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ssions of a Shopaholic (Mass Market Paperback)
소피 킨셀라 지음 / Dell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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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부터 짬짬이 읽어서 오늘 겨우 완독했다. 사 놓은 원서는 몇 권 되는데 그 중에 처음 구입해서 처음으로 완독 한 원서이기에 매우 뜻깊다:)

엉뚱하고 매력있고 럭키한 레베카의 이야기는 많은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다만 보통의 한국인이 읽기에는 책 속에 등장하는 명품의 종류를 보고 '아악! 이거 사서 정말 좋겠다~ 나도 이거 알아~'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쇼핑욕에 부채질 당하는 재미는 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쇼퍼홀릭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레베카 정도의 쇼핑중독자는 아니기에 '이 여자 미친거 아니야?' 라고 버럭 화를 낸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 여자는 운도 억시게 좋아서 나 같았으면 당장 쇠고랑을 차던가 집에서 흠씬 맞고 쫓겨날 상황임에도 너무 발랄하게(?) 살아간다. 마지막엔 책의 표지처럼 핑크빛 사랑까지.(사실 레베카의 쇼핑리스트보다 Luke 때문에 책 읽는 진도가 더 빨랐는지도 모르겠다 큭큭)

모르는 단어도 많았고, slang도 종종 나와서 읽기 어려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 영어 공부에도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읽으면서 밑줄쳐 두었던 중요 표현들과 모르는 단어들을 돌이켜서 살펴보면 나의 영어실력 발전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페이퍼백만이 가질 수 있는 그립감과 오래되면 묻어나는 종이 냄새도 매력적이다.

쇼퍼홀릭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시절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을 어느새 완독해버렸다. 나머지 시리즈도 읽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읽으려고 구입 한 '시간여행자의 아내' 원서를 내일부터 시작한다. 또 몇년이고 짬짬이 읽어낼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원서읽기는 두려운 과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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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죽는다
마르셀라 이아쿱 지음, 홍은주 옮김 / 세계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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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얇은 책이 왔네."
첫 인상은 쉬웠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도발적 제목을 한 섹시한 '여인'의 분위기를 풍겼다. 금새 읽어버리고 말것이라는 호언장담과는 달리 이 '여인' 아주 강적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만만한 여인네가 아님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심리학적인 책의 전개는 엽기적인 에피소드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분석적이고 철학적이다. 그것도 모두 기존에 알려진 '사랑'의 진리에 대한 철학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어서 그것에 길들여져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철학에 빠져들기가 어려웠다.

 가장 각박하고 삭막하다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사랑' 이상의 모토는 없다. 그 외의 것들은 이미 세속에 물들대로 물들어버려서 인간적인 것을 기대하다가는 발등을 수만번 찍힐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이제는 사랑도 점점 '배신, 이혼, 이상 성욕, 외모지상주의' 등의 소스들과 뒤섞여서 더 이상 순수한 옛날의 그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다며 이건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한 처음과는 달리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 소설의 주제가 성큼성큼 머리와 가슴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사랑마저도 자본주의적이 되어가는 지금, 어쩌면 이 책은 우리에게 사랑도 찌들어버렸다는 비난과 함께 그래도 사랑은 아직 순수하다는 희망 또한 남겨준다. 

 이상성욕을 가지고 사랑을 무기로 상대방을 구속하고, 정신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나아가서 육체적, 사회적, 감정적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이른바 '흡혈귀'들은 마치 인간의 갓 뽑아낸 피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처럼 '희생양(혹은 먹이)' 없이는 살 수 없고, 그 희생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늘 '사랑하니까 널 놓아줄 수 없어.'라거나, '사랑하니까 이런 아픔은 견딜 수 있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에 칼을 박아 넣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줄곧 '사랑하면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는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사랑만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이런 큰 힘을 가진 이른바 '사랑의 면죄부'를 무기로 흡혈귀들은 늘 먹이를 찾는다. 어떤 극악한 흡혈귀는 '넌 죽어도 싸!'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곧이 곧대로 '난 죽어야 해.'라고 받아들인 먹이들은 자살시도를 하고 재수없게 살아남아서 불구가 되고 가족, 일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결코 상대방 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이렇게 되도 싸.'라고 상대를 두둔하는 것이다.
난 왜 이런 것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지 정말 의아했다. 사람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뒤집어 살펴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그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정말 신선한 각도의 시선 아닌가??

