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인들 제대로 했겠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그러고 있었지요.
돌이켜 보니까 그게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었어요.
하루, 이틀, 시간이 가기 시작하자 조금씩 살 것 같더라고요.
이래선 안 되지, 하는 마음도 들고 답답하던 가슴도 조금씩 열리고 숨도 크게 쉴 수 있게 되었죠.
그래요.
인간이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신만을 위해,
그 슬픔 속으로 세상이 다 동참해 줘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곧 세상에 대한 응석이죠.
아무튼 그 당시 제가 제일 소름끼치고 무서웠던 것은 외로움이었어요.

세상이 다 함정 같고, 거짓말 같고, 안개 같고......
 
-슬픔으로 씻기고 사랑으로 비우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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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키스할 곳이 없어서 DVD상영관이나 노래방 같은 데를 찾아 들어가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호텔을 찾아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가난한 자와 사귈 거라면 자정 무렵 불 꺼진 재래시장의 낡은 처마 밑이나, 월요일 고궁 앞의 닫힌 매점 처마 아래에서 한낮의 키스를 즐겼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움직임 하나에도 가슴이 놀라 덜컹거릴 수 있는 그런 고요가 있는 처마 밑의 키스.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녀에게 권하고 싶은 생의 아름다움이다. 내게 가난한 여자가 다가온다면 나도 그러고 싶다. 사랑에 확신이 든다면 나는 그녀가 사는 곳을 오래된 목판활자의 보관실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 방부(防腐)에 가장 적당한 박물관의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균이 번식할 수 없는 청량한 온도와 습도와 통풍 공간 속에 우리 생을 넣어두고 싶다.
-박금산-나는 아버지에게 간다中
 

#2. 정이와 나는 연애를 하면서도 각자 외로웠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투명하게 이별했다. 진심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거짓을 꾸미지 않겠다는 다짐이 너무 강렬해서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진심으로 변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말했다. 네 주변에 대해 너무 미안해·······.이렇게 작은 희망을 품고 사는 것에 대해 나는 환멸이 들어······. 더 큰 사랑을 하고 싶어. 더 큰 사랑을 하기 위해선 둘 중 누군가가 우리 둘만의 사랑에 헌신적이 되어야 할 거야. 난 너에게 헌신적일 수 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너에게 강요하게 될 거야. 나한테 헌신적이 되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만남은 서로에게 독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이런 건 사랑이 아니야.  -불광동 성당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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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종이배 접어

백날이고 천날 흰 종이배 접어 띄우면

당신의 그 바다에 닿을까요

먼 바람결로도 꿈결로도 오지 않는

아득한 당신의 그 바다에 닿을까요

'박남준-흰 종이배 접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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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내 마음속에서 뒹굴어다니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 말이다.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그 시간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휘말려 도저히 헤어나올 길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지금은 잊은 그 누군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살면서 이렇게 증명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가장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할 힘을 줄 테니까.

 '신경숙-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프롤로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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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랑의 감정에 두터운 무관심과 권태의 벽이 생겨나는 이유가 상대방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따지기엔 너무 사소한 불만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작은 언행들이 결국은 마음에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건 상대가 누구든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발생적인 것들이다. 마치 누가 돌보지 않아도 초원에 풀들이 저절로 자라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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