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미쳤다>를 리뷰해주세요.
스타는 미쳤다 - 성격장애와 매력에 대한 정신분석 리포트
보르빈 반델로 지음, 엄양선 옮김 / 지안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고교시절에 알았던 K라는 친구는 참 특이한 친구였다.
전학생이었던 그 애의 첫 데뷔 모습을 묘사하자면, 긴 머리를 양갈래로 나눴는데 그 머리의 끝은 소위 구루프(요즘 말로 하면 고데기?)를 말아서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있고 그걸 묶은 왕방울 구슬은 총천연색, 의상은 공주 삘이었고 치마는 고교생이 입기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만큼 짧은데다가 그 아래 신은 스타킹이나 구두도 반짝반짝하고 컬러풀한 것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외모만으로도 특이하다는 느낌이 충분했다.
엄청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꾸미고 치장한 덕분에 – 그것도 이후 매일 – 항상 가십거리에 올라 있던 그녀는, 당연히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일 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고, 그 친구 역시 그걸 부인한 적 없었다. 아니 부인은 커녕 부추겼다.
그런데 전학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집은 우리 학교가 위치했던 잠실의 연탄을 쓰는 작은 서민 아파트고 부모님은 평범하기 그지 없으며 늘 자랑하던 ‘쫓아다니는 남자애들’의 존재도 한껏 부풀려진 것이라는 걸 온 학교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일관 당당했다. 또한 하나의 거짓말을 하기 위해 필요한 부수적 거짓말을 하루하루 늘려가느라 바빴다. 그녀가 아무리 바빠도 두어달이 지난 뒤 그녀의 말을 믿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거짓말만 했으면 불쌍하다고 하고 말았을 것을, 애꿎은 친구 한 명(H)을 희생양으로 삼아 시기와 질투를 일삼았는데 그 친구는 길에 나서면 바로 하이틴 잡지에서 스카우트를 당하느라 곤욕을 치룰만큼 미모가 뛰어났고 정말로 집도 부유했으나 단지 무척 나이브한 편이라 매번 K에게 당하고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에 상응하는 복수나 치밀한 대응 작전을 짤 수 없었다.
나로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그 둘의 사이에서 카운셀링도 아닌 애매한 들어주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H보다는 K가 불쌍했다. 우는 건 H이고 K는 늘 나에게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웃으며 거짓말을 철철 쏟아내고 있었지만, K의 그 안간힘이 자꾸만 불쌍해지는 것이었고 어린 나로서도 그런 K는 분명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 거였다. 물론 그 정신적 문제는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흔히들 갖다 붙이듯이 가정적 문제가 있겠지 했는데 우연히 가서 뵌 그녀의 어머니는 참 자애롭고 정상적(?)이었으니 더 이상은 당최 모르겠다,로 늘 맺는 결론이었다.

그렇게 저열한 호기심과 어설픈 동정심에 그들을 짦은 기간이나마 친구랍시고 만났던 고교시절은 막을 내리고 나는 그 친구들을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흘러 들은 이야기로 추측하자면 둘 다 아주 능력있는 남편에게 시집을 가서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로 지낸다는 정도만 알고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실은 K를 떠올렸다. 그 당당하고도 아슬아슬해보이던 나르시즘, 어이가 없어도 한편 동정심을 느끼면서 그녀가 더 커서 남자를 찍었다 하면 당할 남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매혹의 씨앗, 도와주고싶어도 도와줄 수 없을만큼 깊을 것 같던 그녀만의 고독과 공허의 아우라, 항상 웃고 떠들고 화려하지만 어쩐지 믿을 수 없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나오는 스타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친구도, 차라리 연예계로 나섰다면 그 모든 것을 발산하고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H에게 한 것과 같은 나쁜 짓을 덜 하고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다른 누구보다도, 스타들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면서 연예계로 나가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꿈을 가진 수많은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읽혀져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도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정신 차리는데 약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가십 잡지의 내용에 의학이나 심리학으로 살짝 옷을 입힌 – 결국에는 그래봐야 가십 잡지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는 – 책일 수 밖에 없다. 읽으면서 심리학자들(심리치유사들)은 어쩌면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의 휘장 아래서 떨어지는 고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되니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이전에 몰랐던 심리학적인 정보를 조금 알게 되기는 하지만 추천할만한 지 모르겠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 " 이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 팬심이 많이 사라지더라, 이 책 역시 스타에 대한 환상을 깨준다는 맥락에선 그 맥락을 같이 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위에 말한대로 헛된 꿈을 쫓는 부나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생각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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