 사랑도 죄가 되고, 사랑도 무기가 되고, 사랑도 자본주의적으로 부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많이 가진자가 적게 가진자보다 우위에 있고,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온전치 못한 사랑은 온전치 못한 자본주의와 꼭 닮아있다.

 이 책이 나오고 평이 두갈래로 나뉘었다고 한다. 하나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못한 사랑에 관한 터부를 속 시원하게 밝혀준 것에 대한 찬사였고 다른 하나는 '넌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봤으니까 그런 책을 쓴게 아니냐'는 비난의 화살이었다.
나의 느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의 난해함을 딛고 무서운 속도로 빠져들어 읽는 동안은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는 놀라움과 '이건 전부 온전치 못한 사랑의 예들 뿐이잖아.' 라는 실망감이었다. 

 이 책은 픽션이다. 그렇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설정을 두손 놓고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너무 진짜 같아서 정말로 두 손 놓고 읽을 수는 없는 책이기도 하다. 때로는 눈사이를 찌푸리면서 고뇌해보고, 때로는 멍청한 사랑놀음에 놀아난 먹이의 꼴에 놀라 자빠지기도 하면서 자칫 작가가 의도한대로 진짜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가 쓴 논문이 아닌가 하고 홀딱 넘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터프한 남자와 순결하고 얌전한 여자'에서 '예쁜남자 신드롬, 감성적인 남자, 화장하는 남자와 독한 여자, 강한 여자,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스런 여자'로의 남녀선호의 변천사에 우리는 서 있다. 이 것이 그저 한 때의 트렌드로 보이는가? 세상이 점점 여성적으로 변하고, 여성적인 사회가 될 수록 묘하게도 여자가 아닌 사람도 여성적으로 물든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래서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참지 않는 남자가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연속극은 여자만이 아닌 남자도 동참하여 즐기게 된다.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감수성을 자극하여 '사랑이 우리의 전부!'라고 선동하고, 여자와 여자가 된 남자는 '그래그래'하며 사랑신드롬에 물든다. 그것이 달콤한 독약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랑을 제도적으로 묶어두어야만 이 책이 주장하는 '사랑을 이용한 범죄'가 없어질까? 혼인빙자 사기, 실연 후의 자살, 사랑의 결과로 인한 개인의 피폐는 적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성적일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감성적인 사랑마저도 계산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한다고 해서 과연 세상 살기가 훨씬 좋아질까 의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부질없는 걱정일 뿐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사랑은 언제까지고 조금은 이해불가능하고 계산도 할 수 없고, 뭐에 홀린 듯이 지극히 감성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주체가 결국 완전치 못한 인간이기에 말이다.

 그래,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쌍방과실'인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럼에도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은 쓰레기다,라고 울부짖는 그대라면 지금 이 책을 읽도록 권한다.

 

[오늘날 프랑스의 연간 낙태율이 그렇게 높은 것은 고용 조건의 불안정으로 직업만 변동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불안정해지는 탓은 아닌지 자문할 수 있다. 낙태된 태아는 이 시장 원리를 사랑에 적용함으로써 발생한 희생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낙태를 하는 여성은 없기 대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상대 남성과의 관계가 불안정한 탓으로 낙태할 수밖에 없지만 실은 그 아이들을 낳고 싶어한다. (15)]

[하지만 사랑의 탈을 쓴 이상성욕증은 특히 정치적 질병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생활 주변에서 맴도는 새로운 이론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준을 잃게끔, 나아가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유를 얻는다고 믿게끔 만든다.(20)]

