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나처럼 다자이 씨도 소소한 일상이 있다.
나처럼 다자이 씨도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찌 이리도 무디게 일상을 살아가고
그는 어찌 그리 섬약하게 살아가는걸까.

이유는 하나.
그는 예술가이고 나는 범인 凡人이다.

그런 면에서 다자이가 좋다.
스스로 작가라고,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보면,
풀잎 하나에도 소스라치게 마음을 저미는 그런 감수성과
깨알만한 가식 하나라도 몸에 걸쳐 있지는 않은가를 되돌아보는 자책의 흔적이 없어뵈는 경우가 많아서,
전후 일본의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시류에 끝내 영합하지 못하고
5번의 시도 끝에 자살을 해버린… 그런 다자이가 좋다.

그게 무슨 나약한 짓이냐고, 그게 무슨 어리광이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수한 악 때문에 유독 괴로운 사람이 있고
그들이 그 고독 속에서 내뿜은 예술의 혼으로 덕을 보는 사람이 있을지니.
적어도 그의 작품들로 소설 읽기의 참신한 재미를 느낀 나 같은 사람은 덕을 본 셈이고,
덕을 보았기 때문에 그의 소소한 일상이 좀 지나치게 예민하다 하드라도,
거기에 불만을 품기는커녕 고마워할 수 밖에 없다.

하긴,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속 터지는 나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겠다. 어쩌다가 글을 써서 약간의 돈이라도 생길라치면, 냅다 뛰쳐나가서 몇일 밤이고 술을 먹고 오는데 써버리니...
그 아내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같이 살 남자로 다자이 씨를 상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게 빤한 주제에
작가로서의 그에게는 이렇게 매력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때문에 다자이보다 더한 상처를 받는데도
오로지 무디다는 이유로 참아낸 것일수도 있다.
이렇게 적어가다보니, 예술가 만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네 소소한 일상도 중요하기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ㅋ 당연한 소리를 왜 이리 주절주절 거리는지,
날이 더워 이러구 있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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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7-06-22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재밌슴다. 리뷰 말임다. (음.. 치니 님의 투덜거림 같기도 하고. ㅋㅋ)
아, 이 책, 몹시 읽고 싶어요. 근데 안 읽은 책이 쌓여서 책 사기가 겁나요.

2007-06-2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7-06-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aire / 산문집이라서 시간이 많이 필요한 책은 아닌데, 읽다가 곰곰이 생각에라도 빠질라 치면 좀 걸리기도 하죠. 제가 좀 투덜거리죠? ㅋㅋ

비밀글 15:15 / 저야말로 몰래 쓰느라고 스릴 만점이었습니다. 으흑.

nada 2007-06-2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걍 일상이 so so하기만 해도 감지덕지하는 거 같아요.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살려구여.. 섬약함은 다자이에게 다 줘버리고 싶어요. 다자이, 미안..^^

이게다예요 2007-06-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잎 하나에도 소스라치면 저같은 범인들은 아주 죽습니다. 그냥 무던하니 길게 가죠. ㅋ

치니 2007-06-2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 /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큰 사고만 안 쳐도 감사한 나날이죠. ^-^
그런데...꽃양배추님, 다자이에게 다 주지는 않은 섬약함이 몰래 숨어 있는 타입일거 같기도 해요. ㅋㅋ

이게 다예요 / 10여년전까지만 해도, 서른이 넘으면 생은 아무 때나 마감해도 될 줄 알았습니다. (진짜에요!) 서른이 넘고도 한참 넘은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하질 않고 하루 하루를 그저 살아가네요. 이렇게 무던해진 데에 새삼 놀라면서. ^-^;;

로드무비 2007-06-2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절대 미워할 수 없어요. 이상한(!) 차원의 위로와 힘을 주거든요. 리뷰 무지 재밌습니다.^^

치니 2007-06-2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 그러게요,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존재죠. 마음이 힙겹고 쳐질 때 이 사람 책이 읽고 싶어지는 건, 그 이상한 차원의 위로와 힘 때문이었겠네요. ^-^ 안그래도 이 책의 리뷰를 로드무비님 서재에서 보고 찜 했다가 읽었답니다. 뒤늦게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