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 - 대중과 소통하는 '캠퍼스의 글쟁이들'을 만나다
박종현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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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사회의 현실에 의문을 품게 해주는 대표 지성인들을 만나다!

 
"지식인의 임무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에 있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것에 있다"고 했던 칼 마르크스의 말이 생각난다. 어느 시대나 지식인의 정체와 역할은 사회를 지탱하는 보루, 희망의 등불이라 이름 붙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식인의 현실 참여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에게 부여된 사회적인 책임은 지식인이 짊어지고 가야 할 태생적인 '운명'이리라.

그런데 솔직히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지식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오래 전, '아줌마'라는 드라마에서 속물적인 지식인을 희화한 '장진구'라는 인물이 등장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를 찾아가 지식인으로 사회에서 "뜨는" 방법을 넌지시 묻는다. 친구는 쎈 사람을 하나 골라 매체를 통해 사정없이 "까"라고 일러준다. 그러면 시대의 논객으로, 인기 지식인으로 대중과 매체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교육이 신분상승의 훌륭한 도구가 되어 오면서 학식이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는 풍토에서는 지성조차도 상품화되고 소비된다. 그래서 소위 "뜬" 또는 "뜨는" 지성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그들에게서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과 학자적 양심을 그리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인터넷을 필두로 한 대중 매체의 발달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적인 면에서 볼 때, 양날의 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지식인의 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가능해졌지만, 걸러지지 않는 소음과 잡음에 꼭 필요한 '바른 소리'가 묻히는 경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귀 기울이고 싶은, 귀 기울여야 할 지성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는 데에 의의를 찾고 싶다. 여기 등장하는 학자 60인은 이미 우리 시대 최고의 필자로 대우받는, 이른 바 "뜬" 사람들이다. 책은 이들을 "대한민국 독자 99%가 찾는 1%의 학자들"이라고 표현한다.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세계일보'에 연재된 시리즈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취지를 이렇게 밝힌다. "학문 영역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고, 이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고 있는 학자 60명을 만났다. 대표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들의 삶과 학문, 집필세계를 탐문했다"(10). 이러한 탐문의 과정은 시대의 담론을 생산하는 학자들이 독자들과 만나는 과정과 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바람대로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은 "학자 60인의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성과를 한 호흡으로 살펴보면서 오늘의 학문적 담론과 이 시대 학문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지도가 되어준다.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을 통해 어떤 담론들이 소통되고 있는지 그 핵심 사상과 거론되는 지성인들의 이름이라도  알아두자 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고, 유익했다. "학자는 외부의 주문이 아니라,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존재"(32)라고 말하는 푸른 눈의 진보 논객 '박노자 글방'을 즐겨찾기에 등록하기도 했고, "학자로서 진실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을 뿐"(36)이라며 민족주의 사회학자가 아닌 진실을 추구하는 학자로 생각해달라는 신용하 교수님의 말씀에 '학자의 양심'이란 얼마나 고결한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도 했다. "역사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114) 한다는 이덕일 선생님의 역사전쟁을 응원하며,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이나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278) 삶으로 가르쳐주셨던 그리운 고 장영희 교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마음에 새겨보기도 했다. "인문학이 가치를 다루고 과학이 사실을 다룬다는 이분법을 고수한 상태에서는 둘 다 절름발이일 수밖에"(372) 없다고 역설하는 홍성욱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기 전공의 높은 벽을 뚫고 나와야 하는 지식인의 과제를 새삼 인식하기도 했다.

소비, 사회 문화, 역사, 건축,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을 한 자리에서 만나며, 그들이 제시하는 '깊이 있는 문제의식'과 건전한 '비판의식'을 읽으며, 지성인들이란 "우리 사회의 현실에 의문을 품게 해주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어렵지 않게 읽으면서, 자각 있는 문제의식을 갖고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아젠다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익과 즐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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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스도쿠 고급 - IQ 148을 위한 3차원 스도쿠
마인돔 지음 / 보누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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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에서 입체로 한 차원 도약한 3D 스도쿠는 스도쿠 특유의 치밀한 논리력에 더해 시각적 이해력과 공간지능이 요구되는 고난이도 논리게임이다"(표지 앞 날개 中에서)

