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창비시선 19
정호승 지음 / 창비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선상에서 시인을 만났다. 초기시집에서 보이던 날카로움은 30여년의 세월의 무게와 굴림 속에 깎이고 굴려서 부드럽고 안온한 표정을 갖게되어 보기에 좋았다. 절제된듯한 혹은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모습으로 말을 아끼며 우리 가슴 속에 들어있던 시들을 꺼내어 반짝이게 하는 강의는 한시간여로 끝났지만, '꽃이 피다'를 시어로 바꾸어 본다면? 으로부터 시작된 강의는 많이 알려진 감성적인 시들의 낭송과 해석과 함께 공유하기로 이어지고 또 간혹 노래들로 연결되면서 잃어버린 감성의 실타래를 찾아나서게 하였다.
  •   일상의 모습이 시가 되었다. 아내가 사온 무지개 떡을 먹으면서 떡은 먹고 무지개는 북한산으로 올려보냈다는 간결.섬세한 시나, 군대에 가는 아들이 들고온 천마리 학이 든 유리병 속의 종이학을 지리산으로 날려 보낸 시들은 쓸 수는 없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게 만들었다. 비가 오면 종이가 젖어서 어떻게 하나? 계룡산쯤 가다가 비를 만나도 너끈히 지리산 골짝으로 날아들 수 있도록 종이는 남기고 새들만 날아가게 만드는 시인의 마음씀씀이가 따뜻하다.
  •   시는 인간을 위안해 줍니다. 준비해간 시집에 써주신 글귀이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란다.그렇다. 시 한 줄 못남기고 내 가슴속에 들어있는 시들조차 남의 시어를 통해서만 꺼내보는 답답한 사람이지만, 계절이 갈 때마다,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시 한 줄씩 읽어가면서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된다. 시는 인간을 위안해 줄뿐 아니라 시인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랫말로 붙여진 시들을 통하여 또 다른 감흥을 맛보기도 하였고, 시인의 몫이기 보다는 시를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질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과 기쁨이기도 하였다. 다 아는 시들인 듯 하였는데도 이틀지난 과거를 추억함에 이 시였는지, 저 시였는지 아리송해진다. 제목에 붙은 세번째는 시인을 세번 만났다는 뜻이 아니다. 한주일 내내 뵈었지만, 이 글을 쓰기까지 여러가지 사소한 일들로 포맷이 되어버려 세번째의 작업을 하고 있다.
  •   불국사 잔디밭의 목잘린 부처상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부처가 되어보라는 부처님의 넉넉한 마음씀씀이로 노래하는 시인은 얼마나 따뜻한가. 초등학생들이 와서 제 목을 얹어가면서 사진을 박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혀를 차거나, 서로다른 신앙을 혹은 이념을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남긴 잔인함으로 인하여 쓸쓸해하며 혹은 분노했을진대, 시인의 눈에는 부처님의 넉넉한 마음으로 보였으니.... 목만 남아 잔디에 남아있는 부처님들의 두상은 낮은데로 향하여 세상을 살피는 자비의 다른 표현일까? 읽기 좋은 시집들이 가득 차 있는 책장을 바라보면서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읽어가는 맛도 좋으나, 내 가슴 속에 가득찬 샘물을 나도 내 손으로 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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