[그로써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법률이 바뀌지 않는 한 억압적 사랑은 제아무리 뛰어난 정신치료 전문의도 어쩔 수 없는 난치병으로 남으리란 것을. 사회 전체가 <당신 탓>이고 <그게 당신 운명>이라 몰아세우는 사람을 진료실 소파에 앉혀놓고 정신치료 전문의가 혼자 그 죄의식을 없애주기는 불가능하다. (42)]

[일찍이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아가페, 필리아, 그리고 에로스라는 세 개념으로 구별했다. 아가페와 필리아가 우정처럼 이해 관계를 떠난 관대한 사랑도 뜻하는 데 반해 오직 에로스만이 오늘날 우리들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에 따르면 에로스는 상대방 없이는 못 견디는 사랑, 상대방을 잡아먹는 사랑, 미친 사랑, 절대적 사랑, 사람들을 광란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는 사랑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모든 걸 잊고, 거칠고 황량한 이 세상을 벗어나 새 관계를 맺으며, 그로써 그간의 실패를 만회하고 나아가 영혼을 송두리째 내주는 것이다. 이 사랑은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해 왔고 누구든지 그것을 체험하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 도피나 망각을 위한 다른 수단들이 금지됐거나 평판이 나쁜 데 반해 사랑은 관대한 처우를 받는다. 사람들은 사랑을 보편화하는 동시에 고귀한 것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44)]

[사랑은 복슬개가 뛰어다니는 범위의 독재이다. (46)]

[이 시대 사랑의 지옥은 수십 년 전부터 여성이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받은 존재였는데 그네들이 쥔 자본이라고는 가족, 사랑, 그리고 감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현 실정과는 완전히 다른 여성 해방이 올 거라고들 생각했다. 앞으로는 여성들이 사랑에 한결 초연해질 거라고, 노예나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의 중심에서 사랑을 내몰 것이라고, 그로써 여성들에게도 새 길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들 믿었다.
 나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착실한 지식인들은 여성 해방의 여파를 두려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바야흐로 남녀의 구별도 없어지고, 뭐든지 다기능화할 것이며, 안심하고 아이들 교육을 맡길 여자들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여자들은 사라지고 씩씩하고 당찬 여자들이 대거 등장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자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의 엄마와 할머니 세대가 열광했던 감상적 소설과 황당한 연속극의 제국을 허물어뜨리기는커녕 전 시민의 영혼 속에 멋지게 이식했다. 그러자 소설과 연속극의 가지관과 믿음이 모두에게 침투했다. 우리가 걱정한 것처럼 여자들이 남자들로 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여자들로 변한 것이다. (63)]

[따라서 거듭되는 논쟁과 성찰 끝에 우리는 커플 사이의 심리적 폭력을 기본으로 한 범죄의 형량을 사이비 신흥 종파의 교주에 의한 심리적 억압에 대한 형량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에서 징역 10년으로 바꾸는 한편 그 같은 범죄를 앞으로 <억압적 사랑>이라 규정하기로 했다. 형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범죄를 중죄 재판소에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판에 대중과 언론이 출석함으로써 교육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7)]

 

책 속의 단어 알기_자메 교수의 주장

*흡혈귀 :  보통 이상성욕자라 불리는 사람들로 '사랑'을 빌미로 상대방을 구속하고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알며 상대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고통도 (죽음까지도) 나몰라라 하는 뻔뻔함을 가진 무서운 기생충들. 필히 제도적으로 팔찌를 채우던가 칩을 박던가 하여 법으로 단속해야 함.

