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와 고래
페테르 내스 감독, 조쉬 하트넷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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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과 같은 큰 소리로 그녀가 웃는다. 시니컬하고 차가운 그 웃음 뒤에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하! 첫눈에 반해버린 그녀가 자신을 조롱하고 배척하는 척 하는데도 그가 그녀를 따라 웃는다. 그 웃음 뒤에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그의 불안이 역시,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불안한데다가 천재들이다. 아니, 적어도 남들보다 똑똑하다. 아니, 똑똑해서 불안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들은 불안한데다가 바보다. 아니, 적어도 남들에게 바보 소리를 들을 거다. 바보라서 불안해졌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불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모짜르트가 되거나 동물인 고래가 되어서야 겨우 약간이나마 잠잠해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랑, 씩이나 하겠다고? 오오, 노우. 영화는 덩달아 걱정이 잔뜩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시작된 사랑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가 떼로 달려들어 말린대도 멈춰지지 않을 것을. 계속 지켜보는 수 밖에.

아니나 다를까, 일인칭으로 살던 이들에게 이인칭의 존재는 그 자체가 부담이다. 폭죽같이 눈이 부시던 소통은 이해보다는 오해 쪽으로 치닫기 십상이고,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도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차라리 죽고 말지.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비정상인들은 그걸 모르는 비정상인들에 비하자면, 조금 더 불행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소위 정신과 같은데서 나누는 정상/비정상의 구분 기준에 따른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분이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지도 가능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이들이 그렇다. 어차피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자신들이 하는 사랑에, 단 1%의 미래도 걸 수 없다. 한 치 앞을 모르는게 인간사라는 점을, 이들보다 수없이 체득한 사람들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체념이다. 그러니 아무리 옆에서 사랑이 곧 미래인 것은 아니지 않겠냐고 말해주어도, 이들에겐 소용 없다. 나 아닌 누군가가 내 삶의 한 부분을 결정해주는 것 만큼은 견딜 수 없다. 이제껏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에 경기가 일어나도 잘 참아왔고 새들과 토끼만이 유일한 말동무여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견뎌왔는데, 사람끼리 조금 눈이 맞았다고 나를 바꾸려 든다고? 안 될 말이다.  

이렇게 아마 안될거야,로 흘러가던 영화가 서둘러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해후 장면을 감동적으로 만들어내고 앞서의 불안요소들이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 해피엔딩을 맺는 것이 내게는 조금 어리둥절한 부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Love is all you need, 그렇게 믿고싶은 우리들을 위무해주려는 최소한의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는 편이 낫겠지,라고 생각하는 무더운 여름의 막바지. 

사족: 영화 디비디를 선물 받으면, 그 선물을 준 상대가 어떤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한 순간도 놓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보느라 전체를 조감하면서 보기가 살짝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서는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는지 꼭 말해주셔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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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1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랑 섹스한 모든 남자들의 공통점은 아침외 되고 나면 그들이 없다는 거야."
"난 아침에 여기 있을거야. 여기 살잖아."


이 부분이었어요, 치니님.

치니 2009-08-17 16:23   좋아요 0 | URL
아, 네...^-^ 그 대사가 나오는 부분에서 안도의 미소가 흘러나왔었는데.
그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