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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죽는다
마르셀라 이아쿱 지음, 홍은주 옮김 / 세계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정말 얇은 책이 왔네."
첫 인상은 쉬웠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도발적 제목을 한 섹시한 '여인'의 분위기를 풍겼다. 금새 읽어버리고 말것이라는 호언장담과는 달리 이 '여인' 아주 강적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만만한 여인네가 아님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심리학적인 책의 전개는 엽기적인 에피소드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분석적이고 철학적이다. 그것도 모두 기존에 알려진 '사랑'의 진리에 대한 철학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어서 그것에 길들여져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철학에 빠져들기가 어려웠다.
가장 각박하고 삭막하다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사랑' 이상의 모토는 없다. 그 외의 것들은 이미 세속에 물들대로 물들어버려서 인간적인 것을 기대하다가는 발등을 수만번 찍힐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이제는 사랑도 점점 '배신, 이혼, 이상 성욕, 외모지상주의' 등의 소스들과 뒤섞여서 더 이상 순수한 옛날의 그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다며 이건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한 처음과는 달리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 소설의 주제가 성큼성큼 머리와 가슴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사랑마저도 자본주의적이 되어가는 지금, 어쩌면 이 책은 우리에게 사랑도 찌들어버렸다는 비난과 함께 그래도 사랑은 아직 순수하다는 희망 또한 남겨준다.
이상성욕을 가지고 사랑을 무기로 상대방을 구속하고, 정신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나아가서 육체적, 사회적, 감정적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이른바 '흡혈귀'들은 마치 인간의 갓 뽑아낸 피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처럼 '희생양(혹은 먹이)' 없이는 살 수 없고, 그 희생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늘 '사랑하니까 널 놓아줄 수 없어.'라거나, '사랑하니까 이런 아픔은 견딜 수 있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에 칼을 박아 넣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줄곧 '사랑하면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는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사랑만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이런 큰 힘을 가진 이른바 '사랑의 면죄부'를 무기로 흡혈귀들은 늘 먹이를 찾는다. 어떤 극악한 흡혈귀는 '넌 죽어도 싸!'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곧이 곧대로 '난 죽어야 해.'라고 받아들인 먹이들은 자살시도를 하고 재수없게 살아남아서 불구가 되고 가족, 일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결코 상대방 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이렇게 되도 싸.'라고 상대를 두둔하는 것이다.
난 왜 이런 것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지 정말 의아했다. 사람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뒤집어 살펴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그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정말 신선한 각도의 시선 아닌가??
사랑도 죄가 되고, 사랑도 무기가 되고, 사랑도 자본주의적으로 부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많이 가진자가 적게 가진자보다 우위에 있고,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온전치 못한 사랑은 온전치 못한 자본주의와 꼭 닮아있다.
이 책이 나오고 평이 두갈래로 나뉘었다고 한다. 하나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못한 사랑에 관한 터부를 속 시원하게 밝혀준 것에 대한 찬사였고 다른 하나는 '넌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봤으니까 그런 책을 쓴게 아니냐'는 비난의 화살이었다.
나의 느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의 난해함을 딛고 무서운 속도로 빠져들어 읽는 동안은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는 놀라움과 '이건 전부 온전치 못한 사랑의 예들 뿐이잖아.' 라는 실망감이었다.
이 책은 픽션이다. 그렇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설정을 두손 놓고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너무 진짜 같아서 정말로 두 손 놓고 읽을 수는 없는 책이기도 하다. 때로는 눈사이를 찌푸리면서 고뇌해보고, 때로는 멍청한 사랑놀음에 놀아난 먹이의 꼴에 놀라 자빠지기도 하면서 자칫 작가가 의도한대로 진짜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가 쓴 논문이 아닌가 하고 홀딱 넘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터프한 남자와 순결하고 얌전한 여자'에서 '예쁜남자 신드롬, 감성적인 남자, 화장하는 남자와 독한 여자, 강한 여자,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스런 여자'로의 남녀선호의 변천사에 우리는 서 있다. 이 것이 그저 한 때의 트렌드로 보이는가? 세상이 점점 여성적으로 변하고, 여성적인 사회가 될 수록 묘하게도 여자가 아닌 사람도 여성적으로 물든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래서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참지 않는 남자가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연속극은 여자만이 아닌 남자도 동참하여 즐기게 된다.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감수성을 자극하여 '사랑이 우리의 전부!'라고 선동하고, 여자와 여자가 된 남자는 '그래그래'하며 사랑신드롬에 물든다. 그것이 달콤한 독약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랑을 제도적으로 묶어두어야만 이 책이 주장하는 '사랑을 이용한 범죄'가 없어질까? 혼인빙자 사기, 실연 후의 자살, 사랑의 결과로 인한 개인의 피폐는 적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성적일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감성적인 사랑마저도 계산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한다고 해서 과연 세상 살기가 훨씬 좋아질까 의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부질없는 걱정일 뿐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사랑은 언제까지고 조금은 이해불가능하고 계산도 할 수 없고, 뭐에 홀린 듯이 지극히 감성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주체가 결국 완전치 못한 인간이기에 말이다.
