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시마 유코 소설집
쓰시마 유코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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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같은 평범한 독자는,  쓰시마 유코가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사고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온전히 그녀만의 글로 읽지를 못한다.

미안합니다, 쓰시마 유코씨.

다자이 오사무가 일찌기 죽어 버렸고, 가정 생활에 충실하지도 않았기에, 어쩌면 쓰시마 유코는 그런 유명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 때문에 휘황보다는 그늘만 가득한 나날을 보내왔을 지도 모르는데, 나같은 속물스럽고 뻔뻔한 독자는 그래도 그 둘의 연결을 보란듯이 끊고 둘의 작품성이나 필력을 비교하지 않기 힘들다.

이러나저러나, 정말 신물이 날 거다, 나라면. 이렇게 해도 비교 당하고 저렇게 해도 비교 당할 수 밖에 없음을. 그럼에도 작가가 된 것을 보면, 그리고 당당하게 자리매김한 것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괜한 응원도 하게 된다.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라는 꼬리표를 떼고 나면, 짧거나 조금 긴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작품집 하나만 가지고, 이 작가에 대해 섣불리 재단하기 참 애매한 기분이 된다.

그녀가 서문에서 밝히는 '나'에 대한 의미, 그리고 서사와 민담을 아우르는 이야기 엮기 등은 좀 지루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반면, 중반 이후에 나온 '죽음'과 '죽음'에 대한 리얼리티와 작가적 감수성은 유독 돋보이니 말이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보다, 독자가 보았을 때 더 잘하는 이야기가 있는 듯한 그런 기분.

열심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냐 넌 그거 말고 이거 이야기 해야 재미있어, 라고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해야만 할 거 같은 기분.

'죽음'을 소재로 다룬 모든 이야기가 그랬다. 죽음을 지켜보는 주변인, 즉 살아 있는 자로써 느끼는 감정 뿐 아니라 죽음을 직접 겪어내는 그 당사자의 마음까지, 그리고 윤회성까지. 그저 담담히 풀어내는 묘사인데도 마음을 솔깃하게 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계속 '죽음'만 가지고 이야기를 써대라, 이건 정말 너무한 주문일게다. 하지만 이 단편집 내에서만 보자면, 아직 소재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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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02-2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책은 표지가 참 예뻐요. 그래서 저도 읽을까 말까 몇 번이나 손에 잡았다 놓았다 했지요. 그런데.... "나"에 대한 이야기는, 네꼬 씨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벅차다, 하는 뻔하고 편리한 이유로 깨끗이 포기하였는데 ^^ 히히. 치니님 리뷰 읽으니까 응, 꼭 읽진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역시나 뻔하고 편리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게 되어요. (^^)

치니 2008-02-27 10:04   좋아요 0 | URL
에헤 네꼬님, 사실 강추하는 리뷰는 아니죠?
나중에 네꼬님이 다른 곳에서 이 분의 글을 읽고 이 책이 땡기면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제가 당장 이 책을 보내드릴게요.
(아시다시피 책을 오래 오래 보관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파고세운닥나무 2009-08-0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번역된 <불의 산>(문학과지성사)에서도 작가는 죽음에 대해 얘기하던데요. 하지만 '소재의 한계'를 말하는 건 좀 그런데요. <불의 산>이 한 가족을 얘기하지만 일본 근현대사를 일별하고, 근대성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거든요. '치니'님이 읽어보셨는데, 사족을 다는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에 이 작가에 관심을 가져보는데, 윤상인 교수가 <나>에 대해 꽤 좋은 평가를 하더라구요. 좋은 감상 잘 보고 갑니다~

치니 2009-08-04 17:4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불의 산>이 나왔다는 소식은 몰랐습니다.
리뷰를 쓴 지가 오래 되어서 이 작가를 잊고 있었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환기가 되었습니다. ^-^ 저도 기회가 될 때 읽어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