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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도시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54
이동하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도시로 들어온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자녀 교육을 염두에 두고 직장을 옮기신 아버지의 결정으로 인해서다. 내 눈에 비친 도시는 많은 차량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분주한 발길로 인하여 낯설어 보였다. 나의 존재가 얼마나 작았던지.... 상대적으로 도시는 얼마나 거대했던지, 도시에 나보다 먼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내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스스로 기가 죽었던 것이다.
내 아이들은 시골을 모르는 채 도시에서 자라났고 도시에서 성장하고 있다. 내가 바라본 도시와 내 아이들의 고향인 도시는 얼마나 다를까?
이 동하의 "장난감 도시"에서 체험된 사실들은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이 개입되어 생존의 문제가 치열하며 살아남기만도 버거운 무겁고 희망없는 삶의 편린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한번의 경험만으로도 끔찍할 것 같은 악다구니같은 삶의 모습들이 무기력과 함께 널부러져 무채색의 어두운 기억으로 자리잡는다. 단편적이고도 비연속적인 소년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도시는 장난감과도 같고 '허기가 몰아오는 가벼운 현기증과 명징한 의식'(1부, 12토막)으로 추억하는 과거는 가벼운 현기증보다 구토의 배설물과 함께 뒹구는 듯한 끔찍스러움으로 다가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폐함 속에서 발견되는 명징성을 엿보게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삶의 건강성일까 아님 생명력이 갖는 근원적인 밝음일까? 강씨 이발관의 바뀐 상호에서만 언뜻 발견되는 희망이란 단어에서 화자는 되레 어둡고 허전한 좌절감을 느끼며 여왕개미와 병정개미의 잔인하고 기이한 질서의 세계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212쪽)고 밝히고 있다.
무거운 현실감이 더 많이 들어서인지 감동의 맛도 깔끔하기 보다 무겁다. 작가는 장난감 도시에서 작은 삽화들로 삶이 지닌 본질적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마치 내가 장난감이 되어 거대한 도시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압사당하는 느낌을 종종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