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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갈비찜을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얼마 전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 딸이 갈비 먹고 싶다고 새벽에 뇌까리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서이다.
그래, 일상이다. 무언가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먹고 함께 먹는 사람의 기쁜 표정을 떠올리는 것.
검색창에 갈비찜이라고 쓰다가 에이, 우선 리뷰를, 마음을 바꿔먹고 글 창을 연다.
지난 밤 새벽 5시에 책장을 덮은 이 책이 결국 또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쟝르라고 해얄지, 굳이 말하자면 추리소설이라고 해얄지, 탐정소설이라고 해얄지 모르겠는 이 책에 일상과 비일상에 대한 멋진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책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현실과 가상현실의 그것도 허물며, 뇌가 할 일과 심장이 할 일에 대한 해석도 이미 아는 것 같은 지식을 허문다. 지상의 난제들을 심상하게 거론하며, 민속학과 괴담 속에 철학을 버무린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사람이던가, 자꾸만 자신을 흘깃거리며 독서를 하게 만든다.
머릿속에 나방이 들어가 날아다니는 느낌을 받으며 우왕좌왕 행간에서 사색하는 사이, 조금 전 읽었던 그 내용이 제대로 '기억'되고 있는지, 아니면 '기억'으로 남을 것인지 재보는 사이, 한걸음 한걸음 사건의 해결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는 고도의 수법을 쓴다.
밤은 깊어지고 나는 희뿌옇게 동이 터오는 미명 속 '수면의 과학'에 빠져들까봐 약간 두렵다.
무의식이 아니라 기억 저 편에 애써 뇌가 숨겨놓은 저장된 이미지가 가상현실인 양 수면 속에서 활개를 칠까봐 두렵다.
나의 뇌는 섬약해지고 갑자기 심인성 기억상실에 빠질 것만 같다.
무엇이 존재한다고 믿거나 믿지 않거나,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도 두렵다.
내 마음을 믿지 못하는 그사람이 바로 나다.
그리고 오후 2시에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고픈 배에 밥을 우겨넣으며, 다시 일상을 찬미한다.
한낱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매우 묵직한 소설이다.
그래도 결국, 읽기 전의 두려움과 읽고난 후의 두려움을 모두 상쇄해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