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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김창완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창완씨.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비 온 뒤 젖은 길바닥처럼 착 가라앉고 그럼에도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워졌던 길바닥을 한순간에 깨끗이 씻어준 빗줄기에 감사하듯 잠시나마 맑아지는 내 마음이 조용히 감동에 차올랐던 기억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그렇게 희망을 준 그는 정작 자타공인 페시미스트란다. 물론 그 앞에는 '천진한'이라는 수사가 붙기는 하지만. 삶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살았던 그의 입술이 휴 하고 한숨을 내뱉듯 읊조린 가사들의 아지랑이는 아직 피어오르는데, 쉰이 넘은 아이 김창완, 그는 이제야 뭔가가 보인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가 보인다고 한 것들은 아무쪼록 삶에 조금이나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페시미스트로서 느껴도 괜찮을만한 '좋은' 무엇이었을 것만 같아서. 이 다행의 느낌은 (언제나 그랬듯) 내 이기심의 발로. 쉰이 넘어서도 '이제야 보이는' , 아니 어쩌면 '이제는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희망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아냈으니 이제껏 가짜 옵티미스트 행세를 해 온 내게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것이다.
누구도 시도 하지 않았던 앞선 음악을 하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능란한 배우 역할을 하면서 이제 왠간한 스타보다 더 바빠 보이는 이 50대 아저씨의 머릿속에 과연 무엇이 들었을까, 모종의 궁금증이 여간해서 풀리지 않았는데 이 책 한권으로 그중 거개가 풀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김창완씨가 말하는 자유, 김창완씨가 말하는 행복, 김창완씨가 말하는 슬픔, 김창완씨가 말하는 그놈의 '희망'이 이전에 자기계발서들 따위에서 말하는 그것과 확실하고도 아름다운 차별을 두고 있다는 점. 그래서 믿음이 가고, 믿음이 생기니까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나도 이 거지 같은 세상 한번 살아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는 점이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이 수시로 오락가락 고단하고, 아직도 십대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갈피를 못잡는 나같은 덜 자란 어른들에게는 이런 희망이야말로 간절하게 갖고 싶은, 언제까지나 듬직한 삶의 지렛대가 아닐까.
문득 얼마전 티비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청춘이라는 곡은 사실 싫어해요. 그런 곡을 만든 것은, 대놓고 상업주의는 하지 않지만 실은 뭐랄까, 이렇게 하면 성공할 거라는 것을 속으로 충분히 계산해놓고 안보이는 상업주의를 한 거죠. 그걸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해요."
그가 이토록 자기 검열을 하더라도, 대놓고든 아니든 상업주의를 했더라도(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음악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예의 그 계산조차 욕심사납게 그만이 가질 수치상 성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중을 광범위하게 행복하게 할만한 무엇을 포함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