 
처음,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의 개념을 배울 때, 4차원의 세계를 동경하며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를 참 시시하게 여겼던 생각이 납니다. 3차원, 그러니까 '3D'의 진보에 이렇게 열광하게 될 줄 몰랐거든요. 3D 영화의 전세계의 관객을 사로잡더니, 이제는 평면의 공간에서 풀어가던 논리게임도 3D로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습게' 여겼던 3차원의 세계가 다른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다가오니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3D 스도쿠>는 스도쿠 특유의 치밀한 논리력에 더하여 "시각적 이해력과 더불어 공간지능이 요구되는 고난이도 논리게임"이라고 해서 과연 어떤 입체 퍼즐이 눈앞에 펼쳐질까 기대가 컸습니다. 영화 '큐브' 속으로 들어간 스도쿠를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공간지능'이 요구된다는 말에,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공간지능이 낮아 남성들에 비해 주차능력이 떨어진다는 속설을 여지없이 깨주겠다는 다부진 각오도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3D 스도쿠>는 입체적인 상상력보다 '착시'의 트릭에 기댄 퍼즐입니다. 3X3 박스와 세 쌍으로 확장된 공간 안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겹치지 않게 채워 넣는 기존의 스도쿠 퍼즐과 동일한 방식이기 때문에, 수직으로 굽은 선이 일으키는 '착시' 효과를 극복한다면 평면 스도쿠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평면의 정사각형 형태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뻗어가나가는 복잡한 구조의 다면체" 형태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논리적 추론을 방해합니다. 착시 효과가 가져오는 '헷갈림'이 있지만, 몇 문제 풀다보면 곧 적응될 것입니다. '체인 스도쿠'와 마찬가지로 '3D 스도쿠'도 한 가지 트릭을 더 추가하여 논리적 추론을 방해하지만, 저에게는 '체인 스도쿠'가 훨씬 헷갈리게 느껴집니다.

'변형 스도쿠'는 스도쿠의 독창적인 재미가 확장된다는 점에서는 분명 진보이지만, 기본적인 논리와 풀이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변형 스도쿠'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도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변형 스도쿠'는 언제나 환영할만한 새로운 도전입니다. 그 진보가 어디까지 이루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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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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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우리'라는 말이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 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78).

 
<나가사키>는 "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 숨어 산 한 일본 여인의 충격 실화"를 (독특하게) 프랑스 작자가 소설화한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의 소재가 되는 실화의 묘미는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도무지 믿기 힘든 거짓말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충격과 놀라움일 것이다. 실화가 아니라면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하다는 이유로, 현실성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귀 기울이기를 거절했을 소재일 테니 말이다. <나가사키>의 실화 역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특종감이다. 한 여자가 집주인 몰래 그 집 이불 벽장에 숨어 1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은 많이 보아왔지만, 역사소설이 아닌 이상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은 그다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실화라는 소재의 한계가 오히려 문학적인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다. 충격 실화가 주는 소재 자체에는 흥미를 가졌지만, 막상 소설로 읽으려니 '있었던 사실'을 빠르게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만 강했지 그 이상의 기대는 별로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사키>는 드러나 사건 그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집요하게 포착하고 있다. 실제 이야기는 오히려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 문학적 도구가 된다.

<나가사키>에서는 고독한 두 실존이 조우한다. 그들은 한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한 사람은 다른 한 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다.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각기 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동료들과 퇴근 후 맥주 몇 잔이나 양주를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일찍 저녁 먹는 것을 좋아하는 '독신남'이다. 독신남의 습관을 보호막으로 하여 살고 있는 이 쉰여섯의 남자는, 정돈되어 있는 일상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작은 균열을 알아차린다. 냉장고의 음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낮아진 과일 주스의 눈금, 그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남자는 당장 부엌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장에서 자신의 빈 집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상관측사인 남자가 그의 인생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황당한 사건의 전말이 실체를 드러낸다(52).

