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하는 순간 증기처럼 아득한 두려움이 나를 덮친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시간 토막들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을까. 진짜는 죄다 도둑맞고,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자아의 금고 속에는 엉뚱한 모조품만 잔뜩 쟁여져 있는 느낌이다. 스물두 살의 첫새벽처럼 나는 텅 빈 주방 앞에서 나지막이 읊조린다.

누가 너를 내게 보내주었지?

 

'권여선-진짜 진짜 좋아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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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 힘이 빠지면서 나는 스르르 주저앉는다. 이쯤에서 나도 그만 울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가족이나 동료들이 동참할 수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이방인의 가면을 뒤집어쓴 채, 그 누구의 따뜻한 위로도 받지 못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조해진-로기완을 만났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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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결혼을 너무 '사랑'중심으로 얘기하지 않는가?

사이좋게 살 수 있으면 되지, 정도의

가벼움으로 사는 편이 더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어차피  그 '사랑'이란 게

마르기 쉽고 넘치기 쉽고 타기 쉬워서

생활 속에 갖고 들어오면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지는걸.

 

'이토이 시게사토-양도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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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에서 시작해서 "이를테면"을 거쳐서, "마치 그것은......"을 지나 "비교하자면....."즈음에 이르렀을 때에야 그는 겨우, '외롭다'는 말을 이해했다. 이해하자마자 그는 침대에 누웠고 이내 코를 곯았고, 나는 공책을 펼쳤고 '외로움'을 발화한 대가를 치른 간밤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 뒤로 그와 대화를 나눌 때에는, 내 입에서 나온 마음 관련 낱말 하나하나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며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한 사람 때문에

 

'김소연-마음사전 책머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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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하면 척척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군요.

그와 말한마디 나누려면 숨부터 막혀오고, 이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노력을 해도 대화로 이어지지도 못한, 수없는 경험을 했군요.

외롭다는 말을 삼키다 밥먹자는 말조차 하기 힘들어진 관계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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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가 1

 

곳곳이 꽃이고 곳곳이 꽃인데

그냥 가시렵니까,집은,달은 저만치서 헤매이고

눈썹마저 강으로 던져버리면

아무리 저문 문틀이라지만 벌레 끼어 웁니다

그러니 덤불에는 눕지 마시고 꽃가지 꺾어

꽃잎에 섞여 마른 빛으로 나십시오

고르고 고른 마음 모진 어둠을 갉을 때

먼 곳으로부터 잠이 옵니다

이것이 이별을 위하는 것이라면 새벽을 달래

강에 적시겠습니다, 곳곳마다 꽃이어서

잔가지만 하더라도 수북이 여기에 있는데

다만 울음을 멈춘 벌레를 따르렵니다

달이 비추는 길에 서 계시는 하얀 옷자락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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