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올해 1월에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 제목을 이렇게 바꿨다.
<올해 여름 휴가는 프랑스!>
속으로는 10% 정도의 기대만 가지고, 일단 저지르기 위한 첫 걸음을 그렇게 하자, 사람들은 '진짜요? 부럽다, 역시 놀 궁리만 한다'라는 반응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 반응에 힘 입어 언행일치라는 책무감을 일부러 덧 씌우고 기대를 20%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월에는 싸이월드에서 생일 선물로 받은 도토리를 가지고 파리의 에펠탑 그림이 그려진 스킨을 사서 저장해두었다. 출발 시에는 이것을 깔아놓고 가는거야, 라면서 기대치는 40%로 올렸다.
그리고 회사에서 힘겹고 짜증 날 때마다 생각했다.
돈을 모아야 휴가를 가지.
5월에 미국에 가자, 난데없이 한국만큼이나 프랑스가 그리웠다. 그럼 그렇지 애국자라서 미국이 싫은게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프랑스에 갈 것이고, 갔다와서 회사를 그만두어야겠구나.
6월이 되자 내 마음은 한층 바빠졌다. 나름 예약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예전 항공사 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저렴한 티켓이 2달전부터도 좌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켓을 끊으면 40%가 90%로 한꺼번에 뛰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켓을 알아보면서, 책을 세 권 사서 읽었다.
<에펠탑 없는 파리>
작가 신이현씨가 예전에 알자스에 대한 책을 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관광지들만 둘러보고 싶지 않았다. 골목 골목 사람이 살아 숨쉬는 곳에서의 파리를 느끼고 싶었다.
신이현씨가 의도한 것에 딱 맞는 만큼,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함부로 대할 수 없듯이, 가지런히 정좌하고 읽어야 할 것 같은 파리 이야기를 썼다면, 아래 이화열씨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파리지앵>
간결한 제목이 미리 예고하듯, 이화열씨는 게으른 여행자이자 충동적 성향의 감각적인 디자이너 답게, 자신의 주변에서 친해진 지인들의 이야기로 담담하지만 구체적인 파리 이야기를 적고 있다. 어쩌면 파리를 여행하거나 살고 싶어지게 하는 충동을 더 불러 일으키는 쪽은 아무래도 이 책이지 싶은 것도, 이 책을 2시간 여만에 휘리릭 읽고 나면 파리와 자유가 동일시 되는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하거나 궁핍하거나, 본래 파리지엥이거나 외부에서 온 파리지엥이거나, 누구랄 것 없이 모든 것의 우위에서 우선 다양함을 인정하고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은, 유명지 앞에서 사진 촬영하기와 명품 가방과 옷을 현지에서 쇼핑하기 정도의 목적으로만 가는 사람을 빼고는, 아무래도 '자유롭다'는 표현이 다른 어떤 표현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파리를 일주일 보고 어떤 사람은 가 볼 곳은 다 가봤네 하면서 다음 관광지로 쉽게 목적지를 바꾸지만 어떤 사람은 한달을 지내고도 아직 제대로 파리를 못봤으니 다음에 또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내 짧은 휴가는 눈물 겨운 노력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그 일주일이다.
제주도에서 년세(매달 내는 돈이 아니라 매년 내는 돈으로 집을 빌려주는 시스템이 생겼다고 한다)450만원을 내고 1년동안 정원에서 바베큐를 해 먹을 수 있는 주택을 빌릴 수 있다는데, 내 일주일을 위한 경비는 그만큼 될 것 같다.
그래도 내게는 이것이, 진정 정신적인 자유가 아니라 입으로 외치는 구호 뿐이라 할 지라도, 동음이의어 수준이라 할 지라도, '나만의 자유'라고 이름 붙일만한 여행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몇 날을 굶고 기십만원 짜리 공연을 보러 가는 행태를 반복하거나 기백만원을 몇일 여행에 써버리면서 이런 유치하고 소심한 '자유'를 누릴거다.
이제 7월. 비행기표와 숙박지는 구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여정도 미리 짜지 않았고, 무엇무엇을 보겠다는 생각도 없는 지금은 다시 처음처럼 10%이다. 그리고 그때보다 훨씬 설레는 90% 채우기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