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즈의 편지
파스칼 로즈 지음, 이재룡 옮김 / 마음산책 / 2003년 8월
평점 :
실제 대면한 적도 없는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평생 사랑을 느껴온 작가가 쓰는 편지.
즉, 남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형식을 빌어서 쓰여진 자전적 소설인 이 작고 가벼운 책은,
그런 외관과는 달리, 재미있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는 말로 설명이 안되는 난감함을 던진다.
우선, 톨스토이의 책을 한권도 읽어보지 못했거나, 읽었다 하더라도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만 떠올릴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온 내용의 삼분의 일만 이해한다 해도 다행이겠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책을 시대별로 읽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도의 책을 읽고,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얼마나 신실했는지, 러시아에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가늠해 볼 정도면, 아마 반 정도 이해하면 다행이겠다. (이 정도 선에 있는 사람이 나. -_-;)
책이 전달하는 소설적 재미를 그래도 대략 90프로 이상 만끽하려면, 어찌 되었건 톨스토이의 역작들을 섭렵하고 역사적 배경도 꿰고 있는 사람이라야만 한다!
이 어찌 난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게다가 그 절절하고 적확하며 정서적으로 충만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이라니.
한 줄도 그냥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덜 게을렀더라면 몇줄은 기어코 여기다 옮겨적었을텐데, 싶으니 말이다.
톨스토이는 일기를 매일 쓰고, "내일도 살아있다면"이라는 문장을 꼭 마지막에 적었다고 한다.
죽음의 문앞까지 다녀온 이 작가에게는 그 한 줄 만으로도 평생 지켜온 톨스토이와의 도플갱어적 유대감을 공고히 하기에 충분했겠다, 고 그나마 얕은 이해로 끄덕끄덕.
열어놓은 창에선 이제 여름 밤의 냄새가 난다. 내일도 살아있다면 조금 더 찐득한 냄새를 맡겠고, 그 다음날에도 살아 있다면 풍덩 바다에 뛰어들고 싶겠고, 그리고 가을 냄새를 맡겠고...그리고 그리고... 죽을테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사는 우리 모두는, 결국, 하루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