*먹이 : 흡혈귀가 가해자라면 먹이는 이들의 피해자.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이 받는 고통들도 자신이 못나서 생긴거라고 여긴다. 놀랍게도 이들은 본인들이 받았던 가학적 이상성욕의 결과들을 고스란히 또 다른 먹이에게 들어내어 제 2의 흡혈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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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링크
나이토 미카 지음, 김경인 옮김 / 북끌리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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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운 마스카라를 한 여인의 우는 듯한 표정이 그려진 어둡고도 사이버틱한 표지의 이 책은 '휴대폰 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제목도 발랄하다. 덧붙이자면 어쩐지 공포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표지이다^^

 <러브링크>.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는 책의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모니터 화면으로 만난 이 책의 첫 인상은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반토막과 휴대폰 소설이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 반토막이었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책은 휴대폰으로 보기에 딱 적당한 소스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재미와 막판 반전이 아주 조화롭다.

 여느 연인들처럼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지만 점차 사랑보다는 의무로 살아가는 부부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잘못된것인지도 인식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에서의 주인공은 무기력하게도 남편은 때리는사람이니 나는 맞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견딘다. 이혼 후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한 동생과 함께 살아가던 여자는 무료함, 외로움을 출장 호스트를 불러내며 달랜다. 출장호스트인 형(그는 꼭 동생같다.)과 J리그 선수인 동생을 동시에 만나게 되어버린 그녀는 어느새 사랑을 느낀다. 다시 사랑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 그리고 사랑이 유흥이란 이름으로 변해버린 호스트와 그의 동생...이렇게 네 사람의 이야기이다.

 독특한 작가의 이력만큼이나 이 책 또한 미묘하다. 나는 주저없이 이런 책은 일본작가만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책. 이것이 그들의 매력이자 힘인 것이다. 나는 또 한번 부럽고 분하다. 동시에 휴대폰 소설이라고 했을 때 느꼈던 선입견에 대한 부끄러움도 느껴졌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일이건 사랑이건 삶이 온전하게 흘러갈 수 없다. 어디선가 부딪히고 깨어지고 짖밟히고 상처받고 상처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사람으로 치유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책의 후반의 무조건적 '용서'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깊은 상처와 그 기억을 덮어버리고 상대가 누구든 용서를 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부족한 것일까. 내가 아픈 만큼 당신도 아팠을거야, 라며 쓴 웃음 지으며 뒤 끝없이 용서하고 추억으로 남기기엔 내 인생의 내공이 아직 모자라다.

 

[ 나는 실패한 인간이라고 고개를 숙여 버리면, 결코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으니까요. 가슴을 쫙 펴고, 앞을 향한다고 할까, 위를 향해, 하늘을 우러르며 살아갑시다. (134) ]

[ 이혼하고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슬퍼서 울지도 못하고,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숨긴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바쁘게 지내느라 나 자신의 상실감과 마주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아니, 상실감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바쁘게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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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 이야기
마르셀로 비르마헤르 지음, 김수진.조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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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로 비르마헤르'

 이 책을 처음 인터넷에서 보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동기는 제목이 아니었다.(정말?) 어떤 계기로 인해 지난 몇달간 책을 고르는 새로운 버릇에 추가된 것인데, 제목과 표지, 이름난 작가 등의 요소를 제외하고 바로 작가 프로필을 보는 것이었다. 매번 비슷한 나라의 비슷한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에 잘 읽지 않던 작가의 책도 읽겠노라고 다짐한 것이다. 아르셀로 비르마헤르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 작가의 현대소설은 나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으며 게다가 그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이라... 중동분쟁이 일어나는 지금 유대인은 하나의 이슈이다. 뭐 이런 저런 이유를 가지고 이런 이력의 작가는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평소 소소하게 호기심을 자극했던 유대인의 문화 체험이랄까. 나는 유대 문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아주 어릴적부터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던 '유태인의 천재교육'이라는 책의 표지만 보면서 부터 그들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두뇌구조가 궁금했던 것이다.

