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YTN뉴스에서 노원구 불암산에서 백골을 발견했다는 뉴스를 보며 전날 밤 야간산행을 생각했다. 헤드랜턴을 끼고 나선 첫 야간산행이었다. (헤드랜턴을 믿고) 낮선 길로 접어든 것을 알면서도 계속 나아갔다. 낙엽 진 산길을 헤치며 올라가며 능선이 나오겠지, 했는데 다다른 곳은 암벽. 그 곳은 한양대학교 클라이밍 연습장으로 쓰이는 암벽이었다. 낮에도 위험해서 올라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헤드랜턴으로 살펴보니 장비없이도 올라갈만한 바위틈이 보였다.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 암벽만 올라서면 길이 나올 듯 싶어 조심조심 암벽을 올라갔다. 20미터 남짓, 작은 바위 면의 옆길과 샛길로 한참을 헤메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작은 암벽에 올라 있었다. 거기엔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한 평 정도의 흙땅이 있었는데 그 곳에 앉아 가지고 온 커피를 마셨다. 기대했던 길은 없었다. 거대한 암벽을 등에 지고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산 아래 서울의 밤을 내려다 보았다. 밝고 화려한 불빛의 아파트 단지들과 빌딩숲, 형광등과 네온등이겠지... 도로에 흐르는 용암같은 불빛들. 경사진 바위면에 붙어 있으니 시야를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암벽의 어느 틈에 붙어 있는 샘이었다.
서울 마지막 달동네라는 중계동 104마을의 가로등 빛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무른다. 거리의 노란 가로등 빛만 있는 그 마을. 하늘에서 봐도 가난한 동네는 가난했다. 가난한 백사마을은 밤의 어둠을 거역하지 않고 그저 어두워지기만 하는 가난한 마을이었다. 마을의 노란 가로등이 간격을 두고 빛을 발할 뿐 다른 인공의 불빛은 눈에 띄지 않았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휘황한 불빛이 난무하는 서울의 활기와 너무나 대조적인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 내 신혼집이 있는 곳.
11.23
백골이 발견된 불암산은 해발고도 508미터의 작은 산이다. 오늘도 불암산이 뉴스에 났다. 불암산도 우면산처럼 산사태 위험이 있단다.
정상은 하나지만 오르는 길은 많다. 나는 불암산의 (소개된)모든 등산로를 다녀봤다. 등산로를 벗어나 샛길로 조금 걷다보면 금새 다른 등산로와 만나게 되는 작은 산. 정상까지 한 시간이 안 걸리는 뒷산.
겁이 없는 건 아닌데 안전엔 둔감해서 가끔은 위험을 자초하곤 한다. 등산로는 없지만 머릿속 지도로 볼 때 이곳에서 산을 가로지르면 더 빨리 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그 다음 장면은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올 법한 풍경을 연출하곤 한다. 작은 산이라 만만히 보고 아무 길로나 들어서고 이끼낀 바위에서 미끄러 떨러지고 썩은 나무가지를 잡고 넘어지기도 했다. 손톱에 피가 고이고 삔 발목은 붓는다. 십 수년전 누군가 먹고 버린 과자봉지와 소주가 이곳에도 사람이 지나긴 하는구나, 생각이 들게 했지만 빛바랜 사람의 자취에선 스산함이 느껴진다.
그런 곳이라면 백골이 되어 발견 될 법하다,라고 생각했다.
등산용 우비를 샀는데 아직 사용을 못해봐서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오늘 우비를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믐달이다. 헤드랜턴이 있어 든든하지만, 아는 길로만 다녀야지, 불암산에서 두번의 위험을 겪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