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얼마나 어줍고 공소한 것인지. 소유에의 욕망-그러나 과연 어디에 잡아둘 것인가. 움켜쥔 손아귀에? 질긴 주머니에? 수갑을 채우고 밧줄로 동여매 견고한 금고 안에 넣은 뒤 창살을 두른 감옥에 가둔다. 그러는 즉시 우리 자신도 상대로부터 차단된다. 사랑에 있어 소유는 무엇보다 우선, '불가능'하다.
사랑은 소유할 수도, 강탈할 수도, 점령할 수도 없다. 어쩌면 온전히 욕망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너무도 쉽게, 힘없이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나는 반죽처럼 묽게 풀어진다. 어딘가에 담기지 않고서는 형체조차 유지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옅어졌음을 안다. 세상 모든 연인처럼 발을 땅에 딛지 못한 채 낮은 공중을 걷는다. 가볍지 않다. 질척이는 공중이다. 몽롱함, 취기, 현기증.....더불어, 이성과 의지에 반(反)하는 그것들에의 몰입.
사실 사랑은, 불편하다. 쾌적하지도 산뜻하지도 않다. 몸뚱어리는 무겁게 늘어지고, 두근거림은 진정되지 않고, 허열과 소양감에 시달리고, 익숙했던 시공간은 기이하게 뒤틀려 어지럽게 일렁인다. 걷잡을 수 없는 환시와 환청과 환취와 환미와 환촉의 습격. 긴장과 초조로 경직되면서도 마구잡이로 끈적이며 물크러진다. 제때 거두지 못한 과일처럼 너무 익은 채로 떨어져 속수무책 바닥을 뒹군다. 존재의 무력한 분해. 목마름, 말 더듬, 울먹임과 뒤척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어쩔 줄 모름. 결코 부릅뜰 수 없는 눈이 자꾸만 감긴다. 세상 모든 연인들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괴로운 그리움의 밤.
녹아내려, 원하는 것은(어쩌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그(그녀)를 손아귀에 넣는 것이 아니라,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접근. 그에게로 흘러가는 것이다. 단지, 접촉. 그에게 닿는 것이다. 그저, 단지, 가까이.
그리하여 스며듦의 차례다. 스며든다, 딴은 서럽기도 하지만 짐짓 침착하고 차분하게. 스며든다. 쑤욱 빨려 들어가지 말고, 꿀꺽 삼키거나 삼켜지는 대신, 그저, 단지, 스며드는 것이다. 습기처럼 조용히. 염료처럼 단호히, 단풍처럼 거스를 수 없이, 연인에게 스며드는 것. 돌이킬 수 없이, 사랑으로 물이 드는 것이다.
스며듦으로 나는 이제 그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나도, 그도, 우리도,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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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다가갈 수는 있지만, 가 닿지는 못한다. 그를 향해 낙하할 수는 있지만, 착지하지는 못한다. 무사히 지상에 닿지 못하고 그만 나뭇가지에 낙하산이 걸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병사처럼, 나는 외로워진다. 깊고 어두운 숲 속으로 영원히 삼켜진 새끼 짐승처럼, 나는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