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오후 1시 10분.
자다가 얼핏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과 함께, 어디선가 쾅! 하는 굉음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화장실에 가니 비데가 작동되지 않는다. 얼마 전 수리했는데 벌써 또 고장? 짜증이 밀려 오는 걸 서둘러 막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전기 시설도 점검한다. 역시나, 아무 것도 작동되지 않는다. 핸드폰을 보니 밧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쾅! 소리 때문이었든, 그냥 폭우 때문이었든, 원인불명, 아무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 이제 어쩔까.

방은 어둡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흐리기 때문이다. 밧데리가 다 한 핸드폰은 꺼지고, 컴퓨터 전원이야 저장된 밧데리로 들어오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는데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언제부터 이 따위가 되었을까, 인터넷 없던 시절에도 컴퓨터를 썼건만, 이제는 그게 안 된다)

어제 조금 읽다 만 <포기의 순간>을 읽기로 하면서, 어두운 방 안보다는 카페가 낫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만다.
어쩐지, 이 책은 어두운 곳에서 읽기에 오히려 적절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한결 놓인다. 하지만 분명히 금세 다 읽고 말 것 같은 분량의 책을 보면서 이후엔 어둠 속에서 무얼 할지 또 다른 우려가 스물스물. 가까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살펴본다. 4시20분, <플레이>라는 음악영화가 있네, 오케이. 책을 읽고 극장으로 가자.

나는 나름대로 분명하고 예측 가능한 설정을 해두고 문명(전기)이 잠시 끊긴 사이에도 지혜롭게 대처한 것 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이 뿌듯함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내 사라지고 만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우리에게는 예감을 초석으로 인생을 구축할 권리가 있다." - 234 쪽.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 247쪽에 나온 옮긴이의 말 중, 이 책의 작가 필립 베송이 독자들에게 한 말을 읽고 나자, 잠시 잠깐 자족했던 마음이 곧 불안해지고 만다.

그리고 갑자기, 단 몇 시간동안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나와 85호 크레인에서 태양열에 의지해 겨우 핸드폰만 쓸 수 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숱한 밤을 보내고 있는 김진숙 씨를 비교해본다. 그렇다. 나는 <포기의 순간>을 읽기 전에 <소금꽃 나무>를 읽고 있었다.
그이는 유쾌하고 정직하고 재미난 사람 같다. 그런데도 난 그이가 쓴 일기와도 같은 기록들을 보면서, 견뎌내기가 조금 힘들다는 핑계로 일단 책을 치워 놓고 다른 가벼운 짓들을 하다가 오늘은 소설책을 읽었다. 오해하지 말아주시라, 그렇다고 <포기의 순간>이라는 소설책이 <소금꽃 나무>보다 무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의 김진숙을 떠올리다가 의식은 어느덧 김이설 작가의 <환영>을 읽었던 그때로 기어코 돌아간다. 모두가 지독하다고들 했던 그 소설. 하지만 나는 지독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고, 내가 무얼 알겠느냐고, 거기 나온 주인공이 백숙을 파는 곳에서 팔아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어떻게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고, 어떤 경우에는 상투적인 말을 하는 순간 덫에 걸리고 마는 법이다. (마지막 문장은 역시 <포기의 순간>에서 읽었던 문장을 섞은 것이다)

단전을 겪고 김진숙, 편의점 알바를 하고 백숙집에서 일하는 윤영을 떠올리는 나. 치가 떨릴 만큼 가벼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란 인간이 이 정도 주제라고 인정하자. 그리고 관망하기만을 바라는 비겁한 마음. 그러나 인간에게는 누구나 비겁할 권리도 있다.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에서 쓴 '비겁할 권리'라는 말도 <포기의 순간>에서 인용하였다)

책을 다 읽고나니 전기가 다시 들어온다. 핸드폰도 다시 켜졌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철저히 경계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던 내가, 그 몰입을 자발적으로 깨고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하고 집을 나서 영화관으로 간다.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저 작고 소박한 인디음악인의 다큐멘터리 정도로만 알고 갔는데, 막상 보니 전에 티비에서 보고 '에잇, 겉멋 투성이'라면서 채널을 돌렸던 그 그룹의 이야기다. 한 곡이라도 내 마음에 닿았으면 좋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봤지만 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누구든지 짐작하는 그 노래에서 인용, 상투적이다. 그러니 나는 덫에 걸렸다. 지금이 아니지, 이 페이퍼를 시작한 순간부터지,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적는 건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상투적인 글쓰기 아니던가)

집에 돌아오면서 세탁소에 들렀다. 아저씨가 얼른 옷을 찾아주지 못해서 굉장히 미안해하신다. 어눌해서 미안하단 말도 못하지만, 그 마음이 오롯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아저씨가 옷을 이윽고 찾아내고, 환하게 웃으시니까, 그 어떤 책보다, 그 어떤 음악보다 내 마음이 물컹한다. 이 세탁소에 자주 들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저녁에는 친구들이 해물찜을 먹자고 한다. 맛있겠다. 오늘 같은 날씨에 소주까지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인 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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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7-1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 간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토요일 새벽이었는데, 나도 깨어있고 친구도 깨어있고.
친구가 다짜고짜 전화기에 대고 악을 쓰더라구요. 비겁하다고, 저에게 말이죠.
그래서 말했어요. 오냐, 비겁하다, 어쩔래....
<포기의 순간>이 책상에 있는데 제목이 꼭 제 마음 같아요. 그래서 아직 못 읽고 있어요ㅡㅜ

치니 2011-07-13 12:20   좋아요 0 | URL
지난 토요일 새벽에 깨어있지 않기란 힘들었어요. 서울에 앉아 트위터 송신되는 글들만 바라보기도 힘들었어요. 나는 이제껏 얼마나 수없이 많은 경우에 무임승차를 해왔는가, 세어봐야 할 정도로. 변화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무슨 말이라도 거들 자격이 있는가, 비겁할 권리 대신 포기해야 할 자격이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 올라가 있는 김진숙 씨는, 안 온 사람들에게 비겁하다고 악을 쓸 분은 아니란 점. 친구 분도 아실 거에요. ^-^;;ㅠ

chaire 2011-07-1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물찜과 소주, 맛있으셨어요?(맛있었겠다)
'비겁할 권리'에 나도 모르게 끄덕끄덕...(그러면서도 불안하고 미안한 기분은 또 어쩌지 못하고..)

치니 2011-07-13 12:23   좋아요 0 | URL
맛있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음식만이 아니라 이야기도요) 소주 한 잔만 할라다가 어쩌다보니 와인 두 병에 또 다시 소주, 울캴캴캴.
불안하고 미안하고 비겁하고 또 용기를 내고, 이걸 반복하는 것이 삶이 아닌가 - 대개들 다 그렇지 않나,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것과 아닌 것에는 정말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만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즈음입니다.

당고 2011-07-2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친구들과 <소금꽃나무>를 읽고 모임을 가졌죠. 흠흠-
왠지 책 얘기는 별로 안 하고 각자의 고민을 많이 얘기했네요.
<포기의 순간>은 재밌나요?
다락방 님과 웬디 님, 그리고 치니 님의 블로그에서 동시에 보게 되다니......

치니 2011-07-28 13:25   좋아요 0 | URL
<포기의 순간>은 솔직히 제 기대보다는 살짝 아래였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전체가 좋다기 보다는 부분에서 아주 예리하게 공감되는 점이 도드라지는 책 - 저에겐 그렇게 기억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