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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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놀러와>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장기하가 본인의 곡 <별일없이 산다>의 가사가 나온 배경을 들려주었다. 장기하씨 어머님이 언젠가, "너에게 잘 지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잘 지낸다고 표 내지 말아라, 그들이 속으로 진정 듣고 싶어하는 말은 네가 잘 지낸다는 말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 그저 그럭저럭 겨우 산다고 하는 정도로 답해라'고 하셨는데, 가만히 곱씹어보니 정말로! 대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악한) 장기하는 그럼 좋다, '별일없이, 신나게, 인생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걸 더 많이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그들의 불행과 비교해 섣부른 위로나 얻으려는 작자들에게 엿을 먹이는 심정으로 가사를 쓴 모양이다.
나 역시 그런 장기하 심정에 크게 공감하여 처음 앨범을 들었을 때부터 이 노래가 가장 와닿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비롯해 장기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이나 진정한 친구 외에는 주변에 온통 그런 이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며 또 인간 존재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걸 알면서도,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볼 때는 그 반대의 인간상을 그리는데 별로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물론 이의를 달지 않으나 뭔가 좀 심심하고 밋밋하다는 느낌 정도는 가질 게다.)

이 책 <올리브 키터리지>가 남다른 이유는 - 적어도 내게는 - 거기에 있다. 얼핏 보면 미국의 지방,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우리 이웃의 감동적이고 아픈 사연들 정도인 것 같은 각각의 이야기가, 막상 들여다보면 보드라운 담요 안의 라이플 소총 같이 서늘하다.
올리브는 외형상 누구나 무서워하는 여자이고 아들이나 남편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어미이자 아내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겁쟁인데, 더 깊은 그녀의 내면은 (보통 상상하는 것처럼) 사실은 따뜻하기도 하고 이타주의적이기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슬프고 무섭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어떤 끔찍한 사건 이후 25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았던 부부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내 불행을 남의 더 큰 불행으로 누그러 뜨리려는 의도로 속으로 하나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방문하는 큰 결심을 한 그녀에게 돌아온 건, "별일없이 산다"는 이웃으로부터의 차가운 독설 뿐이고, 평생 사랑을 다해 키운 아들이 자신을 버리고 이상한 여자와 결혼하더니 이내 헤어지고 재혼하여 도움을 요청하자 그 불행의 와중에도 (암이나 마찬가지인) 희망의 빛을 수락하였건만 정작 아들에게서 돌아온 것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에 대한 호된 정신분석학적 결론 뿐이다.
하아 -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행동과 변덕스러운 마음, 그리고 어쩌면 신만이 알 수 있는 각각의 인생 앞에 놓인 미래, 그런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맞닥뜨렸을 때 타인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그려보는 이 소설은, 결국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 만큼 이 고단하고 어려운 세상을 헤쳐나갈 방법은 없을 거라는, 조금은 쓸쓸하고도 막막한 결론을 독자에게 조심스레 제안한다. 
개인적으로 미국인 특유의 가족에 대한 애착감(우리의 그것과는 또 좀 다른 의미에서)이 도드라지는 내용에서는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했고, 미국 사회의 편견을 몸소 겪어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섬세하게 즐길만한 내용도 있다는 생각에(유대인이나 아일랜드인이나 무슬림에 대한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한 건 나뿐일까)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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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0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벌써 다 읽으셨어요?
전 이 소설에서 가끔 보여주는 따뜻한 면들이 참 와닿았어요. 내 커피 취향을 아는 던킨도넛 종업원, 이라든가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주면서 이 손을 놓지 않을게, 라고 다짐하는 남자가 나오는 그런 장면들이요.
내가 도망가자면 가겠어? 라고 묻고 그러겠다고 했지만, 결국 도망가지는 않는 그들에 대해서도. 사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상처를 받기도 싫고 상처를 주기도 싫다는.

우리는 누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들을 몇개쯤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치니님.

치니 2010-12-07 14:08   좋아요 0 | URL
ㅇㅇ 다락방님은 그래서 참 따뜻한 분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
나는 자기 커피 취향을 잘 아는 던킨 (필리핀계) 종업원의 고단한 일상에는 전혀 관심 없으면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올리브 아줌마의 지독한 편견이 내 모습 같아서 뜨끔하기만 하던 걸요. ^-^;;

Kir 2010-12-0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읽어봐야 알겠지만 치니님의 리뷰로 짐작건대,
제게는 따뜻하기보다는 서늘하고 따끔한 소설일 것 같군요.
예상과 다른 의외의 한 권이 되겠어요...

치니 2010-12-08 18:35   좋아요 0 | URL
Kircheis님의 감상이 기대 됩니다. :)
읽을 때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묘하게 많이 찔리는 글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