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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소설, 맛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나는 '먹기'라는 행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나날이 세상이 발전하는데 왜 알약만 먹고 사는 시대가 오지 않는가, 그 알약이 나오면 내가 제일 먼저 사먹을텐데, 라고 말하는 쪽이었으니.
그러나 요리라는 것에 대해 내가 품은 경외심은 모자라는 식탐과는 별개로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요리 ,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미각 후각 시각 촉각까지도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예술, 그 자체라는 것에 토를 달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먹기 행위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했지만 기실 내 입맛은 그닥 무난하진 못하다. 어쩌면 요리를 좋아하고 남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걸 즐기는 엄마 탓인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아무도 잘 모르던 스끼야끼 같은 음식을 해주거나, 집앞 뜰에 피어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서 꽃을 따 튀김을 해주던 엄마. 하도 유난을 떠는 바람에 음식이 맛이 없어도 있다고 한 적도 있지만, 대개는 그 정성 때문에 꽤 맛이 있었던 편이다. 또 어쩌면 항상 '이 집이 000로는 제일 맛있는 집이야'라는 말을 해가면서 맛집을 섭렵해내는 아빠 탓일 수도 있다. 그런 식당에 가서 주방장을 장악하여 최상의 부위로 만든 음식을 단독으로 받기 위해 아빠가 치밀하게 준비하는 지략은 어린 나에게도 인상적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항상 각별한 정성이 들어간데다 맛이 꽤 있던 음식을 먹고 자라난 내 위는 넓지는 못해도 예민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부모 때문에 나는 '먹기'에 관심이 없어져갔다. 유난을 떨어대는 모습에 지레 질려 버린 것이기도 하고, 그런 걸 가지고 우월함을 내세우지만 실상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층이었던 우리 가족이 우습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배가 고프면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 식당에 가서 맛이 없으면 금세 숟가락을 놓는 편이고 왠만한 식당에서는 김치를 입에 댄 적이 없다. 게다가 지저분하거나 서비스가 나빠도 그 식당에 다시는 가지 않을거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매우 불쾌한 기분이 오래 가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먹기'행위에 관심이 없는 것이지, 맛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때마침 이 책이 걸려들어왔다. 지난번 읽은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토대로 이 작가의 처녀작인 이 자그마한 요리 소설이 만만치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맛'의 철학을 탐유하고 싶었다.
과연, 현란하고 사색적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현란함과 사색이 진정한 맛스러움의 완결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 책 속 주인공인 요리비평가가 죽음에 다가갈 때 가장 그리워하던 맛은, 시골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소박한 식탁, 요리에 어우러지던 평화로운 잡담, 그 자체였다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맛을 내기 위한 맛에 만족하지 못하는, 끝없는 욕망의 노예일 밖에.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의 행복감은 그 어떤 사람과의 교감보다 더 특별하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 주의하라, 식도락들이여, 당신들은 가끔 그 맛 하나 때문에 일생을 낭비했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누가 당신들을 말리리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 :) 그리고 나는 식도락들 주변에 있는 것이 좋다.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안해도 되니까.
사족: 데뷔작이라는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확실히 '고슴도치의 우아함'에 비해 어설프고 짜임새가 없다.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겠으나 유연하게 표현이 되지 않아 읽는 내가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고 할까. 그럼에도 이미 이 책에서 나중에 발현될 매력은 충분히 잠재하고 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현재는 일본에서 책을 쓰려고 한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부디, 사이비 종교인 같은 냄새가 나진 않기를 (왠지 그런 우려가 드는 건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