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광장에 서다 -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김정남 지음 / 창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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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가 있다. 70년대의 중반이었는데, 허름한(?) 친구의 집엔 창비의 책들로 가득찬 서가가 방하나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 친구를 가끔씩 만나다가 8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 오빠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결혼 후 생활근거지와 먼 지방에서 교사를 하고 있었다. 오빠의 든든한 백(?)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으련만....., 그런 발상 자체를 비민주적인 처사라고 단호히 거부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 오빠에 그 동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온유했던 친구의 어디서 그런 단호함이 나왔는지.... 하지만 나의 눈엔 우리나라에 희망이 가득 차 보였다. 원칙에의 충실 - 얼마나 멋진 일인가.

  더불어 숲 학교에서 김정남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수수한 아저씨 같은 인상, 정말 수수한 옷차림, 동요를 부르시던 모습... 김정남 선생님이란 소개에 친구를 떠올리면서 인사를 드렸다. 평생 직장이라고는 수석 비서관 하던 것이 유일한 것이었고 책을 내신 것도 이 책이 처음이라 들었다. 이 책의 첫 리뷰를 내가 쓰는 기분은 개인적으로 무거운 부담보다는 기쁨으로 빛난다. 고은의 만인보에서 소개된 부분도 아직 찾아 읽지 못하였으나 단 한 번 뵙고, 친구를 통해 바라보는 흔적들을 통해서만도 충분히 존경할 만한 우리나라의 어르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작가의 말대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저항의 시대를 마감하고, 참여와 창조의 고된 작업에 잘 참여하기 위해서는 '나'를 찾아가는 도정에 서서 꼭꼭 짚어가면서 발걸음을 떼봐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올 8월 5일 구입해서 9월 23일부터 읽기 시작하였고 하루에 한 두편씩 되새김질 하듯 나를 돌아보며 읽어냈다. 11월 마지막날에서야 다 읽었다. 구입후 선뜻 읽기를 시작하지 못한 이유는 책의 부피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현재와 이곳의 이야기에 대한 부담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아직 정리를 미루고 있다. 내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오는 진행형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읽어 내기만도 버거운 적이 많았다.( 이름을 들었거나 혹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내걸고 싸워냈던 그 치열한 삶의 흔적을 어찌 쉽게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러니 쓰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김수환 추기경은 추천사에서 "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한번도 자신을 드러내 앞에 나서지도 않았고 또 내세운 일도 없었으나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편 읽어가면서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기억들을 행간에 기록해 보았다. 내 나름의 기록으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70년대 전태일 열사의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하며 가장 인간답지 못하게 죽어간 아픔으로부터 시작되어 80년대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시작되어 민중들이 이루어낸 6.29선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정치사는 내가 살아내는 현실인데도 마치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으니.... 자신에게 가장 날카로운 질책을 해보이게 하는 책이었다. 나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치환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주변인으로서 자리매김 될지라도 진지하게 노력을 해가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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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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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에 나온 선비의 이미지는 얼마전에 보았던 한량무의 춤사위를 연상시키는 멋스러움이 배어있다. 18세기의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 속에 얽혀있는 억압된 성과 기예의 이야기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듯한 느낌은 작가가 전공이 아닌 자유스런 눈길로 바라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 나니 기대보다 훨씬 멋진 책이 되었다.

  나의 경우는 그림에 문외한인 쪽이라서 해설이 없이는 바라볼 줄 모르는 편이다. 아주 훌륭한 그림조차도 어린애마냥 쓰윽 쳐다보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이를테면 유숙의 '대쾌도'같은 큰 그림을 그냥 흘려보고 살필줄도 모르는 우를 지금껏 범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림 속에 숨어있는 인물들의 행위와 생각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가 고정된 틀 속에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그러나 중요한 일상성이 재미있게 묘사된다. 특히 복식이나 술집의 풍경, 기방풍속도 등은 풍부한 자료와 해설을 친절하게 덧붙여서 무척 흥미롭게 보았다. 김홍도의 자리짜기에 나오는 잔반의 모자가 사방관이라 불리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고 오천원권에 나온 율곡 이이는 정자관을 썼으며 둘다 사대부들이 일상에서 많이 쓴 모자라는 사실, 그리고 천원권에 나오는 퇴계 이황의 복건도 복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찾아보고 알게된 사소한 그러나 재미있는 지식이 되었다.

  기주가 된 무장별감의 모습 -노란 초립, 빨간 홍의 -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고 나를 당혹하게도 안한다. 대쾌도에서도 찾아보고 선술집 풍경이나 유곽쟁웅에서도 익숙하게 찾아내며 해설을 할 수 있는 이 즐거움, 사실 대놓고 자랑은 안해도 술을 마시면서 풀어가는 세상사는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얼마나 큰 기쁨인가? (비록 다음날 힘들어서 허덕일지라도 말이다) 기녀들의 모습도 자유로운 성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생활의 멋스러움을 통해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마치 향가의 헌화가에 나오는 수로부인의 모습일것도 같고 혹은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기도 한 나의 모습의 한 면일 것 같기도 한.... 오랫만에 유쾌하게 책을 읽다. 보면서 읽고 즐겁게 웃고 또 생각도 해보게 하는 이 책은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온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렸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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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민강좌 제35집
일조각 편집부 지음 / 일조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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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잡지류 가운데서는 가장 오랫동안 읽어온 잡지이다. 35집은 2004년 8월에 간행된 책인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에 관련된 부분이 가장 접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전시과와 과전법의 차이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또 신흥사대부에 대해서도 교과서적인 설명외에는 달리 군더더기의 말도 붙이기가 어렵다.

