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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우드스탁 - Taking Woodstock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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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에 들어가서 검색해봤다. 제목은 '머리에 꽃을', 보조 검색어는 '들국화' 혹은 '전인권'.
예상대로 역시,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요즘의 미디어 생활이란 늘 이런 식이다. 몇 백년 전 이야기도 검색하고 뒤지면 다 나오는데, 정작 내가 딱 듣고 싶은, 그런 음악은 겨우 몇 년 지났을 뿐인데도 모든 검색어로 다 훑어도 '없'고 그게 이전의 무정보 시대보다 더 큰 실망과 설움(까지)를 준다.
'머리에 꽃을'이라는 노래는 아래와 같은 가사로 당시 들국화의 키보드 주자였던 허성욱이 전인권과 함께 부른 노래다.
형들이 모이면 술마시며 밤새도록
하던 얘기 되풀이해도 싫증이 나질않는데
형들도 듣기만 했다는 먼 얘기도아닌
십여년전에 바로지금 내가살고있는
이지구안에 어떤곳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꽂았다고
거리에 비둘기 날고 (노래 날고)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그건 정말 멋진 애기야
그러나 지금은 지난 얘길뿐이라고
지금은 달라 될수가 없다고 왜 지금은 왜 지금은
난 보고싶은데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내 말이 이 말이다. '지금은 달라 될 수가 없다고 - 왜 지금은 왜 지금은! 난 보고 싶은데 - ' 이런 마음이다. 손가락 몇 개로 전 세계 모든 정보를 쉽사리 얻을 수 있는데 왜 지금은 왜 지금은 - 아아.
(당연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본 적 없어서 근거는 없지만, 이안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번 쯤 해본 게 아닐까. 영화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또는 [색.계]에서 보여준 그 정서는 여전하구나 싶기도 했다. 그 정서 - 보여지는 이미지도, 이상향을 바라보는 서글픈 자아도, 그 서글픔을 홀연히 딛고 담담하게 멋지구리한 이미지 뒤안길의 리얼리티도 다 포용하고 있는 정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음악영화 쟝르에 끼어도 되고 안 끼어도 되는 자유로움을 얻었다. 더불어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히피 문화에 대한 거부감, 죄의식, 패배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만, 당시 히피문화에 대한 막연한 낭만으로 무장하고 재니스 조플린이나 밥딜런 음악을 왕창 때려넣은 음악영화를 기대하고 가신 분들은, 아무래도 조금 실망할 수 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