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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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우석훈의 전작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는 내 독서 전력에서 미세하나마 충격을 준 걸작이었다. 촘촘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흥분이나 감상 대신 조목조목 따져 주며 현 시점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경제학자 하면 주판알만 굴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문화적 센스가 있는 사람이 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 경제학자에서 생태학자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나보다. 아니 경제학자인데 생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거겠지.
하지만 내게는 전작에서 겪었던 존경스러울만큼의 딱 부러지는 논리가 이번 책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 같다. 저자도 말하듯, 생태라는 게 참 애매하고 불확실한 거라 그런지, 정부가 해 온 일들에 대한 비판도,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청사진도, 우리 국민들이 겪어나갈 좌절스러운 미래에 대한 예측도, 그리고 예술가들이 모두 일어나서 그 미래를 책임지라는 힘겨운 주문도, 모두 어쩐지 살짝 뭉개놓은 판화처럼 명징하지가 않다.
애초 명징함을 기대한다는게 어불성설이기는 한데, 그리고 이런 담론들은 이 책을 시작으로 더 활성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중반 이상부터는 진도가 안나가고 고개가 갸웃해지는지라, 별 셋 밖에 안된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그걸 블로그에 올리고, 그 블로그에 올린 글 모음을 책으로 내는 것이 별반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책은, 정말 잘 쓰는 사람이 써야 그 가치를 발하고, 한 세대에 잠시 소비되는 상업성에서 홀연히 빠져나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유와 정신적 깨우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석훈에게 그걸 바란다는 건,무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 책에서 한번 더 확인하는 셈이다.
오늘 모처럼 강남에 갈 일이 있어, 네모나게 구획해 놓은 길들과 그 안에 빼곡하게 가득찬 아파트, 돌아오는 길에 강변북로를 달리며 바라보게 되는 빌딩들의 아슬아슬함과 우중충함을 실컷 보았다. 저자가 지적한 것과 똑같다.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이걸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신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하루 아침에 싹 낮아졌으면 하는, 무의미한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생협에 가고, 다른 선진국들의 정책을 공부하고, 예술가들이 성명서를 내고, 조직적으로 단체의 힘을 늘려간들, 이렇게까지 몰락한 21세기의 한국의 자화상을 새로 그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포기 하는 마음만 커진다.
이런 책을 돈 주고 사 읽는 나 역시 수도권에서 더이상 생활해야 할 큰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북에서 가장 비싼 구역이라는 홍대에, 다세대주택이라고 이름 붙여진 5층짜리 빌딩에 월세를 산다. 그래도 이 숨막히는 구조에서 벗어나 귀농하거나 변두리로 갈 생각을 하면 괜히 두렵다. 그럴 수 있는 지원을 못해주는 사회라고? 이런 상황에, 지원을 기다리다가 되는 일은 없다. 한 사람 두 사람 실천해나가야만, 그 목소리들이 커져 저절로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올 거다.
그래서 마지막에 아름다움이 기조가 되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우석훈의 절실한 희망은, 덧없어 보이면서 우울과 몽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젖 먹는 힘까지 짜내 희망을 짜내는 날실을 찾아보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겠지, 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일은 참 고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