"이 여자는 당신 집에서 당신 모르게 일 년 가까이 살았다는 걸 말씀드려야겠군요"(54).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시간들 속에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제멋대로 남의 집에 침입해 몰래 숨어서 '나'를 엿보는 여인이 있었다면? 자신만의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라 생각했던 곳에 몰래 누가 뿌리를 내리고 "내 수건으로 닦고 내 화장실에서 똥을 누었다"(65)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침입자인 여인은 숨어 살기 위해 남자의 모든 것을 훔쳐보며 철저히 감시(염탐)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남자는 어떤 균열을 눈치 채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감시(염탐)자가 된다. 남자가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차가운'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카메라'를 통해서 본 그녀는 주택 침입이니 강도니 같은 단어와 어울지 않게,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으려다 창살로 비쳐드는 햇살을 쪼이고 있었다. 서둘러 경찰서에 신고를 했던 남자는 집으로 전화를 한다. "여자는 곧 구름이 닥치기 전에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서둘러요, 그러지 않으면 곧 그 태양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란 말이에요, 하고 외치고 싶었다"(45). 그러나 소통되지 않는 전화기. 차가운 전화기 역시 소통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 여자는 그렇게 '체포'되었다.

두 번째 화자는 이 독신남의 집에 숨어 살았던 여자이다. 일 년째 남의 집에 숨어산 여자의 사연이 풀어진다. 오랜 실직 끝에 집마저 잃고 거리를 떠돌게 된 쉰여덟의 독신녀가 그 독신남의 집 벽장을 은신처로 삼게 된 쓸쓸하고 기막히고 기구한 이야기가.

<나가사키>는 130페이지도 채 되지 않은 얇은 책이다. 그러나 짧고 간단한 이야기라고 재빨리 '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맘처럼 그렇게 쓱쓱 읽히지 않는다. 오래 음미해야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문제의식도 다양하다. 쉰여섯의 독신남과 쉰여덟의 독신녀, 이 두 고독한 실존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없었을까? 독신남은 홀로 저녁을 먹고 있고, 독신녀는 그의 벽장 속에 몰래 숨어 있는 시간, 텔레비전에서는 노인들에 대해, 그리고 언젠가 일상에서 노인들을 도와줄 로봇에 대해 또! 지루한 타령을 한다(63). 노인 수는 대량 침입이라 할 만큼 급속하게 증가하는 중이다. 독신남은 홀로 텔레비전을 보며 자신의 노후를 상상한다. "끝없는 나의 가을을 지켜주고, 내게 말을 하고, 나의 마지막 의지들을 받아주고 언젠가는 나의 마지막 숨결을 거둬줄 로봇 말이다"(64).

"기상관측사로서 나는 하늘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력은 길렀지만 이 지상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60)
여자가 남자의 집에 침입해 있던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아주 미미한 삶의 한 조각이지만, 남자는 최후의 시간까지 그것이 중요한 조각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남자는 여자가 '체포'된 뒤에도 '다른 여자가 집 어딘가에 숨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망상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아버린다. 오래 전부터 어떤 야심도 돋아나지 않고, 어떤 희망도 돋아나지 않은 자신의 삶의 초라함과 삭막함을. 그 여자로 인해 그것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혀버렸다. 그 여자가 저주스러웠다(74). 

두 사람의 찰라적 '충돌'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세상은 그 황당한 헤프닝을 곧 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집에서 '이전처럼' 살 수 없어진 남자는 그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여자는 왜 그 집에 자신이 숨어 들었는지 남자에게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침입 당한 그 남자의 삶은 이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 다시 거리로 내몰린 여자는 이제 다시 어디에 그 몸을 누일 수 있을까. 그녀의 편지는 그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 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78).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염탐할 뿐 전혀 소통되지 않는 남자와 여자, 그 거짓말 같은 실제 이야기. 내 공간 어디에 누군가 숨고 살며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는데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가 버려둔 좁고 어두운 벽장에 숨어 살며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는 것이 바로 나는 아닐까. 각자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할 뿐, 소통하지 않는 각각의 '나'들. 그렇게 '우리'가 죽어간다면 '우리' 주위에는 로봇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나가사키>의 은밀한 경고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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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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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정말 그렇다!

 
손에 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못생겨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외모 열등감, 가난한 집안이 부끄러운 집안 열등감, 고졸이라 무시받는 것 같은 학력 열등감 등에 시달리는 이웃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 내 친구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과거'에서만 찾는다는 이유로 심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반응) 이면에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심리학은 위대한 발견이라 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심리적 현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이해와 치유, 회복의 길이 열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나를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는 바람만 가득했지, 내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자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존감>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열등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열등감도 있고, 과거 경험 때문에 생기는 열등감도 있습니다. 문제는 열등감이 성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관계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습니다. 열등감의 가장 큰 문제는 겪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합리적인 근거를 가진 것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것이 우리를 더 억울하게 만듭니다.