그래,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쌍방과실'인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럼에도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은 쓰레기다,라고 울부짖는 그대라면 지금 이 책을 읽도록 권한다.
[오늘날 프랑스의 연간 낙태율이 그렇게 높은 것은 고용 조건의 불안정으로 직업만 변동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불안정해지는 탓은 아닌지 자문할 수 있다. 낙태된 태아는 이 시장 원리를 사랑에 적용함으로써 발생한 희생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낙태를 하는 여성은 없기 대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상대 남성과의 관계가 불안정한 탓으로 낙태할 수밖에 없지만 실은 그 아이들을 낳고 싶어한다. (15)]
[하지만 사랑의 탈을 쓴 이상성욕증은 특히 정치적 질병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생활 주변에서 맴도는 새로운 이론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준을 잃게끔, 나아가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유를 얻는다고 믿게끔 만든다.(20)]
[그로써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법률이 바뀌지 않는 한 억압적 사랑은 제아무리 뛰어난 정신치료 전문의도 어쩔 수 없는 난치병으로 남으리란 것을. 사회 전체가 <당신 탓>이고 <그게 당신 운명>이라 몰아세우는 사람을 진료실 소파에 앉혀놓고 정신치료 전문의가 혼자 그 죄의식을 없애주기는 불가능하다. (42)]
[일찍이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아가페, 필리아, 그리고 에로스라는 세 개념으로 구별했다. 아가페와 필리아가 우정처럼 이해 관계를 떠난 관대한 사랑도 뜻하는 데 반해 오직 에로스만이 오늘날 우리들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에 따르면 에로스는 상대방 없이는 못 견디는 사랑, 상대방을 잡아먹는 사랑, 미친 사랑, 절대적 사랑, 사람들을 광란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는 사랑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모든 걸 잊고, 거칠고 황량한 이 세상을 벗어나 새 관계를 맺으며, 그로써 그간의 실패를 만회하고 나아가 영혼을 송두리째 내주는 것이다. 이 사랑은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해 왔고 누구든지 그것을 체험하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 도피나 망각을 위한 다른 수단들이 금지됐거나 평판이 나쁜 데 반해 사랑은 관대한 처우를 받는다. 사람들은 사랑을 보편화하는 동시에 고귀한 것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44)]
[사랑은 복슬개가 뛰어다니는 범위의 독재이다. (46)]
[이 시대 사랑의 지옥은 수십 년 전부터 여성이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받은 존재였는데 그네들이 쥔 자본이라고는 가족, 사랑, 그리고 감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현 실정과는 완전히 다른 여성 해방이 올 거라고들 생각했다. 앞으로는 여성들이 사랑에 한결 초연해질 거라고, 노예나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의 중심에서 사랑을 내몰 것이라고, 그로써 여성들에게도 새 길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들 믿었다.
나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착실한 지식인들은 여성 해방의 여파를 두려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바야흐로 남녀의 구별도 없어지고, 뭐든지 다기능화할 것이며, 안심하고 아이들 교육을 맡길 여자들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여자들은 사라지고 씩씩하고 당찬 여자들이 대거 등장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자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의 엄마와 할머니 세대가 열광했던 감상적 소설과 황당한 연속극의 제국을 허물어뜨리기는커녕 전 시민의 영혼 속에 멋지게 이식했다. 그러자 소설과 연속극의 가지관과 믿음이 모두에게 침투했다. 우리가 걱정한 것처럼 여자들이 남자들로 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여자들로 변한 것이다. (63)]
[따라서 거듭되는 논쟁과 성찰 끝에 우리는 커플 사이의 심리적 폭력을 기본으로 한 범죄의 형량을 사이비 신흥 종파의 교주에 의한 심리적 억압에 대한 형량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에서 징역 10년으로 바꾸는 한편 그 같은 범죄를 앞으로 <억압적 사랑>이라 규정하기로 했다. 형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범죄를 중죄 재판소에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판에 대중과 언론이 출석함으로써 교육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7)]
책 속의 단어 알기_자메 교수의 주장
*흡혈귀 : 보통 이상성욕자라 불리는 사람들로 '사랑'을 빌미로 상대방을 구속하고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알며 상대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고통도 (죽음까지도) 나몰라라 하는 뻔뻔함을 가진 무서운 기생충들. 필히 제도적으로 팔찌를 채우던가 칩을 박던가 하여 법으로 단속해야 함.
*먹이 : 흡혈귀가 가해자라면 먹이는 이들의 피해자.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이 받는 고통들도 자신이 못나서 생긴거라고 여긴다. 놀랍게도 이들은 본인들이 받았던 가학적 이상성욕의 결과들을 고스란히 또 다른 먹이에게 들어내어 제 2의 흡혈귀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