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기본값 이론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우연보다는 훨씬 유능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우리는 이 모든 동영상을 살펴보고 "진실, 진실, 진실을 추측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면담 시에 진실을 말하는 이를 잘 알아보고 거짓말을 하는 이를 몰라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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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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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를 소위 인생 책으로 꼽는 사람이고, 얼마 전 왓챠에서 드라마까지 본 참이라 후속작 ‘다시, 올리브’를 위한 문학동네 이벤트를 덥석 물었다.

문학작품에서 첫 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한번 깨우치게 하는 첫 문장부터 ‘와 이건 또!’ 전작에 이은 취향 저격이라는 예감이 강력히 다가옴.
이어지는 문장들은 당연히 술술 읽히고, 내가 올리브가 됐다가 크리스토퍼가 됐다가 앤이 됐다가 잭이 되는, 인물에 대한 그 마법의 몰입감이 이전 작품에서 그랬듯 여지없이 재현되어서, 다른 모든 걸 제껴두고 단숨에 읽었다.

혹시 이벤트 당첨 안 되더라도 구매 의사 확실하게 다지는 중이다. 좋은 소설을 놓치고 사는 삶은 훗날 언젠가 이 소설의 올리브처럼 짙은 후회를 삼키며 사는 삶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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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 읽었는데 좋더라. 그래도 난 올리브 키터리지가 더 좋아. 근데 올리브가 늙은 나이에 젊은 의사를 짝사랑하는 표현은 얼마나 사실적인지,,,, 내 얘기 하는 줄 알았;;
근데 이건 또 뭔 이벤트? 관심 가네.ㅎㅎㅎㅎ

치니 2020-11-03 12:51   좋아요 0 | URL
오 벌써 영문판 원서로 읽으셨군요! 저도 이 책 만큼은 영어로 읽고 싶단 생각을 자주 했는데, ㅠ 실력이 영 안되어서 엄두 못 냈어요.
이벤트는 한 챕터만 전자책 뷰어로 읽을 수 있게 보내주고 기대평을 쓰면 도서나 커피 쿠폰 보내주는 거 ㅎㅎ 사실 기프트 보다는 미리 읽기가 하고 싶어서 신청해서 읽어 봤어요. :)

라로 2020-11-03 13:17   좋아요 0 | URL
자기 실력이면 충분히 읽고도 남음. 영어로 읽으시게나!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
임소라 지음 / 하우위아(HOW WE ARE)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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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옴니버스 형식을 원체 좋아해서 내용 뿐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만족하며 읽었다. 양해중 씨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나도 양해중 씨 같은 구석은 있으나 용기 면에서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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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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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어언 이십 여년 전, 온라인 동호회가 이제 막 인기를 끌 때 즈음 어찌하다 보니 나 역시 그런 동호회에 들게 됐다. 문화, 라는 이름 하에 뭐가 됐든 예술에 포함되는 일들을 하거나 동경하거나 즐기거나 또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대체로 어떤 목적성이 있는 일을 도모하기 보다는 술을 잔뜩 마시는 것 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었고, 이 점이 나는 좋았다.

술자리가 익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다가 문득, 와 ㅇㅇ가 지금 한 말 완전 시 구절 같다, 또는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시 같다, ㅇㅇ를 보니 시가 떠오른다...등의 말을 할 때면 시 구절 같은 말을 했다며 찬사를 받은 친구가 짐짓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뭘 이 정도 갖고 유난인가, 우리 중에 뭐, 한 때 시인 되기 꿈 꿔보지 않은 사람도 있어?" 

와하하 동의하는 웃음이 쏟아졌고 그 모임 특유의 (예술가를 높게 쳐주는) 분위기 때문에 이 말이 우습지도, 시인이라는 '직업'을 폄하하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내심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시인이 될 주제도 실은 안되고 뭣보다 시인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 살 자신 따위 1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한 때 그런 꿈이라도 꿔 봤던 스스로의 낭만적 과거에 약간 도취되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우리와 다르다. 진짜 꿈을 꾸었고 그 과정은 길고 진지하고 구체적이다. 

10년이 넘도록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써온 일기들과 정확한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은 낙서들, 무엇보다도 국어책이나 문학책 지문에서 눈에 띄는 시를 만나게 되면 그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그 시인의 시집을 사들고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냈던 일들. 그런 날에는 온몸에 단어들이 솟아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던 경험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에 단어들이 솟아나는 것 같은 착각 - 이런 경험을 했던 사람이 자신만의 언어를 써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을까. 누르고 혹은 눌려도 자꾸만 자라나던 그 '창백한 연두색 싹'이 틀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싹이 나무로 자라나게 하고픈 갈급증을 참아낼 수 있을까. '한 때'로 치부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아마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나'는 늦게나마 시를 배우고 남의 시를 필사한다. 

'나'의 필사는 언젠가 자신만의 언어를 세상에 내보이기 위한 연습이자 끝없는 좌절감 속에서도 힘을 내어 믿고 나아갈 수 있는 등대였으리라. 세상이 당장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매일 무언가를 읽고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계속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의 등대.


바깥 세상은 물론 가정 내에서조차 존재감 없이 살아온 '나'는 성취욕 없고 돈 벌 능력도 재주도 없는, 그래서 늘 가난한(게 당연한) 인물. 유일한 낙이라고는 시 또는 문학 주위를 맴돌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서점에서 만난 순한 남자와의 소박한 데이트, 필사와 습작 뿐이건만, 세상은 결국 이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동생의 결혼생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고 '나'와 나의 부모가 사는 집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대부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


동생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나'에 대한 묘사가 마치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미뤄 짐작하게 할 만큼 세세하고 실감난다면, 사건 이후의 '나'가 겪는 가족구성원 간의 심리적 갈등, 애인과의 무기력한 결별, 그토록 사랑하던 시를 쓸 수 없게 된 데 대한 두려움, 답답함, 공포감은 곧바로 우리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겪고 있거나 겪을 가능성이 높은 감정으로 치환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직,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원치 않았던 출산, 존중 받지 못하는 결혼 생활, 존중 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으로 지금 이 시각에도 고통 받고 있으나, 소설 속 어머니가 그렇듯 세상은 이들을 부러 모른 척 하거나 그 대가를 치뤄주는 데 너무나도 인색하다. 모두들 제 코가 석자라고 생각하며 갈수록 냉담해지기만 한다.

작가는 어쩌면 이런 세태가 못내 안타깝고 또 자기 일처럼 서러워 (어쩌면) 오랫동안 (어떤 개인적 연유로 도무지 쓸 수가 없어서) 놓았던 펜을 다시 가지런히 하고 흰 백지에 한 줄 두 줄 써내려 갈 용기를 (기어이) 내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문일까,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 작품들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가장 밑바닥까지 인물을 끌어내려 가장 어두운 곳을 직시하도록 스스로와 독자를 채찍질 했던 그 엄정함을 잃지 않았으나 한결 따뜻하고 어딘지 촉촉해진, 위로 가득한 눈길을 머금은 문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얼핏 크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아마도 엄청난 숙고 끝에 이뤄졌을 변화가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모든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무척 반갑게 여겨진다. 


그나저나, 한 때나마 시인을 꿈 꿨던 그 친구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풍문으로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시인이 된 친구는 없는 것 같지만, 만약 아직 꿈 꾸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부디 연두색 싹을 버리지 말아주길. 우리에겐 여전히 시인이 간절하게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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