  김당택의 '고려말 대외관계의 격동과 무장세력의 정치적 지향'을 통해서 무장세력이란 이성계 세력이나 최영세력 외에도 많은 정치적 세력이 존재함을 알게된 재미있는 설명이었고, 왕조교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란 민현구의 글도 내게는 참신한 설명으로 보여졌다. 위은숙의 '조선 건국의 경제적 기초로서의 과전법'은 다시 한번 읽으면서 정리를 통해 나의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다. 외에도 이기동의 최치원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최고의 천재인 최치원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고, 역사가의 역사연구와 삶이 어우러지는 공간에 자리한 이태진의 글도 관심 깊게 살펴보았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삶과 이반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사를 공부하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지속적인 공부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 책이 계속 간행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기쁘기도 하다. 이제 책장 한 칸을 꽉 메운 이책은 어디까지 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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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권혁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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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사진엽서라는 시각 유물을 통해 근대의 사회와 문화를 읽으려 한 시도'(271쪽)로 사진엽서를 문화적 유물로 독해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했음을 밝히고 있다. 하나는 사진이 어떻게 근대 대중문화로 흡수되어 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질문해 보는 것이라 한다.

  사진과 인쇄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근대 사진엽서의 유행은 제국주의와 결합되어 오리엔탈리즘의 산물로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려는 서구인의 정치적 시선을 담고 있다. 근대화가 덜 된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나라 혹은 여성에 대한 관음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품들이 나타나 있다.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확실한 비판을 통해 똑바로 바라보되 오래된 풍물을 구경할 수 있는 옛스러움이 자리하는 책이라서 읽고 생각하면서 보는 즐거움을 느꼈고 또한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해서 참 괜찮은 책이었다. 설명되어진 용어들은 딱딱하고 학술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우리 것들을 근대화에 성공한 자들의 우월한 시선에서 상품화되고 남겨진 것을 보되, 그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즐거움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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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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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랄까? 사극의 단골메뉴라 할 만한 사도세자의 죽음을 "사도세자의 고백"으로 듣게 됨은... 좀 지겨움이 앞섰다. 사도세자의 고백보다는 주변인물의 설명과 고백이 더많은 내용이라서 400쪽 분량으로 써지기 보다는 한 200쪽만 되었음 좋았을 듯한 느낌이 지겨움을 더해주었다. 영조와 그의 사랑스럽고 영민한 아들 사도세자, 그리고 세손 정조의 관계를 당쟁으로 풀어가는 부분은 좀 색다른 느낌은 있었으나 정많고 눈물많은 영조가 신하들의 반대를 이겨내며 대리청정을 시키고 자신의 후사를 잇게 했던 세자를 정적으로 알고 숙청하게 되고 또 노론들은 장기집권을 위해 택군을 넘어 임금을 주살하고자 했다는 해석은 현실성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이 팔순이 다 되어가는 영조의 후사로서 세손을 반대하고 장기집권을 꾀하고자 했다는 노론에 대한 설명이나 영조가 자신의 정적으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부분과 장인인 홍봉한과 그 일족이 세자의 반대편에서 세자를 죽음속으로 몰아간 부분이 노론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는 것은 좀 억지스러웠다. 아무리 왕이 소론의 편에 서고자 한다고 해도 노론의 강경한 뿌리를 없애지는 못할 것은 정조 재위년간에 이미 우리가 확인한 바인데(남인이 주도하는 정국운영에도 불구하고 노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경우엔 외척의 세력으로 남았을터인데 그게 왜 안된다는 것인지...."  정치란 힘겨루기 싸움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어느 한편만의 독주란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영조와 정조시대는 조선의 중흥을 일으킬 만한 시대였고 왕권의 강화가 많이 이루어졌던 때이다.

  새로운 해석과 시도는 좋았지만, 노론의 장기집권음모로 모든 것이 몰아부쳐지고 해설되어지는 지루함이 부제로 붙은 '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제대로 밝혀주지 못하였다. 어쩌면 부제에 붙은 대로 뒤주에 갇혀있던 여드레에 집중해서 썼더라면 긴장감과 갈등구조가 보다 첨예하고 날카로와 소설적 긴장과 흥미를 더해주었을 것 같다. 한 인물의 행위를 한가지 정치 행위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적인 행위조차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치적 행위에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거의 여든의 나이까지 재위했던 영조연간에 사도세자가 살았더라면, 영조 25년(1749)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고 영조52년 즉위하였다해도 42세의 나이가 되니... 영조가 너무 일찍 서두른 것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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