미료같은 맛을 내는, 어쩌면 키 워드일수도 있는 부분들을 나는 건질 수가 없었다. 프랑스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한번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굴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지식의 한계에 부딪친 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걸 나는 선호하지 않음으로 표현할 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현재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