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내가 이래저래 책을 읽고 모임에 참여한 역사는 제법 길었다.
고교 시절엔 문학소녀 티를 내느라 문예반에 들어가 나름 열혈 독서 토론 참가, 글을 써서 모두에게 보여주고 평을 들었던 것(합평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진)은 지금이라면 차마 하지 못할, 주제 모르는 짓이어서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 당시 문예반 선생이 권했던 박노해나 김남주, 이문일이나 이청준의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더 허접했을 거라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는 걸 보면 그때 멋도 모르고 다닌 그 모임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만,
글 좀 쓰고 책 좀 읽은 줄 알고 대학 들어가서도 독서토론 동아리에 떡 하니 발을 담고 보니, 웬걸, 세상에는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다. 토론 내내 그들이 격렬하게 하는 말들의 대부분을 이해조차 못해서 입 한번 벙긋 안 하고 뒤풀이만 기다리던 나날들, 그래도 연애에 빠지기 전까지 꼬박꼬박 나갔던 이유는 '나도 마르크스 쯤은 안다' 정도의 허세였을 뿐, 약간의 썸씽이 오가던 남자 선배와 동기를 제외하고는 정작 책으로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 -0-;
고교 시절 책은 기억나는데 더 근접한 과거인 대학 시절 그 책들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를, 여태까지는 문학작품과 사회과학 서적이라는 쟝르의 차이로 치부하거나 개인적인 진지함 부족으로만 여겨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참여하기 시작한 <명랑한 세미나>에서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 김영민 선생 말 마따나 생각은 공부가 아니건만, 나는 지금까지 책 읽기를 통해 '생각'만 했지 '공부'를 하지 못한 채,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으로 뭔가 '배우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명랑한>이라는 형용사가 의미심장하게 놓인 것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 세미나는 간단히 말해 공부를 하되 명랑하게 하는 모임이다. 그 공부가 일종의 무브먼트까지 이드거니 연결되는 동안 쉬이 지치지 않도록 '지나친 무거움'과 '현학적인 자세'를 버리고, 조금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삶으로 가는 길을 시작하는 모임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명랑이 곧 경박은 아니듯, 진솔하지만 진중하게 읽고 이야기한다.
이제 어느덧 9회 차를 앞두고 있는 이 모임에서, 나는 조금쯤 과거의 독서토론에서 받았던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것 같다. 실생활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지식인들의 허영 짙은 배설의 장이라는 폄하도, 개인적으로 좀 '있어'보이려는 욕심이라는 자조도, 놀 시간도 없는데 언제 책 읽고 토론까지 하니라는 핑계도, 다 걷었으니 아직 공부의 공 자도 시작은 못한 거 같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좋은 건 나누면 배가 된다는 믿음으로, 여기 소개해봅니다. 혹시 오실 분 계시면 아래 공고를 참조하세요 ~ :) (참, 혹시 11월에 힘드신 분은 다음 달에 오셔도 됩니다. 매월 1회 첫째 주 금요일에 합니다.)
---------------------------------------------------------------------------------------
제목 : 9회, 사루비아다방 명랑한 세미나 : 강준만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을 읽고 함께 얘기 나눕니다.
- 주교재 : 강준만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인물과사상사 | 2011
- 시간/장소 : 11월 4일(금) 오후 8시, 사루비아다방
약도 : http://blog.naver.com/salviatea/140069759578
- 발제문 발표 : 최병건
- 토론 진행 및 사회 : 김창한
: 소개 + 발제문 발표- 논제 설정 + 토의와 정리-의 순서로 진행. [참석자들은 성실하게 책을 읽고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 정원 : 최소 4명 ~ 최대 10명
- 문의 및 신청 : iron-pen@hanmail.net 로 참여하시는 분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주시거나 보내주세요.(신청 마감일은 따로 없으며, 인원수가 모두 차면 자동으로 신청 종료합니다)
- 회비 혹은 장소 대여비 :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