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라 - 가만, 돌이켜보니 내 생애 단 한번도 세계일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 왜 그랬을까, 여행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는 편인데. 누구나 한번쯤은 꿈 꿔보는 세계일주에 왜 관심 무였을까.
이 책을 읽어보니, 그 답이 저절로 나온다. 내게는 도무지 '목표의식'이란 게 평생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행을 간간이 했지만 어느 여행도 뚜렷한 목표를 지닌 적 없었고, 소위 목표라는 게 생길까봐 오히려 전전긍긍했던 모양.
그런데 이 작가, 세스 스티븐슨의 말을 들어보니 오호라,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쯤은 깊게 고민할 만하기는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내가 가고싶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대신, 그러면서 비행기 이코노미 석을 언제 돈 벌어 탈출하려나 툴툴대는 대신, 발상의 전환이자 새로운 도전에의 의식을 여행의 목표로 삼는 것. 이런 고민이 전혀 없었던 내가, 조금쯤 창피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게을러 터진 나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여행은 못하지 싶다. 단지 비행기 타지 않고 지상의 교통수단으로 세계일주를 해냈다는 만족감을 위해, 뛰고 또 뛰고 많은 시간 지상교통이 제대로 그 임무를 완수해줄지 걱정을 거듭하면서 여행한다는 게, 솔직히 공감되지 않았다.
내가 꿈 꾸는 여행은 어찌 보면 그 반대다. 세계일주를 목표로 처음 집을 나섰다고 해도, 지상의 교통수단만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해도, 여행하다 마음이 바뀌면 바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러니까 세계일주 하겠다고 실컷 경로를 계획했지만 가다가 이름 모를 어느 지역에 홀딱 반하면 남은 시간동안 그냥 거기 눌러 앉아 살아보는 것, 지상의 교통수단만 이용하려고 했는데 막상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화물선을 타고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바로 포기하는 것, 이것이 '일상'이 아니라 '여행'에서만 가능한 '내 멋대로 해보기'지 않겠느냐, 여행에서 그런 내 멋대로 해보기가 없다면 굳이 왜 여행을 하면서 '사서 고생'을 하는가, 뭐 이런 반발심이 들었다.
그러나 책은 나와 여행에 대한 가치가 다른 저자의 기록이긴 해도 '여행을 꿈 꾸는 설레임' 만큼은 충분히 자극적으로 전달한 모양이다. 지난 겨울 무리해서 영국에 간 이후로 당분간 여행 따위는 생각지도 말아야지, 주머니 짤랑이는 돈이라도 잘 지키자, 이랬는데 - 후아, 지금은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리고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최소한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다. 아흑. 로또를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