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쯤이면 한해를 반성하는 작업을 할만도 하다. 알라딘의 달력을 이리저리 클릭해보았다. 상반기에는 한달에 세번쯤 들어와 독서한 흔적과 작업을 해놓은 것이 눈에 뜨였고, 하반기로 올수록 바쁨을 핑계로 심지어는 한달내내 한번도 안다녀간 때도 보인다.(수능이 있던 11월은 학생들의 수능대비 및 고사장 준비등으로 참 바쁘긴 했다.) 한두번으로 그친 올해의 흔적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흔적이 남아있는 2004-5년에 비해 너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는 단순한 흔적들이 아니라 독서의 힘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일년 100독을 실천하던 이십여년의 삶이 올해부터는 완전히 깨져버렸다. ㅋ
  • 나름대로 새 교과서와 새 학년을 맡아야 했던 그리고 그에 익숙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하더라도 뒷심을 줄 작업에 소홀했음을 철저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역시 기본에의 충실을 잊지말고 행해야 할 것이며, 느슨한 타협으로 변명을 삼는 일이 없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 새해에는 규칙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으로 서야 하겠고, 계획을 세우면 1년은 지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잃지 않았음 싶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어야 하리라. 새해의 시작은 멋진 자전거 연수로 부터 시작한다. 이제 낯선 땅을 자전거로 누비면서 내 눈과 몸을 즐겁게 할 일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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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교양 교양인 시리즈 1
강재언 지음, 하우봉 옮김 / 한길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  강재언 지음(하우봉 역 )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이처년"이란 다소 두꺼운 책을 오랫동안 끼고 살았다. 전공서적이라기에는 일반 개설서 같고, 교양서적이라기에는 한국 유학사를 다 담아보려는 노력이 적지 않아서, 덮었다 펼쳤다를 오랫동안 하면서 결국은 다 읽고 반납하게 된 책이다. 아마도 끝까지 읽어낸 이유의 하나는 한길사 책이라는 점도 작용을 한 듯 싶다. 유학자이자 경세가였던 많은 인물들에 대한 계보와 세세한 뒷이야기까지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특히 조선왕조의 건설과 수성에 있어서의 배경과 중국 청조의 건설과 수성과정을 함께 설명한 부분 등은 이해도 쉽고 여러 측면에서 사건들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   본문의 내용 중에는 홍대용의 의산문답에서 인용한 "중국은 서양에서 보면 경도의 차가 180도나 된다. 중국인은 중국으로써 正界라 하고 서양을 倒界라고 한다. 실은 하늘을 이고 땅을 덮고 있는 세계는 모두 이와 같다. 따라서 도(道)도 없고 도계(倒界)도 없으며 모두 똑같이 정계(正界)이다." (p.391-392) 라는 말은 성리학 중심의 세계, 다시 말하면 중국중심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던 조선후기의 사회에서 중국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면서 모든 세계가 다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밝힌 실학자의 당당한 발언이다.
  •   오늘의 시점에서 살펴보자면,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영어중심, 그것도 미국 중심이 되어있는 세계에서 그 영향을 가장 첨예하게 받고 있는 나라(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우리들로서는 한번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경청할 말이다. 200년이 흘러간 이 시대는 속도감에 있어서는 공간의 확장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 넓고 광활하며 다양해 보인다. 하지만 뒤쳐져있다는 자괴감으로 인하여 면면히 이어져오던 선비정신조차 다 버리고, 서구화 혹은 근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지 정리할 수 없는 척박한 토양속에서 몸부림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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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창비시선 19
정호승 지음 / 창비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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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상에서 시인을 만났다. 초기시집에서 보이던 날카로움은 30여년의 세월의 무게와 굴림 속에 깎이고 굴려서 부드럽고 안온한 표정을 갖게되어 보기에 좋았다. 절제된듯한 혹은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모습으로 말을 아끼며 우리 가슴 속에 들어있던 시들을 꺼내어 반짝이게 하는 강의는 한시간여로 끝났지만, '꽃이 피다'를 시어로 바꾸어 본다면? 으로부터 시작된 강의는 많이 알려진 감성적인 시들의 낭송과 해석과 함께 공유하기로 이어지고 또 간혹 노래들로 연결되면서 잃어버린 감성의 실타래를 찾아나서게 하였다.
  •   일상의 모습이 시가 되었다. 아내가 사온 무지개 떡을 먹으면서 떡은 먹고 무지개는 북한산으로 올려보냈다는 간결.섬세한 시나, 군대에 가는 아들이 들고온 천마리 학이 든 유리병 속의 종이학을 지리산으로 날려 보낸 시들은 쓸 수는 없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게 만들었다. 비가 오면 종이가 젖어서 어떻게 하나? 계룡산쯤 가다가 비를 만나도 너끈히 지리산 골짝으로 날아들 수 있도록 종이는 남기고 새들만 날아가게 만드는 시인의 마음씀씀이가 따뜻하다.
  •   시는 인간을 위안해 줍니다. 준비해간 시집에 써주신 글귀이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란다.그렇다. 시 한 줄 못남기고 내 가슴속에 들어있는 시들조차 남의 시어를 통해서만 꺼내보는 답답한 사람이지만, 계절이 갈 때마다,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시 한 줄씩 읽어가면서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된다. 시는 인간을 위안해 줄뿐 아니라 시인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랫말로 붙여진 시들을 통하여 또 다른 감흥을 맛보기도 하였고, 시인의 몫이기 보다는 시를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질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과 기쁨이기도 하였다. 다 아는 시들인 듯 하였는데도 이틀지난 과거를 추억함에 이 시였는지, 저 시였는지 아리송해진다. 제목에 붙은 세번째는 시인을 세번 만났다는 뜻이 아니다. 한주일 내내 뵈었지만, 이 글을 쓰기까지 여러가지 사소한 일들로 포맷이 되어버려 세번째의 작업을 하고 있다.
  •   불국사 잔디밭의 목잘린 부처상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부처가 되어보라는 부처님의 넉넉한 마음씀씀이로 노래하는 시인은 얼마나 따뜻한가. 초등학생들이 와서 제 목을 얹어가면서 사진을 박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혀를 차거나, 서로다른 신앙을 혹은 이념을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남긴 잔인함으로 인하여 쓸쓸해하며 혹은 분노했을진대, 시인의 눈에는 부처님의 넉넉한 마음으로 보였으니.... 목만 남아 잔디에 남아있는 부처님들의 두상은 낮은데로 향하여 세상을 살피는 자비의 다른 표현일까? 읽기 좋은 시집들이 가득 차 있는 책장을 바라보면서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읽어가는 맛도 좋으나, 내 가슴 속에 가득찬 샘물을 나도 내 손으로 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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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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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가는 당대사에 가까울 만큼의 거리에 있는 현대사를 익숙한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아는 것 하나도 없이 어쩌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가까운 시선만을 간직한 채 마치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오류에 빠질 염려가 많다.

