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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사랑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승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목차는 어림잡아 스무 개 가량 되었던 거 같은데,
일반적인 목차와는 달리 그냥 인물의 이름으로 총 5개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1. 조나단
2. 바비
3. 앨리스
4. 클레어
5. 에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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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지막 목차 하나를 슬쩍 추가해 본다.
그 목차의 이름은 다름 아닌 치니.
다른 목차들의 내용이 그랬듯이, 나도 순전히 내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심정, 관계의 진행상태, 애증의 지수, 친밀감의 지수, 그리고 나에 대한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마구 쓸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에 빠지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 커닝햄은 사실을 조금 기반으로 했더라도 순수 소설을 썼고, 나는 단상을 적는 수준에서 그쳐야 할 거다.
우선, 조나단에 대해.
내게는 조나단이 바비보다 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것 같아 보인다. 바비에겐 적어도 나름의 자유가 타의든 자의든 주어진 시점이 있었는데, 조나단은 끝내 그걸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더 아프냐, 같이 살아가면서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더 아프냐, 라고 질문했을 때 쉽게 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만을 놓고 바라봤을 때 조나단이 더 안돼 보인다는 거고, 안돼 보일 망정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는 아닌 것 또한 내 경험치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바비는 겉으로야 조나단보다 더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일는지 몰라도 내게는 매력적이다.
특히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가 대응하는 방식이 좋다. 아니, 더 뚜렷하게 말하자면, 아무런 대책을 세우거나 하지 않고 대응 방식이랄 것도 없는, 그런 무연함이 좋다. 남들과의 소통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의 음악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순수함도 좋다. 이런 게 다 좋은 것은, 내가 조나단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를 고르라고 하면 클레어, 앨리스, 에릭 중의 누구를 뽑아야 할 지 난감할 정도로 셋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셋 중 클레어와 앨리스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았지만, 에릭의 경우엔 사실 가늠조차 안된다. 그렇다고 에릭을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자니, 다른 캐릭터에 비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인물이라, 캥긴다. 작가도 이 인물을 전면에 내세울 의도는 없었지 싶다. 조나단의 성 정체성과 바비에 대한 사랑, 소통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까.
그래서 클레어냐 앨리스냐로 남는 비호감 군단. 막상 막하이지만, 앨리스가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고 지낼 수 있는 성격이지만 클레어는 만나는 순간 호감이냐 비호감이냐 정해야 하는 과격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클레어를 꼽아야겠다.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무조건 착한 사람이 좋기 때문에 못된 성격을 보고도 무난히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극도의 개인주의나 제멋대로인 점 까지는 받아줄 수 있지만, 자신의 신경질이나 변덕은 합리화 하면서 남이 그런 것은 그냥 지나가주는 법이 없는 부분이 싫다. (하기사 제멋대로인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 게다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조절하는 버릇으로 자신 뿐 아니라 남까지 힘들게 만드는 바보 같은 데도 있다. 조나단이나 바비에게 엄마처럼 굴고 있음에 스스로를 질책하고, 실제 엄마가 되어서도 평범한 엄마상과 특별한 엄마상을 놓고 저울질하며 정작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 하는 것 같지 않는 부분에서, 사실 질렸다.
앨리스는 싫다기보다는 답답하고, 특히 조나단과 소통하려는 노력에 실패하는 부분에서 나를 두렵게 한다. 아이가 이제 14살이나 된 만큼, 앞으로 나도 친구 같은 엄마 따위는 빨리 포기하고, 정말 “보고 싶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앨리스로 인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조나단, 바비, 클레어가 나누는 사랑과 가족의 형태.
단순하게 말하자면 부럽기도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골 때리는 부분이 꽤 된다.
이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쌔빠지게 노력해야 한다면, 단 한 사람과 하기만도 벅찰텐데 둘이라니, 게다가 아기라니, 너무 욕심 사나워 보인다. 즉 내게는 둘이서 나누는 사랑으로 실현해 보고자 하는 것이 있을 뿐이란 거다. 운명이 누구 하나를 더 들여놓는다 해도, 과감히 사양하고 싶다.
어려서는 나도 <글루미 선데이> 같은 영화를 보면서, 매우 멋지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늙었거나 철이 들었거나 둘 중의 하나는 되었나 보다.
아무튼 심플 초이스. 그게 내 수준에 맞는다는 걸 이제 안 거다.
그리고 예전이랑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그건 집에 대한 로망이다. 예전 같았으면 조나단과 클레어가 살던 뉴욕의 한 스튜디오를 택했을 게 뻔한데, 지금은 거미가 나오고 지붕이 폭삭할 것 같고 자연으로 둘러 싸인, 저녁이면 밥 먹고 티비 보다 자는 것 외에 할 일도 딱히 없는, 그런 외진 세상 끝의 집이 좋다.
바비처럼 나는, 어디 가고 싶은 곳도 딱히 없이 늘 집에서 지내면서, 같은 장소를 반복 오가면서 같은 일을 매일 하는, 그런 흑백 모노톤의 일상이 너무 그립다.
영화로도 나왔다고 해서 <디 아워즈>를 봤을 때의 감동을 떠올리며 누에님이 예전에 올려주신 뮤직비디오를 틀어 봤는데, 남자 배우 둘 다 별루 삘이 안 온다. 그래도 어디선가 찾아낸다면 꼭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