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대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우리'라는 말이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 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78).

 
<나가사키>는 "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 숨어 산 한 일본 여인의 충격 실화"를 (독특하게) 프랑스 작자가 소설화한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의 소재가 되는 실화의 묘미는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도무지 믿기 힘든 거짓말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충격과 놀라움일 것이다. 실화가 아니라면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하다는 이유로, 현실성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귀 기울이기를 거절했을 소재일 테니 말이다. <나가사키>의 실화 역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특종감이다. 한 여자가 집주인 몰래 그 집 이불 벽장에 숨어 1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은 많이 보아왔지만, 역사소설이 아닌 이상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은 그다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실화라는 소재의 한계가 오히려 문학적인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다. 충격 실화가 주는 소재 자체에는 흥미를 가졌지만, 막상 소설로 읽으려니 '있었던 사실'을 빠르게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만 강했지 그 이상의 기대는 별로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사키>는 드러나 사건 그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집요하게 포착하고 있다. 실제 이야기는 오히려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 문학적 도구가 된다.

<나가사키>에서는 고독한 두 실존이 조우한다. 그들은 한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한 사람은 다른 한 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다.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각기 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동료들과 퇴근 후 맥주 몇 잔이나 양주를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일찍 저녁 먹는 것을 좋아하는 '독신남'이다. 독신남의 습관을 보호막으로 하여 살고 있는 이 쉰여섯의 남자는, 정돈되어 있는 일상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작은 균열을 알아차린다. 냉장고의 음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낮아진 과일 주스의 눈금, 그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남자는 당장 부엌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장에서 자신의 빈 집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상관측사인 남자가 그의 인생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황당한 사건의 전말이 실체를 드러낸다(52).

"이 여자는 당신 집에서 당신 모르게 일 년 가까이 살았다는 걸 말씀드려야겠군요"(54).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시간들 속에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제멋대로 남의 집에 침입해 몰래 숨어서 '나'를 엿보는 여인이 있었다면? 자신만의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라 생각했던 곳에 몰래 누가 뿌리를 내리고 "내 수건으로 닦고 내 화장실에서 똥을 누었다"(65)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침입자인 여인은 숨어 살기 위해 남자의 모든 것을 훔쳐보며 철저히 감시(염탐)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남자는 어떤 균열을 눈치 채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감시(염탐)자가 된다. 남자가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차가운'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카메라'를 통해서 본 그녀는 주택 침입이니 강도니 같은 단어와 어울지 않게,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으려다 창살로 비쳐드는 햇살을 쪼이고 있었다. 서둘러 경찰서에 신고를 했던 남자는 집으로 전화를 한다. "여자는 곧 구름이 닥치기 전에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서둘러요, 그러지 않으면 곧 그 태양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란 말이에요, 하고 외치고 싶었다"(45). 그러나 소통되지 않는 전화기. 차가운 전화기 역시 소통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 여자는 그렇게 '체포'되었다.

두 번째 화자는 이 독신남의 집에 숨어 살았던 여자이다. 일 년째 남의 집에 숨어산 여자의 사연이 풀어진다. 오랜 실직 끝에 집마저 잃고 거리를 떠돌게 된 쉰여덟의 독신녀가 그 독신남의 집 벽장을 은신처로 삼게 된 쓸쓸하고 기막히고 기구한 이야기가.

<나가사키>는 130페이지도 채 되지 않은 얇은 책이다. 그러나 짧고 간단한 이야기라고 재빨리 '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맘처럼 그렇게 쓱쓱 읽히지 않는다. 오래 음미해야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문제의식도 다양하다. 쉰여섯의 독신남과 쉰여덟의 독신녀, 이 두 고독한 실존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없었을까? 독신남은 홀로 저녁을 먹고 있고, 독신녀는 그의 벽장 속에 몰래 숨어 있는 시간, 텔레비전에서는 노인들에 대해, 그리고 언젠가 일상에서 노인들을 도와줄 로봇에 대해 또! 지루한 타령을 한다(63). 노인 수는 대량 침입이라 할 만큼 급속하게 증가하는 중이다. 독신남은 홀로 텔레비전을 보며 자신의 노후를 상상한다. "끝없는 나의 가을을 지켜주고, 내게 말을 하고, 나의 마지막 의지들을 받아주고 언젠가는 나의 마지막 숨결을 거둬줄 로봇 말이다"(64).

"기상관측사로서 나는 하늘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력은 길렀지만 이 지상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60)
여자가 남자의 집에 침입해 있던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아주 미미한 삶의 한 조각이지만, 남자는 최후의 시간까지 그것이 중요한 조각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남자는 여자가 '체포'된 뒤에도 '다른 여자가 집 어딘가에 숨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망상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아버린다. 오래 전부터 어떤 야심도 돋아나지 않고, 어떤 희망도 돋아나지 않은 자신의 삶의 초라함과 삭막함을. 그 여자로 인해 그것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혀버렸다. 그 여자가 저주스러웠다(74). 

두 사람의 찰라적 '충돌'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세상은 그 황당한 헤프닝을 곧 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집에서 '이전처럼' 살 수 없어진 남자는 그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여자는 왜 그 집에 자신이 숨어 들었는지 남자에게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침입 당한 그 남자의 삶은 이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까. 다시 거리로 내몰린 여자는 이제 다시 어디에 그 몸을 누일 수 있을까. 그녀의 편지는 그에게 가 닿을 수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 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78).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염탐할 뿐 전혀 소통되지 않는 남자와 여자, 그 거짓말 같은 실제 이야기. 내 공간 어디에 누군가 숨고 살며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는데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가 버려둔 좁고 어두운 벽장에 숨어 살며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는 것이 바로 나는 아닐까. 각자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할 뿐, 소통하지 않는 각각의 '나'들. 그렇게 '우리'가 죽어간다면 '우리' 주위에는 로봇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나가사키>의 은밀한 경고가 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