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뭐랄까? 사극의 단골메뉴라 할 만한 사도세자의 죽음을 "사도세자의 고백"으로 듣게 됨은... 좀 지겨움이 앞섰다. 사도세자의 고백보다는 주변인물의 설명과 고백이 더많은 내용이라서 400쪽 분량으로 써지기 보다는 한 200쪽만 되었음 좋았을 듯한 느낌이 지겨움을 더해주었다. 영조와 그의 사랑스럽고 영민한 아들 사도세자, 그리고 세손 정조의 관계를 당쟁으로 풀어가는 부분은 좀 색다른 느낌은 있었으나 정많고 눈물많은 영조가 신하들의 반대를 이겨내며 대리청정을 시키고 자신의 후사를 잇게 했던 세자를 정적으로 알고 숙청하게 되고 또 노론들은 장기집권을 위해 택군을 넘어 임금을 주살하고자 했다는 해석은 현실성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이 팔순이 다 되어가는 영조의 후사로서 세손을 반대하고 장기집권을 꾀하고자 했다는 노론에 대한 설명이나 영조가 자신의 정적으로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부분과 장인인 홍봉한과 그 일족이 세자의 반대편에서 세자를 죽음속으로 몰아간 부분이 노론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는 것은 좀 억지스러웠다. 아무리 왕이 소론의 편에 서고자 한다고 해도 노론의 강경한 뿌리를 없애지는 못할 것은 정조 재위년간에 이미 우리가 확인한 바인데(남인이 주도하는 정국운영에도 불구하고 노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경우엔 외척의 세력으로 남았을터인데 그게 왜 안된다는 것인지...."  정치란 힘겨루기 싸움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어느 한편만의 독주란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영조와 정조시대는 조선의 중흥을 일으킬 만한 시대였고 왕권의 강화가 많이 이루어졌던 때이다.

  새로운 해석과 시도는 좋았지만, 노론의 장기집권음모로 모든 것이 몰아부쳐지고 해설되어지는 지루함이 부제로 붙은 '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제대로 밝혀주지 못하였다. 어쩌면 부제에 붙은 대로 뒤주에 갇혀있던 여드레에 집중해서 썼더라면 긴장감과 갈등구조가 보다 첨예하고 날카로와 소설적 긴장과 흥미를 더해주었을 것 같다. 한 인물의 행위를 한가지 정치 행위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적인 행위조차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치적 행위에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거의 여든의 나이까지 재위했던 영조연간에 사도세자가 살았더라면, 영조 25년(1749) 15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하고 영조52년 즉위하였다해도 42세의 나이가 되니... 영조가 너무 일찍 서두른 것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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