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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
최수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평점 :
무지하고 철이 없던 한 때(이렇게 썼다고 해서 지금은 안 무지하고 철이 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때는 지금보다 그 정도가 더했다는 뜻), 나는 진지한 삶 따위는 나에게 맞지도 않고 그런 식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촌스럽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성찰은 골치가 아팠고 음습한 내면은 들여다보기 싫었으며 진지하게 그런 것들에 대해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가볍게 팔랑이는 사람들보다 더 대책이 없는 부류라고 생각했었다. 문학에 대해서는 그런 식의 어설픈 취향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는데, 잘은 몰라도 문학에 있어서 진정성이라던지 진지함이 결여된 표현을 마주하자면 왠지 작가보다 내가 더 굴욕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게 세태에 대한 한탄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문학을 다른 예술에 비해 우월하게 대하는 것도 내키지는 않는 태도인지라, 역시 나에게 진지함이란 사족일 뿐, 이라고 편의적으로 생각해버렸다. 사는 건 농담 같은 거지 뭘 그러면서. 그런데 조금씩, 내가 매료될 수 있는 진짜 농담은 말 장난에 불과한 유희로써의 농담이 아니라, 기실 대단히 엄격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투철하게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고 수없는 고민 끝에 나온 절제된 표현으로서의 농담, 철딱서니 없는 내 머리를 조용히 숙이게 하는 맛이 있는 그런 농담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인은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음식 하나 없으면서, 입맛만 고급이 된 허영심 많은 주부인 것이다. 최수철의 몽타쥬를 읽으면서 줄곧 머릿속이 묵직했고 시대에 걸맞는(?) 명랑함이나 산뜻한 가벼움은 완전히 배제된 이 책이 불편하지만 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내가 그나마 진지함에 대한 생각을 바꾼 뒤라 가능했을 것이다. 우습지만, 이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니 청춘의 소치라고 우길만한 자신도 없고, 나도 생각 좀 하고 살자 라는 홍상수 영화 속의 김상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