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녀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키스할 곳이 없어서 DVD상영관이나 노래방 같은 데를 찾아 들어가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호텔을 찾아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가난한 자와 사귈 거라면 자정 무렵 불 꺼진 재래시장의 낡은 처마 밑이나, 월요일 고궁 앞의 닫힌 매점 처마 아래에서 한낮의 키스를 즐겼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움직임 하나에도 가슴이 놀라 덜컹거릴 수 있는 그런 고요가 있는 처마 밑의 키스.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녀에게 권하고 싶은 생의 아름다움이다. 내게 가난한 여자가 다가온다면 나도 그러고 싶다. 사랑에 확신이 든다면 나는 그녀가 사는 곳을 오래된 목판활자의 보관실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 방부(防腐)에 가장 적당한 박물관의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균이 번식할 수 없는 청량한 온도와 습도와 통풍 공간 속에 우리 생을 넣어두고 싶다.
-박금산-나는 아버지에게 간다中
 

#2. 정이와 나는 연애를 하면서도 각자 외로웠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투명하게 이별했다. 진심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거짓을 꾸미지 않겠다는 다짐이 너무 강렬해서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진심으로 변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말했다. 네 주변에 대해 너무 미안해·······.이렇게 작은 희망을 품고 사는 것에 대해 나는 환멸이 들어······. 더 큰 사랑을 하고 싶어. 더 큰 사랑을 하기 위해선 둘 중 누군가가 우리 둘만의 사랑에 헌신적이 되어야 할 거야. 난 너에게 헌신적일 수 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너에게 강요하게 될 거야. 나한테 헌신적이 되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만남은 서로에게 독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이런 건 사랑이 아니야.  -불광동 성당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