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 파고다 공원 근처에 내가 다니는 이발관이 있다.
추억의 이발소 의자가 여섯 개 이발사 아저씨도 여섯 명...
이발 3.500원 염색 5.000원
한 이 년 다니다 보니 여섯명의 아저씨 모두에게 이발을 받아봤는데 세 분 아저씨는 머리를 요시노 이발관에서 나오는 바가지 머리를 만들어 놓는다.
바가지 머리를 손으로 쓸며 '상관없어... 아무도 신경안쓰는데 뭐~'하며 자위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키 작은)아저씨 말고 (키 큰) 아저씨가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없다. 운명이다.
키 큰 아저씨가 머리카락을 잘라줄 때면 '어떡게 잘라줄까요'라는 물음에 '그냥 다듬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반면에 바가지머리의 작은 아저씨에게는 '요래요래~해주세요'주문을 한다 하지만 작은 아저씨는 머리를 툭툭 쳐가며(머리 돌리라는 수신호) 주문과는 상관없이 바가지로 만들어 놓는다.
오늘 키 큰 아저씨는 내 옆자리의 외국인 손님에게 갔다. 대머리의 키 큰 외국인은 땡잡은거다.
(어떻에 알고 찾아왔지? 외국은 이발비가 비싸다던데 감동 좀 먹겠군ㅋㅋ)
모르긴 몰라도 면도도 잘할 것 같은 나의 키다리 아저씨...
3.500원의 유혹은 바가지 머리의 위험도 감수하게 만든다.
바가지 머리는 날 더 의연하게 만든다.
'이깟머리 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내 머리 신경 안 써~' 블라에 오니.
"머리 왜 그래~"ㅜㅜ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아빠가 뒤안에서 머리를 잘라 줬었다.
커다란 보자기를 두르고, 세탁소 시커먼 재단가위로 머리를 잘라주는 아빠의 작품도 바가지였다. 아빠는 숫가위가 없었지만 오늘 이발사 아저씨는 숫가위도 있으면서 바가지를 만들었다. (흑)
물론 재단가위만큼 심각한 바가지는 아니어서 돌아다닐만 하다.
평생 동네에서 바가지를 만들던 이발사 아저씨, 학교 앞에서 학생들 스포츠 머리를 만들고 시원하게 잘 잘랐다고 생각하시던 동네 이발사 아저씨들은 변화하는 헤어 스타일을 쫓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하얀 가운의 이발사 아저시들은 미용실 가기 넘사스럽다 생각하는 동네 할아버지 머리만 만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운영이 힘들어진 이발관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엔 미용실이 들어섰다.
할아버지가 많이 모인 파고다 공원에 이발사 아저씨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이발관에 있는 의자의 갯수만큼 이발사 아저씨들이 있는 파고다 공원의 이발소들... 할아버지 냄새 진하게 나는 복불복 이발관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할아버지들도 동네에 이발관이 없어 종로에 나온다며 고맙다고한다. 이발값이 싸다고 좋아하시며 시원해진 뒷머리를 쓸어올리며 기분좋게 웃으신다.
나는 할어버지 구경온게 아니다. 이발사 아저씨의 인생을 들으러 온것도 아니다. 3.500원의 유혹일 뿐이다. 할아버지 이야기 엿듣는 재미는 덤이다. 이발사 아저시들은 택시아저시만큼 이야기를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