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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어언 이십 여년 전, 온라인 동호회가 이제 막 인기를 끌 때 즈음 어찌하다 보니 나 역시 그런 동호회에 들게 됐다. 문화, 라는 이름 하에 뭐가 됐든 예술에 포함되는 일들을 하거나 동경하거나 즐기거나 또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대체로 어떤 목적성이 있는 일을 도모하기 보다는 술을 잔뜩 마시는 것 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었고, 이 점이 나는 좋았다.
술자리가 익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다가 문득, 와 ㅇㅇ가 지금 한 말 완전 시 구절 같다, 또는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시 같다, ㅇㅇ를 보니 시가 떠오른다...등의 말을 할 때면 시 구절 같은 말을 했다며 찬사를 받은 친구가 짐짓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뭘 이 정도 갖고 유난인가, 우리 중에 뭐, 한 때 시인 되기 꿈 꿔보지 않은 사람도 있어?"
와하하 동의하는 웃음이 쏟아졌고 그 모임 특유의 (예술가를 높게 쳐주는) 분위기 때문에 이 말이 우습지도, 시인이라는 '직업'을 폄하하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내심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시인이 될 주제도 실은 안되고 뭣보다 시인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 살 자신 따위 1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한 때 그런 꿈이라도 꿔 봤던 스스로의 낭만적 과거에 약간 도취되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우리와 다르다. 진짜 꿈을 꾸었고 그 과정은 길고 진지하고 구체적이다.
10년이 넘도록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써온 일기들과 정확한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은 낙서들, 무엇보다도 국어책이나 문학책 지문에서 눈에 띄는 시를 만나게 되면 그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그 시인의 시집을 사들고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냈던 일들. 그런 날에는 온몸에 단어들이 솟아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던 경험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에 단어들이 솟아나는 것 같은 착각 - 이런 경험을 했던 사람이 자신만의 언어를 써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을까. 누르고 혹은 눌려도 자꾸만 자라나던 그 '창백한 연두색 싹'이 틀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싹이 나무로 자라나게 하고픈 갈급증을 참아낼 수 있을까. '한 때'로 치부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아마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나'는 늦게나마 시를 배우고 남의 시를 필사한다.
'나'의 필사는 언젠가 자신만의 언어를 세상에 내보이기 위한 연습이자 끝없는 좌절감 속에서도 힘을 내어 믿고 나아갈 수 있는 등대였으리라. 세상이 당장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매일 무언가를 읽고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계속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의 등대.
바깥 세상은 물론 가정 내에서조차 존재감 없이 살아온 '나'는 성취욕 없고 돈 벌 능력도 재주도 없는, 그래서 늘 가난한(게 당연한) 인물. 유일한 낙이라고는 시 또는 문학 주위를 맴돌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서점에서 만난 순한 남자와의 소박한 데이트, 필사와 습작 뿐이건만, 세상은 결국 이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동생의 결혼생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고 '나'와 나의 부모가 사는 집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대부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
동생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나'에 대한 묘사가 마치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미뤄 짐작하게 할 만큼 세세하고 실감난다면, 사건 이후의 '나'가 겪는 가족구성원 간의 심리적 갈등, 애인과의 무기력한 결별, 그토록 사랑하던 시를 쓸 수 없게 된 데 대한 두려움, 답답함, 공포감은 곧바로 우리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겪고 있거나 겪을 가능성이 높은 감정으로 치환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직,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원치 않았던 출산, 존중 받지 못하는 결혼 생활, 존중 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으로 지금 이 시각에도 고통 받고 있으나, 소설 속 어머니가 그렇듯 세상은 이들을 부러 모른 척 하거나 그 대가를 치뤄주는 데 너무나도 인색하다. 모두들 제 코가 석자라고 생각하며 갈수록 냉담해지기만 한다.
작가는 어쩌면 이런 세태가 못내 안타깝고 또 자기 일처럼 서러워 (어쩌면) 오랫동안 (어떤 개인적 연유로 도무지 쓸 수가 없어서) 놓았던 펜을 다시 가지런히 하고 흰 백지에 한 줄 두 줄 써내려 갈 용기를 (기어이) 내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문일까,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 작품들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가장 밑바닥까지 인물을 끌어내려 가장 어두운 곳을 직시하도록 스스로와 독자를 채찍질 했던 그 엄정함을 잃지 않았으나 한결 따뜻하고 어딘지 촉촉해진, 위로 가득한 눈길을 머금은 문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얼핏 크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아마도 엄청난 숙고 끝에 이뤄졌을 변화가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모든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무척 반갑게 여겨진다.
그나저나, 한 때나마 시인을 꿈 꿨던 그 친구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풍문으로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시인이 된 친구는 없는 것 같지만, 만약 아직 꿈 꾸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부디 연두색 싹을 버리지 말아주길. 우리에겐 여전히 시인이 간절하게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