  역사학도가 바라보는 관점과는 또 다르게 전쟁과 사회를 바라보면서 학살의 부분은 여전히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지만 사회학적인 입장에서 살피는 부분은 신선해 보였다. 남과 북에 대한 양비론의 입장일 수도 있어서 자칫하면 식상하기 쉬운데, 긴장미를 늦추지 않고 양쪽의 무게를 잘 살피면서 비판과 분석을 해놓았다. 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짧은 글로 마쳐야 하겠지만, 오랫동안 한 주제에 대하여 긴 글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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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향리
이훈상 / 일조각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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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에 읽고자 시도하였던 "조선 후기의 향리"를 다 읽다. 몇 차례 시도하다가 번번이 읽지도 못하였던 책이다.

  조선의 향리들은 고려시대와는 달리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 받지도 못하고 신분적인 제약도 많았으며 아전의 지위에 머물러 많은 불만을 사왔다. 그렇다면 이들을 무얼 가지고 삶을 유지하였으며 특정한 집단을 형성하여 근대화의 기수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때문에 읽기 시작하였는데, 통설에 도전하는 내용이 색달랐다. 일단은 조선 후기 신분상의 변동이 매우 심하여 양반층의 확대되고 양인층과 천민층이 매우 얇아진다고 하는데 향리 가계를 연구해보니 이런 통설에 회의가 간다. 양반층이 얼마나 폐쇄적으로 움직이면서 중인이나 서얼을 수용하는데 인색하였는지, 또 향리층이 사족층에 끼이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움직였는가를 밝혔다. 또한 향리층의 경우도 이방이나 호방을 지낸 가문은 좁아지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서로 통혼을 함으로써 폐쇄적으로 결속하는 양태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서민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탈춤의 경우 향리층이 주도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농민들의 감정을 풀어주면서 자신들에게로 향할 수 있는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하는 모습들을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보이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탈춤을 정리한 신재효의 경우도 향리출신이라고 한다.

 각 지방의 향리가문의 족보를 세세히 살피고 정리하면서 또 향리층이 남기고 있는 "안동향손사적통록" 이라든지 "연조귀감"등을 자세히 분석하여 평소에 잘 모르던 분야사에 대한 꼼꼼한 설명이 합리적인 느낌을 주었다. 여전히 향리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알길이 없었으나 통설로 쉽게 설명하고 의문을 접던 태도에 자극을 불어넣어준 것은 사실이다.

 의문을 풀어가는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나 스스로도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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