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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 프랑스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이야기
신이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을 읽고나면, 내가 먹는 음식들이 죄다 쓰레기 같아 보이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산과 들판이 코 앞에 있지 않은 비좁은 서울 시내 구석의 다세대 주택 내 집도 한없이 초라해져버리는 것이 여간 곤란한게 아니다.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에 냉장고를 열어도 '유기농'은 커녕, 엄마가 주신 밑반찬이나 김치까지 동이 나 있고, 남은 거라곤 인스턴트 식품들 뿐일 때, 이 문제를 해결할 답은 어쩌면 휙 여행이라도 가야 하는게 아니라 씩씩하게 내가 사는 공간을 다시 아늑하게 꾸미고 내 손으로 좋은 재료가 가득한 장을 봐와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것일진대, 그러지도 못하면서 투덜투덜 입만 나오니 말이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데는, 신이현의 문장은 별 화려한 수사 없이도 그녀가 속한 프랑스라는 복지 시스템이 잘 잡힌 나라의 두 노인네가 시부모로써 살아가는 알자스를 꽤 소박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고, 반면에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이유가 크다.
언뜻 생각하면 나도 우리나라 저 밑에 산자락 밑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는 누군가가 가족으로 있어 따박따박 때마다 놀러간다면 이런 책 한 권 낼 수 있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읽고 있는 중간에나 꿈꿔 보는 허세라는 걸 다 읽고나면 불현듯 깨닫고서 작가의 글솜씨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이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아무데도 나오지 않고, 대신 어떤 이가 장정일이 쓴 아래 시를 올려놓은 것을 읽었더니 장정일 만큼이나 나도 배가 아파온다. 역시, 남 좋은 일에 배 안 아픈 사람 없는 것이구나. 이 작가의 소설은 하나도 안 읽고서 산문집 가지고 이렇게 질투하고 괜시리 미안하니, 다음엔 <숨어 있기 좋은 방>이나 빌려 와 읽어야겠다.
<충남 당진 여자 >
장정일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 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뚝에 안겨 주는 첫딸 이름을
지어 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 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 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 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니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 둘 걸 그랬다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여자 내가 나누어 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 짓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 없다고
후후 웃던 충남 당진여자 어린 시절엔
발전소 근처 동네에 살았다고 깔깔대던 충남당진 여자
그래서일까 꿈속에 나타나는 당진 화력 발전소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여자 얼굴 충남 당진여자 얼굴 그 얼굴같이
둥근 전등 아래 나는 서 있다 후회로 우뚝 섰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 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
충남 당진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경우는 왜 그렇고
1960년산 우리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일까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천지간에 떠돌다가 소문은 어느 날 당진여자 솜털 보송한
귀에도 들어가서 그 당진여자 피식 웃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어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