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아니었고, 누군가와 소통하면 덜 외롭다는 사실에 무심한 사람이었지요.

아랫목이 따뜻한 집을 짓지 못했고(않았고) 함께 산다고 같이 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썰물 때 드러났다가 밀물 때 가라앉는 '여'처럼, 내가 살아낼 수 없는 곳이 당신이었고 내 안타까운 숨결들이 모여 붉은 기운을 북돋우는 곳이 당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에겐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어 무엇을 구할 수나 있었겠어요.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 천양희-추억을 통해 인생은 지나간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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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운명 따위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을 너는 가지고 있느냐고 운명이 내게 묻는다. 그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기억을 비로소 견뎌낼 수 있게 되는 일. 지나간 시간을 정독할 마음이 조금쯤 일렁이는 일. 안도와 체념이 뒤섞인 맛의 한숨. 그래서 슬프냐고 누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이제 답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니고

사랑도 내 것이 아니므로

내가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그대의 눈부신 빛 속에서

나는 영영 그림자인 거라고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그대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세상도 어찌하지 못했다고

사랑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언젠가.

나에게는 일어났으나 너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 너에게는 희미했으나 나에게는 또렷했던 일. 나에게는 무거웠으나 너에게는 가벼웠던 일. 너에게는 잊혔으나 나에게는 문신으로 새겨진,

언젠가라는 말처럼 슬픈 말도 흔치 않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언젠가이든,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의 언젠가이든.

 

너무 빨리 오거나 너무 늦게 온다. 너무 일찍 사라지거나 너무 오래 남는다.

제시간에 제자리를 지킨 것들도 있었을 텐데, 너무 늦게 깨닫는다.

 

'황경신-밤 열한 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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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장 나쁜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삶, 아닐까.

오늘은 좋은 일만 상상하고 싶었다. 시험처럼 실패해 버리고 싶진 않았다. 붙거나 떨어지거나. 죽거나 살거나. 사랑하거나 외면하거나. 잡히거나 빠져나가거나. 인생은 매번 둘 중의 하나다. 중간은, 없다.

 

'오현종-달고 차가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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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잠을 자야 노인이 될까. 쓸데없이 싱그러운 청춘이 성가셨다. 단번에 나이를 먹어 안타까움도 그리움도 없는, 밟으면 바삭, 하고 소리가 나는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들이 서로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산골에서 매일 새벽 소리없이 일어나 밭을 매고 가축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변화 없이, 똑같은 날을 사는 노인이 되고 싶다.

 

-집을 떠나고, 말을 배우고, 꿈을 꾸고, 목소릴 듣고 싶어하고, 합격을 하고, 울기도 하고, 고백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외로워하는 게 청춘이야.

 

수상소감中 밥 먹고 소설 쓰고 누워 있고, 밥 먹고 소설 쓰고 다시 누워 있던 시간들이 밥 먹고 소설 쓰고 산책도 하고 농담도 할 수 있는 날들로 서서히 변주되기 시작했다. 밟으면 바삭, 하고 소리가 날 듯 메말라버린 마음에도 조금씩 햇볕이 들고 바람이 통했다.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책상 앞에 앉고 싶다. 깨가 쏟아지도록 즐겁게 글을 쓰고 싶다.

소설을 쓰고부터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조금 어색해졌다. 차라리 두 손을 맞잡고 정신없이 뱅뱅 돈다든가, 서로 부둥켜안고 잔디밭 위를 마구 구르고 싶어진다. 수가 여럿일 때는 함께 단체줄넘기를 하거나 차례대로 공중제비를 돌고 싶어진다.

 

'홍희정-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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