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사람들은 내가 8월에는 하와이에서 지낸다고 하면 "여름인데 일부러 그런 더운 데로 가다니 정신이 이상한 거 아냐?" 하며 한결같이 놀란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북동쪽에서 쉬지 않고 불어오는 무역풍이 하와이의 여름을 얼마나 시원하게 해주고 있는가를, 아보카도의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를 하거나 문득 생각이 날 때면 그대로 남태평양의 후미진 해변으로 수영을 하러 갈 수 있는 생활이, 사람을얼마나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차게 해주는지를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 P18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 "무척 의지가 강하시군요" 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을 받으면 물론기쁘다. 욕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런데 의지가 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은 그처럼 단순하게되어 있지는 않다, 라고 해도 무방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 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을 할 수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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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22-03-29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 책 살까 보고 있는데 치니님 밑줄이 ㅋㅋㅋㅋ

치니 2022-03-29 08:53   좋아요 0 | URL
이 책 짱 좋아요 😍 하루키는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참 잘 쓰는 듯! 저 마지막 밑줄은 제가 달리기에 대해 느끼는 것과 너무 비슷해서 얼마나 더 재미나던지! ㅎㅎ 사요 사요
 
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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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예상한 내용과 달라선지 거의 모든 글이 마음에 와닿질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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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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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그 어떤 잡다한 소재라도 글로 만들어내는 능력 만큼은 이분이 현존 최고가 아닐까 싶다. 후루룩 잡지처럼 편하게 읽기 좋고 티셔츠 대부분 예뻐서 읽기를 전혀 후회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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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적으로 듣는 음악

뉴 웨이브까지 들으셨어요? 정말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시는군요.
"좀 탐욕적으로 듣죠. 음악은 조금만 공백이 생기면 못 따라가요. 삼사 년쯤 새로운 곡을 듣지 않다 보면 요즘 음악을 들어도 연결이 잘되지 않아요. 뭘 들어도 다 똑같이 들리죠.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않도록 비교적 공백을 두지 않고 듣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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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여자, 사람입니다
손민지 지음 / 디귿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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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구절구절마다 공감하며 읽었다.
얼마 전 운동장에서 갑자기 뒤에서 확 따라 붙으며 말을 걸어온 중년 남성 때문에 혼비백산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한편 곧바로 달리기 옷차림을 자체 점검하는 스스로를 보며 안쓰럽고 속상했던 일까지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싶어 하면서.
그래도 용기를 내고 낯선 길을 또 떠나는 수 밖에 없는, 신기하기 짝이 없는 달리기의 힘에 대한 찬사까지 또 참으로 비슷하네 하면서.
손민지 작가님, 우리 보이진 않아도 온라인으로 함께 달려요. 항상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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