<자존감>은 "열등감은 관점의 문제"(19)라고 거듭 말합니다. '자신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즉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서 열등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그것도 전혀 합리적인 근거를 갖지 않은 채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존감과 열등감이 외적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합리적 감정이라고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이건 착각이다. 자신을 부정적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 문제다. 자존감과 열등감은 자신을 보는 관점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조건이 아니라, 관점이다"(42).

<자존감>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내가 가진 열등감'의 문제를 진단해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남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 행복할 것 같은 사람이 실제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불행의 늪에 빠져 있는 그 심리적 현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내 안에서 떨고 있는 '열등감의 아이'의 존재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긍휼한 마음이 차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서 심리적 생기를 앗아가는 이 '열등감'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파악하고나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나를 포함하여)를 보듬어야 되겠구나 하는 열린 마음이 생깁니다.

<자존감>은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공식적으로 보면, 욕심을 줄이고 성공(의 경험)을 높이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길입니다(자존감 = 성공 / 욕심). 저에게는 그보다 먼저 '누군가를 용서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사례 중에 유년기에 자기를 괴롭혔던 아버지 때문에 집안 열등감에 시달렸던 한 아들이,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깨달음과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느 날, 화가인 부인이 부엌에서 연탄재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연탄재에다 물감을 섞어 그림을 그렸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L 박사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쓸모없는 연탄재 같은 분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있기 위해서 연탄재 아버지도 필요했구나'(78)". 또 "용서도 이를 악물고 하는 것이다.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의지로 용서하는 것이다"(241)라는 말도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자존감>은 "남의 거울에 비친 나를 나로 착각하지 말자"(70)고 충고합니다. 전에는 남의 거울에 비친 초라한 내 모습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거울이 찌그러지고 깨진 거울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자존감>을 읽으며 저는 처음으로 고모를 용서했습니다. 그동안 무엇인가 나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 공부를 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존감>은 제가 무심코 지나쳤던 어떤 기억 속에 제 열등감을 자극하는 상처가 숨어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별 이유 없이 동생을 더 예뻐했던 고모의 차별이었습니다. 막내인 제 여동생을 무척 귀여워했던 고모는 (상대적으로) 유난히 가시 돋친 모습으로 저를 대했습니다. 그러나 전 또 이모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별일 아닌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유도 없이 급격하게 위축되곤 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모의 그 매서운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저를 느꼈습니다.

'에필로그'에 보면, 저자인 이무석 선생님이 '외손녀인 혜인이가 왜 이렇게 예쁠까?' 하는 의문에 답하는 글이 나옵니다. 그 글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아무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랑,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랑이 필요하고,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열등감에 쪼들리며 우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것인가?"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 그 행복의 열쇠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스스로 사과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행복의 문을 스스로 열어가려 합니다. '그동안 내가 너를 구박했지? 미안해' 하고 말입니다.

<자존감>은 심리학적 용어가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쉬운 글로 '열등감'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파악하고, 나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열등감의 함정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겪지 않아도 될 불행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한번은 자기를 정면으로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269-270).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을 통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해보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례를 다른 사람에게 섣부르게 대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의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용납할 수 있는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겪지 않아도 될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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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낭독 훈련 Vegas Tell 1 (본책 + 코치 매뉴얼 + MP3 CD 1장) Show & Tell 시리즈 6
박광희.캐나다 교사 영낭훈 연구팀 지음 / 사람in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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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을 모두 암송하고 난 뒤 영어로 말하는 입이 열리면,
출판사를 향해 큰절을 올리겠습니다! 

