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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채만식 원작, 박상률 엮음, 김세현 그림 / 진달래산천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 조선 땅에 살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에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간도성에서는 1940년 이전에 벌써 9할이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물론 시설이 넉넉하지 못하고 선생의 실력도 낮고 수도 부족해 가르치는 수준이 두루 보잘것 없기는 했다. 만주에서는 간도로 흘러간 조선 사람들, 특히 이민 간 농민들의 교육열이 높았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들 생각했다. "우리는 못 배우고 가난하다. 못 배우고 가난하기 때문에 만만하게 여겨졌다. 만만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땅 기름지고 기후 좋은 고국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왔다. 그러기에 기후와 땅이 거친 만주로 흘러와 강냉이에 조밥을 먹으면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왕 못 배우고 가난하여 만만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지만 자식들에겍까지 이 고생을 차마 이어지게 할 수는 없다. 자식들은 이 고생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자면 만만치 않아야 한다. 만만치 않자면 부자가 되거나 공부를 해서 보잘것없는 처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자가 되게 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공부쯤은 뜻 하나로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오냐, 공부시키자. 나는 뼈가 휘고 가죽이 닳아도 좋다. 자식들 공부시켜 보잘것없는 처지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래서 이 거친 만주살이의 고생에서 벗어나 고국에 돌아가서 어엿이 살도록 하자.' (31-32쪽)
- 간도는 조선의 수많은 애국 지사와 독립군들이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일본과 싸우다 쓰러지며 피로 쓴 역사입니다. 여러분! 이 간도의 역사는 또한 왜사람들에게 기름지고 살기 좋은 고국을 빼앗기고, 백옥 같은 쌀밥과 조상의 뼈가 묻힌 선산을 빼앗기고 들어온 여러분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강냉이 조밥을 먹으면서 영하 30도의 추위에 떨어야 하는 이 거친 오랑캐의 땅으로 쫓겨왔습니다. 그런 뒤 10년, 20년, 50년 죽도록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니 간도의 역사는 바로 여러분의 눈물과 피로 쓴 것입니다!" (60쪽)
- 백성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마음 둘 곳을 가지지 못했다. 백성들은 반 곽을 다 그어도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이지 못하는 국산 성냥을 팽개치면서 이것이 해방이고 독립이냐고 두런거렸다. 살찌는 축은 집이며 물자 따위를 넘겨받아 팔아먹는 장사치들과, 이 장사치들이 들이미는 뇌물로 자기 배를 채우는 군정의 벼슬아치들이었다. 순사들이 휘두르는 힘도 일제 시대를 우습게 볼 정도로 높아졌다. (149쪽)
박상률 다듬고 김세현이 그린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를 읽다. 해방공간에 무턱대고 희망을 안고 쏟아져 들어온 일가가 바스러지는 삶을 황폐하지만을 않게 그렸다. 소년은 자란다. 꿈을 가지고 자란다.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달랑 둘만 남은 남매가 뭉쳐서 살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자란다. 아프다. 풍요롭지 않음으로 인해서가 아니다. 생존의 처절함으로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