'임자 있는 남자'

 불륜 드라마라거나 영화, 소설등에서 종종 등장하는 '임자 있는 남자'에 대한 처녀들의 호기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좋다 나쁘다는 차치하고, TV의 불륜장면을 보며 '저 나쁜년!' 이라고 공감하는 '내 남자'를 소유하고 있는 아줌마들의 시선이 아닌 '임자 있는 남자'의 입장에서 쓴 유부남의 일상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30대 후반의 유부남은 안정된 가정과 평생 동반할 '사랑스런'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이 있다. 그는 가끔씩 젊었을 적 일상이었던 '일탈'을 꿈꾼다. 아내가 아닌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들은 하나같이 빠방한 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탄력있는 허벅지가 그의 마음을 흔든다. 그 여자야 어찌 생각하건 그는 이미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한번쯤은 '저 여자와 춤을 추고 싶군. 땀을 흠씬 흘리면서...'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것은 가정파탄이나 이혼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남성이기에 가지는 하나의 본능인 것이다. 남녀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상처도 준다. 특히 결혼제도 안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건들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부남의 일탈, 바람, 가정, 아내, 애인, 아이들, 꿈, 유년시절, 거짓말들이 적절한 유머로써 심각하지 않게 처리되고 있다. 소설 안의 아내들조차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러려니 하게 되는 유머 말이다. 어떤 것이 현명한 것이고 어떤 것이 불행의 시작인지는 말하기 힘들다. (결정적으로 나는 아직 미혼이다 ㅠㅠ) 어쨋거나 이런 불륜스럽고 낯뜨거운 소재를 매우 유쾌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이 책의 맛이다.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는 부인과 아내 몰래 아들 친구의 엄마를 만나는 남편의 이야기가 이토록 유쾌하고 비밀스러울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질투에 몸서리치는 아내의 샤우팅도, 걸리고 나서 수습하려 애쓰는 남편의 비굴함도 성자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 그러나 역시 나는 남자도, 유부남도 아니어서 시종일관 등장하는 이 책 속 유부남들의 젖가슴과 허벅지에 대한 열망에 대한 표현이 좀 심하다 싶다. 좋아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자주 언급한달까 ㅋ

'유대인 작가의 시점'

내가 기대했던 유대인적인 문화와 시각이 역시 요소요소에서 등장한다. 각주로 설명되어지는 여러 유대인 문화와 '우리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잖나' 하는 영감의 말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지했다. 거기에는 내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한 몫했을 것이다. 그들의 문화는 내가 느끼기에는 약간 독특하고 생소했다. 동시에 분쟁에 대한 시선도 생각해볼만 하다. 우리가 열사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지 않듯이, 그들도 분쟁을 바라보는 방법이 약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역사의 해석라는 것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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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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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추리소설은 역시 심리전이다.

'걸려들었어.'

'그렇다면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라는 대사로 한구를 괴롭히는 개콘의 수사관들처럼 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미 너무 유명한 작가이다. 그렇기에 내가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ABC 살인사건'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이 어찌보면 우스워질수도 있다.

오랜만에 집어든 추리소설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거 세밀하게 읽어야 단서를 찾아낼 수 있어!' 하고 마치 내가 탐정이 된 것 처럼 수사에 나서는 것을 시작.

경찰도 한 번 의심해보고, 애인도 한 번 의심해보고, 조카도 한 번 의심해보았다.

역시나 허를 찌르는 수사종결이었으나 어쩐지 결말이 미적지근하다.

'니가 바로 범인이야!' 라고 손가락을 치켜드는 멋진 김전일을 떠올린 것도 그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김전일보다 깊은 연륜으로 더욱 차분한 탐정이 주인공이었기에 '쿠쿵'하는 느낌은 없었다는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만든 암시라거나 복선이 부족했기에 완벽하게 독자를 속일수는 있었지만 결국 작가와 탐정 둘이 짜고가는 스토리인듯이 허망했다.

나는 독자로서, 증인으로서, 탐정으로서 앞장 서서 범인을 추리하다가, 돌연 나의 모든 추리가 틀린것이 아니라 애초에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고 난 후로는 실망감이 엄습해왔다.

다음 시리즈는 부디 독자를 위해 암시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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