 
<영어 낭독 훈련>에 대한 입소문을 들었지만, 선뜻 찾아 구매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한 권의 영어 교재가 먼지가 쌓이도록 책상 위에 놓였다가 책꽂이에 방치될까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꼭 영어를 정복하고 말꺼야"라는 굳은 결의와 함께 하나둘 늘어가는 교재들이 이제는 짐이 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쌓여 있는 교재들을 보면 오히려 한숨만 깊어갑니다. 모든 학습 교재가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히 영어 교재는 학습 '목표'가 분명하고, 학습자의 '수준'에 딱맞으며, 독학 교재는 무엇보다 학습자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어 낭독 훈련을 위한 딱맞는 교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영어 트라우마'라고 할 만한 상처의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영어로 물으시면 학생들이 영어로 답하는 수업 중이었습니다. 대표로 일어나 대답을 했던 제가 "캠프화이어"(campfire)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아이들 표현대로 하면 제가 심하게 혀를 굴리며 대답을 했나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아-"라는 탄성이 터져나왔고, 선생님도 저를 보며 크게 웃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저를 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이 계속 제 발음을 흉내 내며 키득거렸기 때문입니다. 그 놀림이 어찌나 싫었던지 영어를 발음하는 일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영어 수업시간마다 친구들이 제 발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쩌다 영어를 말할 일이 생겨도 또 같은 실수(?)를 할까봐 오히려 더 오버를 해서 한국식으로 딱딱하게 발음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눈으로만 영어를 공부한 탓에 영어 단어를 보면 뜻은 알아도 정확한 발음은 하지 못하는 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아주 쉬운 단어조차 음성지원을 해주는 사전을 찾아 발음을 확인한 후에 겨우 영어를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동안은 영어를 자주 말할 기회가 없었고, 또 지금까지 영어 시험도 문제를 푸는 시험이었지 '말'을 평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큰 불편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해외 여행의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영문장을 낭독하는 훈련"이 영어 학습에 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번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어린왕자> 원서를 사서 읽기도 했고, 영화 <오만과 편견>으로 만들어진 학습 교재를 읽어보기도 했고, <영어 성경>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낭독을 위한 훈련 교재가 아니었기에 발음과 억양, 끊어 있기 등에 자신이 없으니 말뿐인 '영어 낭독 훈련'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in에서 출간한 <영어 낭독 훈련>은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영어 발음에 확신이 없고, 또 평소 입을 열어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거의 해본 경험이 없는 학습자"를 위한 교재라고 합니다. 제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어 낭독 훈련>은 "스피킹이라고 하면 원어민과의 회화를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피력합니다. 원어민과의 회화는 스피킹 기본기를 쌓고 난 후에 행하는 실전 연습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영어 낭독 훈련>은 스피킹 기본기 훈련을 위한 교재입니다. 영어 스피킹을 잘 하려면, "Reading이 아닌 자신의 Speaking 수준에 맞는 영어 책을 골라, 원어민이 녹음한 자연스러운 발음을 들으면서 큰 소리로 따라 말하기 훈련을 끈기 있게 실천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이런 훈련을 보통 외국어 교육에서는 새도우 스피킹(shadow speaking)이라고 하며, 원어민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림자처럼 따라 말하기를 하는 일종의 낭독 훈련"입니다.

<영어 낭독 훈련>을 위한 <Show & Tell>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인 <Vegas Tell. 1>은 섀도우 스피킹 훈련을 위한 1단계, Easy version입니다. <Vegas Tell. 2>는 2단계 High Version이니 수준에 맞는 교재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Vegas Tell>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로 영어 낭독을 훈련하기 위해 '여행'이라는 테마를 응용한 것입니다. 내용이 실용적이기도 하고, 여행에 관심도 있는 저에게는 재미있는 테마입니다. 뒤에 부록으로 달려 있는 'Coach's Manual'은 "혼자 훈련 시 참고하거나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데 활용하기 좋은 보충 학습 자료"이며, 분권이 가능합니다. 지원되는 음성파일은 slow speed, normal speed, faster speed 세 가지 버전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원어민 발음을 따라서 발음하며, 반복 훈련을 통해 암송하기 적합한 길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제된 문장을 원어민 발음, 뉘앙스를 익히며 반복적으로 소리 내어 읽으며, 암송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학습 '목적'에 부합한 교재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이제 막 훈련을 시작했지만, 일단 영어 발음의 부담을 덜고 영어를 소리 내어 '말'하는 자신감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꾸준히 훈련하며, 유창한 영어 말하기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암송하고 난 뒤 영어로 말하는 입이 열리는 날, 출판사를 향해 큰절을 올릴 생각입니다. 오랜 영어의 늪에서 나를 구원해준 평생 스승, 고마운 은인으로 여기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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